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 피해는 사회가, 이윤은 담배회사가”…금연학회 반발

“흡연 피해는 사회가, 이윤은 담배회사가”…금연학회 반발

“담배소송 2심 패소 판결, 의과학 성과 훼손”
“흡연과 폐암·후두암 인과관계, 논쟁 대상 아냐”

기사승인 2026-01-28 11:13:01
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15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2심 패소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이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낸 500억원대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2심에서도 패소한 가운데 대한금연학회가 “의과학적 사실과 공중보건의 기본 원리를 외면한 판단”이라며 유감을 표명했다.

금연학회는 28일 입장문을 통해 “흡연과 질병의 인과관계에 관한 확립된 의과학적 증거를 부정하고, 담배회사가 져야 할 최소한의 사회적 책임마저 외면했다”며 재판부의 판결을 비판했다.

지난 15일 서울고등법원 민사6-1부(부장판사 박해빈·권순민·이경훈)는 건보공단이 담배회사인 KT&G와 한국필립모리스, 브리티쉬아메리칸토바코코리아(BAT코리아)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 또 건보공단이 주장한 담배회사의 ‘제조물책임법’ 위반이나 담배의 유해성·중독성 표시상의 결함, 흡연과 폐암의 인과관계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원고(건보공단)의 항소를 모두 기각하고, 항소 비용을 원고가 부담하도록 했다. 

학회는 재판부가 흡연과 폐암·후두암 간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이는 역학과 현대 의학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역학적 상관관계만으로는 개별 환자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재판부의 판단을 정면 반박했다. 암과 만성질환은 다요인적·확률적 질병으로, 개별 환자 단위에서 100% 인과를 증명하는 방식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학회는 흡연의 발암성이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암연구소(IARC), 미국 보건총감 보고서 등을 통해 이미 수십 년 전부터 ‘확정적 인과관계’로 규명돼 왔다고 강조했다. 재판부가 흡연 외 다른 위험요인의 존재 가능성을 들어 인과관계를 부정한 데 대해서도 “공동원인 개념에 대한 근본적 오해”라고 주장했다. 복수의 위험요인이 존재하더라도 흡연이 주요하고 독립적인 위험요인이라는 사실은 부정될 수 없으며, 특히 폐암과 후두암은 흡연과의 상대위험도가 매우 높은 대표적 질환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학회는 “담배의 중독성과 유해성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는 이유로 기업 책임을 부정한 것은 국제적 연구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한 것”이라며 “니코틴 중독성 강화 설계와 ‘라이트’, ‘순한 담배’ 등 허위·오인 마케팅 사례가 이미 국제 소송과 내부 문서를 통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이 국민 건강 보호라는 헌법적 가치와도 배치된다고 했다. 학회는 “흡연은 단일 산업으로 인해 발생하는 가장 큰 예방 가능한 사망 원인”이라며 “그 비용을 개인과 사회가 떠안고, 가해 산업이 법적 책임에서 벗어난다면 이는 정의와 형평의 문제다”라고 꼬집었다.

학회는 건보공단의 상고가 예고된 만큼, 대법원이 의과학과 공중보건의 관점에서 사건을 다시 판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학회는 △흡연과 폐암·후두암의 인과관계는 더 이상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 △다수 인구집단의 건강 피해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 법치국가의 원칙이라는 점 △공중보건 영역에서 형사재판과 다른 인과관계 판단 기준이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학회는 “이번 판결이 확정된다면 과학이 아무리 명확해도 유해 산업의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면서 “담배회사에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고, 국민과 흡연자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역할을 끝까지 다하겠다”고 전했다.

앞서 건보공단은 지난 2014년 4월 20갑년 이상 흡연자 중 폐암(소세포암·편평상피세포암)과 후두암(편평세포암)을 진단받은 환자 3465명에게 10년간 지급한 공단부담금 533억원에 대한 배상을 담배회사들에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국민 건강에 미치는 흡연 폐해에 대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묻고, 흡연 질환 진료비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방지한다는 취지에서다. 20갑년은 하루 1갑(20개비) 이상씩 20년간 흡연한 상태를 가리킨다.

정기석 건보공단 이사장은 15일 재판이 끝나고 기자들과 만나 “새로 한다는 각오로 전략을 다양하게 구사하면서 제대로 한번 싸워보겠다”며 대법원 상고 의지를 드러냈다. 정 이사장은 “공단이 1년에 100조원을 지출하는데 4조원에 가까운 돈이 담배 때문에 지출된다. 이 4조원이 나가지 않았다면 건강보험료가 얼마나 절약되겠나”라며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 상고를 검토해 왔다. 의료계, 법조계 전문가들과 힘을 합쳐 법원을 설득할 수 있도록 상고이유서를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