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105)

[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105)

드가는 왜 <다림질하는 여인들>을 그렸는가?

기사승인 2026-01-26 09:47:59 업데이트 2026-01-26 10:12:24
에드가 드가, 다림질 하는 여인, 1873, 캔버스에 유채, 54.3 x 39.4cm,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에드가 드가(Edgar Degas, 1834~1917)는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의 초상화를 즐겨 그렸지만, 그의 시선은 곧 모자 가게와 세탁소 같은 노동의 현장으로도 향했다. 모자 가게의 풍경, 다림질 하는 여인의 땀 냄새 가득한 공기 속에서 그는 급격한 산업화로 얼룩진 시대의 얼굴을 발견했다. 

사실 드가 이전에 세탁부를 본격적으로 화폭에 담은 이는 오노레 도미에(Honore Daumier, 1801~1879)가 유일했다. 드가는 1869년부터 1895년까지 이 주제를 끈질기게 탐구하며, 자신만의 시선으로 새로운 영역을 구축했다.


오노레 도미에, 빨래하는 여인, 1863년 버전, 캔버스에 유채, 49 x 33.4cm, 오르세 미술관

도미에는 도시 노동자의 삶을 자주 화폭에 담았으며, 세탁부를 주제로 한 작품만도 세 점을 남겼다. 

1850년대 밀레가 농촌을 새롭게 비추던 시기와 맞물려, 도미에의 그림은 도시 노동자들이 겪는 고단한 현실을 유사한 시각으로 드러낸다. 아이의 손을 잡고 빨래감을 안은 채 계단을 오르는 어머니의 모습에는 사랑과 헌신이 깃들어 있으나, 아이의 미래에 대한 체념의 기운도 함께 배어 있다.

부셰, 프라고나르, 위베르 로베르 등 18세기 로코코 화가들이 세탁하는 여인들에게 장난기와 세련된 우아함을 부여했다. 그러나 도미에의 〈빨래하는 여인〉은 그와는 달리 지루하고 고된 노동에 매달린 사회적 계층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밀레의 등장인물들이 항상 일하느라 움직이고 있듯이, 드가의 여인들 역시 그렇다. 

드가의 <다림질하는 여인>(1873)은 머리 위에선 빨래가 마르고 있고, 한쪽에는 습하고 역한 빨래 삶는 냄새가 나는 듯 후각을 자극한다. 창을 통과한 빛에 의해 반사되는 벽과 빨래감은 밝고, 역광으로 인해 어두운 여인의 실루엣은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밝음-어둠)로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빈센트 반 고흐, 직조기, 1884년 4~5월, 패널과 캔버스에 유채, 크롤뢰 뮐러 미술관

네덜란드 시절, 반 고흐는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직조를 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농부들을 관찰했다. 창으로 들어오는 달빛에 비추는 농부 역시 실루엣으로 묘사되었다. 그는 렘브란트적인 효과를 주기 위해 극명한 명암의 대조를 사용했다고 말하고 있다. 

드가와 도미에, 그리고 반 고흐에게 생계를 위해 고단하게 일하는 이들의 개개인얼굴은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모두 육체 노동에 종사하는 이들을 대변하고 있을 뿐이다.
   
에드가 드가, 다림질 하는 여인들, 1884~1886, 캔버스에 유채, 76 x 81.4cm, 오르세 미술관

에밀 졸라가 1877년에 발표한 소설 '목로주점'은 제르베즈의 세탁소를 배경으로, 파리 하층민의 궁핍하고 고단한 일상을 사실적으로 드러낸다. 초기에 한 명의 세탁부를 그리던 드가는 1880년대 중반에 이르러 두 명의 여인을 함께 배치하는 구도를 선호했다. 이는 단순한 인물 수의 변화보다 노동의 긴장과 연대 그리고 대조를 더욱 생생하게 드러내려는 선택이었다. 

한 여인은 지친 몸을 술로 달래려는 듯 비어가는 싸구려 와인병을 잡고 하품을 하는 열린 포즈로, 다른 여인은 힘을 주느라 구부린 어깨는 솟아오르고 안으로 향하며 대조적이다. 드가의 ‘다림질 하는 여인들’은 바로 그 담담한 속에서 시대의 진실과 인간적인 애틋함이 묻어난다. 

드가는 자신을 ‘인상주의’보다 ‘사실주의’ 화가라 생각했다. 드가는 현실에서 마주치는 생생한 삶의 현장을 거친 붓터치로 칠했다. 군데군데 비치는 갈색 린넨은 표면의 질감을 강조하며 그들이 처한 각박한 상황에 무게를 더해준다. 다림질하는 받침대는 사선으로, 벽기둥과 화덕은 수직으로 분할하며 역동적인 작업장을 강조하고,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을 잡았다.
  
에드가 드가, 자화상 사진(61세), 1895, 하버드 미술관

다른 화가들은 카메라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드러내길 꺼려할 때, 드가는 사진이 화가에게 무엇을 가르쳐줄 수 있는가? 화가가 거기에서 무엇을 빌려와서는 안 되는가? 사진이 화가에게 줄 수 있는 교훈과 한계를 고민하며, 과감하게 그 가능성을 활용했다. 

드가는 스스로 난제를 만들어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으로 작업에 임했다. 그는 수십 장의 드로잉을 정밀하게 그려내며 끊임없이 머리속에서 수정했다. 선을 중시한 앵그르를 존경하면서도 들라크루아의 열정적인 붓질과 움직임에 매혹되었다.  

1850년대 후반 이탈리아에서의 체류는 그의 사고를 크게 바꾸었다. 들라크루아의 “자연에는 선이 없다”는 말에 공감하며, 세계를 삼차원이고 빛과 색의 파편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그것이 공기와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이는 영원성을 추구하며 세계를 정체된 상태로 보는 신고전주의와는 뚜렷한 대조를 이루었다. 들라크루아가 삶과 역사, 신화를 ‘움직임’으로 이해한 점은 드가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젊은 시절 앵그르의 매끈한 선을 숭배했던 그는 점차 들라크루아의 방식, 즉 붓질의 흔적을 드러내며 역동성을 표현하는 기법을 받아들여 독창적인 표현을 완성해 나갔다.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루이스 에드먼드 뒤랑티의 요구에 따라 드가는 ‘새로운 그림’을 만들어냈다. 여기서 다양한 사회적 지위를 지닌 여성들의 묘사가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는 현대 생활을 환기시키는 장치가 되었다. 결국 드가는 일터에서의 포즈나 일상의 순간을 포착해 작품 속에 불어넣으며, 현대적 삶의 리듬과 생생한 현실을 그림 속에 담아내려 했다.  

에드가 드가, 앙리 드가와 그의 조카 루시 드가(화가의 삼촌과 사촌), 1875~76, 캔버스에 유채, 99.8 x 119.9cm, 시카고 미술관

 앙리 삼촌과 61세에 찍은 드가의 사진을 비교해 보면, 자존감이 강한 둥글고 긴 얼굴에 자아 도취적인 표정이 많이 닮았다. 40대 이전의 드가는 그림 주문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 그림을 팔아 돈을 벌 필요가 없었던 그의 초상화 소재는 자주 방문했던 피렌체와 나폴리에 있는 이탈리아계 가족들이었다. 

이 이중 초상화는 1875년 나폴리에서 약 4개월 머무르던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캔버스에는 부모를 잃은 사촌 루시와 그녀를 돌보게 된 삼촌 앙리가 등장한다. 드가는 나이 차이가 많은 두 사람이 새로운 관계를 조심스럽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담았다. 거기에 최근 아버지를 잃은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고 섬세하게 반영했다.

얇게 덧칠된 부분과 미완성으로 남은 세부 묘사는 작품이 끝까지 완성되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단순화된 배경은 인물들의 머리와 상반신을 더욱 두드러지게 만들며, 드가는 두 사람의 고개를 같은 방향으로 기울이고 검은 상복을 입힌 구성을 통해 그들의 연결을 표현했다.

피렌체에 살던 고모의 가족을 그린 <벨렐리 가족>(1858~1869)처럼 프랑스식 문틀의 가장자리와 앙리의 의자 등받이는 인물들을 화면 속 서로 다른 영역으로 분리한다. 이 초상화는 친밀하면서도 멀게 느껴지고, 편안하면서도 긴장된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심리적 거리감을 은근히 드러낸다. 

드가는 평생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았다. 그는 자의식이 뛰어나고, 거침없이 신랄하게 독설을 퍼붓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몇몇 지인을 제외하고는 원만한 인간 관계를 유지하지 못해 말년을 매우 고독하게 살았다. 드가는 사람들 사이에 느껴지는 심리적 거리감과 긴장된 분위기를 묘사하는 데 특별히 뛰어난 예술가였다. 


최금희 작가

최금희 작가
는 미술에 대한 열정으로 전 세계 미술관과 박물관을 답사하며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직접 촬영한 사진을 가지고 미술 사조, 동료 화가, 사랑 등 숨겨진 이야기를 문학, 영화, 역사, 음악을 바탕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현재 서울시50플러스센터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홍석원 기자
001hong@kukinews.com
홍석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