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재현할까…다시 달리는 한국 설상·썰매 [밀라노 동계올림픽]

평창 재현할까…다시 달리는 한국 설상·썰매 [밀라노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신성’ 최가온·김채운
8년 만의 메달 노리는 ‘배추보이’ 이상호
스켈레톤·봅슬레이서도 메달 기대

기사승인 2026-02-04 06:00:12 업데이트 2026-02-04 18:06:43
최가온. EPA연합

한국 설상과 썰매가 또 한 번 도약을 준비한다.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은 6일(현지시간) 이탈리아에서 막을 올린다. 이번 대회는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두 개 도시가 공동 개최하는 동계올림픽으로, 밀라노와 코르티나담페초를 오가며 22일까지 총 16일간 열릴 예정이다. 전 세계 93개국에서 약 3500명의 선수들이 참가해 경쟁을 펼친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 선수 71명을 포함해 총 130명 규모의 선수단을 꾸렸다. 목표는 금메달 3개와 종합 순위 10위 이내 진입이다. 한국이 동계올림픽 메달 집계에서 ‘톱10’에 이름을 올린 것은 2018년 평창 대회가 마지막으로, 당시 7위(금 5·은 8·동 4)를 기록했다.

이번 선수단 구성에서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한국 동계 스포츠가 오랫동안 의존해 온 빙상 종목 중심의 구조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에 집중됐던 메달 기대는 설상과 썰매 종목으로까지 분산되며, 한국 동계 스포츠의 경쟁 지형도 한층 입체적으로 변화했다. 특정 종목에 성과가 집중되던 과거와 달리, 종목 전반에서 국제 경쟁력을 축적해 온 결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스노보드 하프파이프와 평행대회전, 썰매 종목 전반에 걸쳐 메달권 선수들이 고르게 포진했다.

‘하프파이프 신성’ 최가온과 김채운을 주목하라

하프파이프는 반원통형 슬로프를 타고 오르내리며 점프와 공중 회전, 기술의 완성도를 겨루는 종목이다. 높이에 더해 기술 난도·연결·안정성이 모두 점수로 환산된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은 이 종목 남녀 모두에서 메달을 노릴 수 있는 위치에 서 있다.

최가온. 올댓스포츠 제공

최가온은 최근 여자 하프파이프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2008년생인 그는 이미 ‘유망주’라는 범주를 넘어섰다. 어린 나이에 세계 정상급 무대를 접수했다. 2023년 X게임에서 역대 최연소 우승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세계의 시선을 끌었고, 국제연맹 월드컵 정상까지 차지하며 단숨에 최강자 반열에 올랐다. 올 시즌 월드컵에서도 세 차례나 우승을 차지하며 최정상급 기량을 뽐냈다.

클로이 김이 최대 적수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한국계인 클로이 김은 스노보드 역대 최초로 3연패에 도전한다. 최근 흐름만 놓고 보면, 최가온이 한발 앞서있다. 클로이 김은 이번 시즌 어깨 부상 때문에 월드컵 경기를 거의 소화하지 못했지만, 최가온은 뚜렷한 성과를 냈다. 공중에서 세 바퀴 회전을 하는 ‘스위치 백텐’을 필두로, 여자 선수에게는 한계로 여겨졌던 고난도 기술들을 안정적으로 연결하는 기술적 완성도가 돋보였다. 상대의 컨디션과 변수까지 고려해도 가진 기량을 모두 보여준다면, 최가온은 이번 올림픽에서 충분히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이채운 역시 한국 설상 역사에 또 하나의 변곡점을 만들 태세다. 2006년생인 이채운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 최연소로 출전해 올림픽 무대를 먼저 경험했다. 비록 예선에서 멈췄지만, 이후 도약을 위한 확실한 출발점이 됐다. 전환점은 2023년 세계선수권이었다. 만 16세 10개월로 정상에 오르며 남자 하프파이프 역사상 최연소 세계 챔피언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스키·스노보드의 사상 첫 세계선수권대회 메달이기도 했다. 이채운은 이후 청소년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을 거치며 국제 경쟁력을 꾸준히 입증했다.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무릎 부상과 수술로 한동안 국제무대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지만, 재활 기간 동안 기술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데 집중했다. 2024년 말 전지 훈련에서 성공한 ‘프런트 사이드 트리플 코크 1620(공중에서 세 번의 비틀기와 네 바퀴 반 회전을 결합한 기술)’가 그 결과물이다. 이채운이 세계 최초로 성공시킨 이 기술이 올림픽 무대에서 완성도를 갖춘다면 메달 경쟁을 이야기하는 것도 과한 기대는 아니다.

이상호. FIS 제공

부활 예고한 ‘배추보이’ 이상호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은 화려함보다 냉정함이 앞서는 종목이다. 나란히 출발해 단 한 번의 실수, 단 0.01초가 승부를 가른다. 이상호는 이 무대에서 한국 설상의 기준을 새로 쓴 선수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한국 스노보드의 지평을 넓혔고, 이후에도 꾸준히 세계 정상급 경쟁력을 유지해왔다.

최근에는 메달 기대를 다시 끌어올리는 성과를 냈다. 지난달 31일(한국시간) 슬로베니아 로글라에서 열린 국제스키·스노보드연맹(FIS) 월드컵 남자 평행대회전 결승에서 롤란드 피슈날러(이탈리아)를 꺾고 정상에 올랐다. 2024년 3월 이후 약 1년 10개월 만에 거둔 월드컵 우승이자, 통산 네 번째 금메달이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의 0.01초 패배 역시 그를 더욱 단단하게 만든 경험으로 남았다. 2회 연속 메달에 도전했던 당시, 8강에서 단 0.01초 차로 고배를 마셨다. 밀라노 무대는 이상호에게 또 하나의 시험대다. 경험과 기량, 그리고 다시 찾아온 흐름까지. 퍼즐은 다시 맞춰지고 있다.

썰매, 다시 메달 레이스로
불모지였던 한국 썰매 종목은 평창에서 놀라운 업적을 세웠다. 스켈레톤 윤성빈이 금메달을 땄고, 봅슬레이 원윤종 팀도 은메달을 목에 걸며 새 역사를 썼다. 이번 올림픽은 그 이후를 묻는 무대다. 

윤성빈의 후계자인 스켈레톤 정승기가 눈에 띈다. 꾸준하게 존재감을 키운 정승기는 베이징 대회에서 10위를 기록하며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후 세계선수권과 월드컵을 거치면서 메달권 주자로 자리 잡았다. 허리 부상이라는 변수를 이겨낸 뒤에는 주행 완성도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이탈리아 코르티나담페초 ‘올림픽 트랙’에서 열린 2025~2026시즌 월드컵 1차 대회에서 5위에 오르면서 입상 가능성을 밝혔다.

정승기. AP연합

봅슬레이 김진수 팀은 한국 봅슬레이의 8년 만의 메달에 도전한다. 2인승에는 김진수와 김형근(강원도청)이 호흡을 맞추고, 4인승에는 김진수를 중심으로 김형근·김선욱·이건우(이상 강원BS경기연맹)가 한 팀을 이뤄 출전한다.

풍부한 경험을 갖춘 김진수는 이번 대표팀의 핵심 자원이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원윤종 팀의 브레이크맨으로 나섰던 그는 이후 파일럿으로 전향해 2인승과 4인승 모두에서 경쟁력을 입증해왔다. 지난해 11월 올림픽 트랙에서 열린 대회에서 4인승 동메달을 따내며 기대감을 키웠고, 2인승에서도 올 시즌 네 차례나 4위에 오르며 메달권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다.

빙상에 집중됐던 한국 동계 스포츠의 무게중심은 이제 설상과 썰매로까지 확장됐다. 평창이 ‘시작’이었다면,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는 그 성과가 일회성이 아니었음을 증명할 무대다. 세대교체와 종목 다변화 속에 다시 출발선에 선 한국 설상·썰매. 이탈리아의 설원과 트랙 위에서 평창의 기억을 되살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영건 기자
dudrjs@kukinews.com
김영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