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 리스크’ 해소 시험대 오른 루닛…악순환 끊어낼 수 있을까

‘재무 리스크’ 해소 시험대 오른 루닛…악순환 끊어낼 수 있을까

기사승인 2026-02-02 17:43:58
서범석 루닛 대표가 2일 서울시 강남구 루닛 본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를 통해 최근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통한 자본 조달의 의미와 회사의 미래 성장 전략을 발표했다. 루닛 제공

의료 인공지능(AI) 기업 루닛이 2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로 ‘재무리스크’ 해소 시험대에 올랐다. 지난 2024년 미국 볼파라 인수 당시 발행했던 전환사채(CB) 풋옵션(조기상환청구권) 리스크가 현실화되자 대규모 자금 확보에 나선 것이다. 루닛이 경영 악순환에서 벗어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루닛은 2일 서울 강남구 본사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2500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 추진 배경과 중장기 사업 전략을 설명했다. 서범석 루닛 대표는 “이번 유상증자는 재무 리스크를 구조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선택이고, 재무적 불확실성을 정리하기 위한 마지막 자본 조달이 될 것”이라며 “2026년 연말을 목표로 현금영업이익(EBITDA) 기준 손익분기점 달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루닛은 신주 790만6816주를 주당 3만1650원(예정가)에 발행한다. 할인율은 지난주 금요일 종가 기준 25%를 적용했으며, 기존 주주에게는 1주당 0.27주를 배정한다. 유상증자로 조달된 2500억원 중 약 40%에 달하는 985억원은 CB 상환 등의 채무에 투입한다. 1125억원은 연구개발(R&D) 및 글로벌 확장 등 투자 재원으로 활용한다. 주가 변동성과 재무 구조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커진 가운데 루닛은 유상증자를 계기로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실적 중심의 재평가를 이끌겠다는 입장이다.

두 차례 볼파라 인수 자금 조달…재무 리스크 부각

이번 유증은 지난 2024년 5월 미국 유방암 AI 기업 ‘볼파라 헬스 테크놀로지’(현 루닛 인터내셔널) 인수 과정에서 발행한 전환사채와 직결돼 있다. 당시 루닛은 2회차로 나눠 총 1715억원 규모의 CB를 발행해 볼파라 인수 자금을 조달했다. 1회차 CB는 인수 대금으로 전액 사용됐고, 2회차 CB 50억원은 해외 사업 확장을 위한 운영자금으로 투입됐다. 

하지만 주가 하락으로 주식 전환 가능성이 낮아지면서 풋옵션 부담이 잠재적 재무 리스크로 부각됐다. 루닛은 지난달 30일 유상증자 소식이 전해지자 주가가 급락해 장중 한때 3만8950원까지 밀리며 연중 최저점을 찍은 바 있다. 주가가 전환가액을 밑돌면서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가 커졌고, 주식 대신 현금 상환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아지며 이를 감당할 내부 유동성이 부족한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문제는 원금과 이자 상황 만기다. 현재 1회차 CB 전환가액은 5만2846원, 2회차는 4만7819원으로 설정돼 있다. 전환가액 조정(리픽싱)을 거쳤음에도 주가와의 괴리는 여전히 큰데, 전환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루닛은 오는 2029년 4월 만기 시점에 원금의 약 142%에 달하는 금액 총 2400억원 이상을 상환해야 한다. 두 차례 CB 모두 만기 보장수익률은 연복리 8.0%로, 만기 상환액은 원금의 약 142% 수준이다.

실적 개선 여지가 남아있지만, 여전히 불투명하다. 지난해 루닛의 연간 매출은 전년 대비 53.4% 증가한 831억으로, AI 바이오마커 플랫폼 ‘루닛 스코프’ 매출이 100억원을 돌파하며 전년 대비 159% 급성장했다. 하지만 영업손실도 831억원으로 전년 대비 22.8% 확대됐다.

서범석 루닛 대표는 7일(현지 시간) 중국 상해 국제전시센터에서 개최된 ‘한·중 벤처스타트업과의 대화’에 대표 유니콘 기업 자격으로 참석했다. 루닛 제공

기대할만한 부분은 다이이찌산쿄, 애질런트, 랩콥 등 글로벌 빅파마·진단 기업과의 협업이 잇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다이이찌산쿄는 지난해 12월 개발 중인 2개의 신규 항암제 파이프라인에 루닛의 AI 바이오마커 플랫폼 ‘루닛 스코프’를 통합함으로써 AI 기반의 새로운 바이오마커를 발굴할 계획이다. 다이이찌산쿄는 블록버스터 항체약물접합체(ADC) ‘엔허투’(성분명 트라스트주맙데룩스데칸)를 개발한 제약사로, 다수의 차세대 신규 항암제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7일(현지시간)에는 이재명 대통령의 방중 행사 일환으로 진행된 ‘한·중 벤처스타트업 서밋’에 한국 대표 유니콘 기업으로 참석해 벤처캐피탈 등 투자사 미팅을 진행하며 중국 유망기업들과 판로 개척 등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이번 유증 마지막…글로벌 의료 혁신 주도”

루닛은 이번 유증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며 자본 조달을 통해 재무 위험성을 제거한다는 방침이다. 2500억원 조달이 마무리될 경우 향후 풋옵션 행사에 따른 대규모 현금 유출 가능성은 사실상 해소된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특히 유증 자금이 자본으로 인식됨에 따라 루닛을 따라다녔던 법인세차감전손실(법차손)에 따른 관리종목 지정 우려, 이른바 ‘법차손 리스크’에서 자유로워진다.

서 대표는 “시장이 회사를 바라볼 때 AI 산업의 잠재력 인정과 재무적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공존했다”며 “이런 부분을 미리 없애지 않으면 계속해서 주가가 눌리겠다는 걸 느꼈고, 경쟁이 치열해진 산업 내에서 밀리지 않기 위한 투자를 위해서라도 이번 유증은 필요한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루닛은 지난해부터 전체 인력의 약 15%를 감축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했으며, 올해 운영비를 전년 대비 약 20% 줄인다는 계획이다. 매출 성장과 비용 절감이 계획대로 진행될 경우 연말에는 현금영업이익(EBITDA) 기준 흑자 전환이 가능하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루닛 로고. 루닛 제공

볼파라 인수를 무리하게 추진했다는 지적에 대해선 위기가 아닌 기회라고 했다. 서 대표는 “볼파라 인수의 핵심 목적은 미국 시장에서의 직접 세일즈 채널 확보로, 간접 판매만으로는 글로벌 확장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100명 이상의 세일즈 인력과 3000곳 이상의 병원 고객을 보유한 채널을 이미 확보한 상태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중간 단계에서 출발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 결과 올해 미주 지역에서 볼파라 채널을 통한 ‘루닛 인사이트’ 매출만 100억원 이상을 기대하고 있다”면서 “글로벌 톱20 제약사 중 15곳과 이미 협업을 진행 중이며, 미국의 주요 병리 랩, 플랫폼 기업, 스캐너 업체, 항체 기업 전반에 걸쳐 파트너십을 구축한 회사는 루닛이 유일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핵심은 자본 수혈 이후의 실질적인 성과다. 루닛은 올해 매출이 전년 대비 40~50%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서 대표는 “병원 운영, 진단, 연구, 임상시험 전반에서 AI가 효율을 높이고 의료비를 낮추는 방향으로 확산될 것”이라며 “이 생태계는 시간이 걸리지만, 커질수록 압도적인 의미를 갖게 될 것이고 우린 그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고 자신했다.

그러면서 “루닛은 세계 최고의 AI 기술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의료 혁신을 주도할 독보적인 위치에 서 있는 만큼, 유증 후 재무 개선을 적극 추진해 주주가치 제고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덧붙였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