“반도체나 AI 같은 일부 산업 실적과 코스피만 보면 한국 경제가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죠. 하지만 제조업 현장은 숨통이 끊어지기 직전입니다.”
반면 최근 마주한 제조업 기반 기업 관계자의 한숨은 깊었다. 현장에서 체감하는 분위기는 코스피가 5000포인트를 돌파하면서 터져 나온 환호와는 거리가 멀다. 산업연구원의 경기실사지수(BSI)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제조업 매출 전망은 기준선(100)을 밑도는 93에 그쳤다. 제조업 매출 전망 BSI는 2024년 3분기 이후 7개 분기 연속 100을 넘지 못했다. 시황, 수출, 투자, 고용 전망 역시 모두 기준선 아래다.
기업들의 판단도 빠르게 보수적으로 바뀌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서 제조기업 10곳 중 8곳은 올해 경영 전략을 ‘현상 유지’나 ‘축소’로 잡았다. 확장을 말하는 기업은 20% 남짓에 불과하다. 기업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수요도, 정책도 아닌 환율과 금리 변동성이다. 성장보다 ‘어떻게 버틸 것인가’를 먼저 계산하는 국면에 들어섰다는 의미다.
산업 구조 역시 한쪽으로 기울고 있다. 반도체·조선 등 일부 업종은 그나마 버티고 있지만, 철강·섬유·정유 같은 전통 제조업은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수출액은 늘었지만, 증가분 대부분은 반도체에서 나왔다. 외형은 커졌으나 산업의 저변은 오히려 더 얇아지고 있다.
자본의 흐름은 이와 반대다. AI 산업에는 기록적인 자금이 몰린다. 글로벌 AI 투자금은 사상 최대를 경신했다. 국내에서도 투자금은 늘었지만 투자 대상 기업 수는 줄었다. 돈은 소수의 ‘확실한 승자’에게 집중된다. 중소 AI 스타트업들은 상장을 꿈꾸기보다 인수·합병(M&A)을 출구로 택한다. 새로운 기업이 자라기보다는, 흡수되거나 정리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이 장면은 우리 경제가 ‘미래’와 ‘현재’를 동시에 돌보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AI는 분명 중요하다. 반도체와 첨단 기술 없이는 성장도, 경쟁력도 없다. 문제는 AI에 올인하는 동안, 제조업 전반이 지탱해온 고용·지역·산업의 토대가 방치되고 있다는 점이다. 반도체와 AI 몇 개 산업에 기대는 성장 구조라면, 충격이 닥쳤을 때 우리 경제가 버틸 여지는 크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이상 신호가 지표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코스피는 최고가를 찍고, 투자금은 사상 최대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겉으로는 회복처럼 보이지만, 속에선 산업과 기업의 체력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K자형 성장’의 함정이다.
AI는 한국 경제의 미래다. 더불어 제조업은 여전히 한국 경제의 현재다. 미래에 시선을 고정한 채 현재를 소홀히 하면, 그 미래 역시 오래가지 못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AI냐, 제조업이냐의 선택이 아니다. AI에 집중된 정책과 자본의 시선이 제조업의 체력과 전환을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성장의 방향에 앞서 성장을 이루는 구조가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점검해야할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