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사는 남자’, 제목부터 두 남자의 영화다. 주연을 넘볼 만한 여성 배우가 선뜻 선택할 작품은 아니라는 뜻이다. ‘공식적인 첫 영화’라면 더욱 그럴 법하다. 하지만 배우 전미도(44)는 달랐다. ‘첫 영화’라서 “초심으로 선택”했단다. 23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시작이니 단계를 밟아가는 게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첫 단추를 잘 끼운 것 같아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왕과 사는 남자’는 1457년 청령포, 마을의 부흥을 위해 유배지를 자처한 촌장 엄흥도(유해진)와 왕위에서 쫓겨나 유배된 어린 선왕 이홍위(박지훈)의 이야기로, 장항준 감독의 신작이다. 2월4일 개봉한다.
극중 전미도는 끝까지 이홍위의 곁을 지킨 궁녀 매화로 분했다. 연기하기 나름이라 해도 인물 소개부터 큰 비중은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장항준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이 그의 합류를 확신할 수 없었던 이유다. 그러나 전미도는 예상을 깨고 ‘참 좋은 이야기’에 매료돼 출연을 결심했다. “이기적인 마음으로 자식을 위해 광천골을 유배지로 만들었다가 단종을 자기 아들처럼 품게 되는 흥도의 변화가 좋았어요. 또 그 시기에 들어온 작품들이 다 잔인하고 자극적이어서 약간의 피로감이 있었어요. 분량과 상관없이 따뜻한 이야기에 참가하고 싶었어요.”
그렇다고 마냥 수용만 하고 작품에 탑승한 것은 아니었다.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면서 인물을 풍성하게 그려가려고 했다. 전미도는 이 과정에서 유해진의 도움을 받았다며 감사를 표했다. “짧은 대사 안에서 어떻게 하면 미묘한 뉘앙스를 살릴 수 있을지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그리고 제가 조력자 역할이다 보니 튀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자청해서 홍위를 끝까지 주인으로 모시려는 궁녀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그러면서 시나리오상 없는 액팅을 넣어보게 됐고요. 해진 선배님이 하시는 신에서 제가 액팅하면 불편하실 수도 있는데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하셨어요. 리액션도 다 해주셨고요. 흥도와 매화의 티키타카도 마찬가지였어요. 저는 선배님 덕을 많이 본 거죠.”
작중 가장 오랜 시간 붙어 있었던 박지훈에 대해서는 “나이대에 비해 무게감이 있는 친구였다”고 회상했다. “‘약한영웅’은 봤는데 ‘내 마음속에 저장’ 장본인인 줄은 몰랐어요(웃음). 어렸을 때는 연기를 해서 공연을 한 적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 얘기를 들으니까 퍼즐처럼 맞춰지는 게 있었어요. 지훈 씨가 현장에서 과묵한 편이었거든요. ‘이 생활을 되게 오래 했구나’, ‘내공이 있구나’ 생각했어요. 그리고 집중도가 굉장히 높아요. 그래서 일부러 집중을 해치면서까지 친해지려고 하진 않았어요. 지켜보는 것이 매화와 단종의 관계에 맞겠다고도 생각했고요.”
‘왕과 사는 남자’는 전미도에게 첫 영화 그 이상의 의미다. 연기가 즐겁고 새벽 촬영마저 거뜬했던 현장이었다. “같이 호흡할 수 있는 배우를 만난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에요. 연기가 재미없게 느껴지다가도 그런 배우를 만나면 재밌게 느껴지거든요. 더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죠. 자신 없다가도 조금만 더 하면 알 것 같은, 그런 의욕이 막 생기고요. 그리고 좋은 분들만 계셨어요. 감독님은 새벽 4~5시에도 농담하고요. 그러다 보니 힘든 줄 몰랐죠.”
이미 탄탄한 연기력으로 인지도를 쌓고 최근 미국 토니상 6관왕을 달성한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주역인 그지만 여전히 자신 없는 순간이 찾아오고 겁이 나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왕과 사는 남자’에 초심으로 임했다는 말이 더 진정성 있게 들리는 대목이다. “자기 연기 보고 너무 좋았다고 하는 배우는 없지 않을까 하지만 유난히 겁이 많은 편인 것 같기도 해요. 스스로 기준치가 높아요. 그럼에도 마음을 다잡죠. 저는 60대가 넘었을 때 제 연기가 궁금해요. 그 지점을 향해서 가야 해요. 뜻하지 않게 너무 빨리 잘됐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다 과정이니까요. 이 과정이 쌓여서 보여주고 싶었던 연기를 할 수 있는 때가 오지 않을까 해요. 아직 그 연기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시기가 올 거라고 믿으려고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