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한국수어의 날’을 맞았지만, 농인의 정보 접근권과 평등권은 여전히 방송 현장에서 충분히 보장되지 않고 있다. 수어가 법적으로 독립된 언어로 인정된 이후에도, 농인이 방송을 통해 동등하게 정보를 접하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 반복돼 왔다.
매년 2월3일은 한국수어가 농인의 공용어로 법적 지위를 인정받은 한국수화언어법 제정일을 기념해 제정된 날이다. 수어 보장을 통해 농인의 정보 접근권을 넓히겠다는 취지였지만, 방송 현장에서의 실질적 변화는 아직 체감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방송 현장에서의 변화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현행 제도상 지상파 방송의 수어통역 편성 의무 비율은 전체 방송 시간의 7% 수준에 그친다. 이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정한 장애인방송 편성 기준에 따른 것으로, 뉴스·시사·오락 등 프로그램 유형을 구분하지 않고 전체 방송 시간을 기준으로 산정된다.
수어통역 제공 방식 역시 한계로 지적된다. 방통위의 ‘장애인방송 프로그램 제공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수어통역 화면 크기는 전체 화면의 16분의 1 이상을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다만 선거방송과 재난방송, 대국민 담화 중계 등 국민적 관심도가 높은 방송의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전체 화면의 최대 8분의 1까지 확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수어권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반복돼 왔다. 5년 전 제1회 한국수어의 날을 앞두고 장애의벽을허무는사람들 등 장애인권단체들은 △지상파 수어통역 의무 편성 비율을 30%까지 확대할 것 △수어통역 화면 비율을 8분의 1로 적용할 것 △농인 통역사의 참여를 확대할 것 등을 요구했다.
비슷한 문제 제기는 지난해에도 이어졌다. 방통위 주최로 열린 ‘2025 한국수어통역방송 품질 향상 종합세미나’에서는 수어통역의 속도와 가시성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한 농인 학생은 “방송 내용과 수어통역 속도가 맞지 않고, 수어통역 화면도 작아 내용을 따라가기 어렵다”며 실제 시청 경험을 공유했다.
방송에서의 수어 보장은 헌법상 평등권과 알 권리와 직결된 문제다. 수어는 한국수화언어법에 따라 단순한 보조 수단이 아닌 하나의 언어로 인정된다. 한국은 UN 장애인권리협약 비준국으로서 장애인의 정보 접근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의무도 지니고 있다. 과거 지상파 방송사가 수어통역을 제공하지 않았을 당시 국가인권위원회가 이를 농인에 대한 차별로 판단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전문가들은 수어통역방송 문제가 수년째 제자리걸음을 반복하는 이유로 법적 의무 규정의 부재를 꼽는다. 조한진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수어통역 편성 비율이나 화면 크기가 권장 수준에 머물러 있어 방송사 입장에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기준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며 “의무 규정이 없는 한 실질적인 변화가 나타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수어 접근성 확대는 농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책임져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현장 단체들도 수어통역방송의 한계를 개별 방송사의 문제라기보다 제도 전반의 구조적 문제로 보고 있다. 김주희 사단법인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 대표는 “방송 수어통역 자체의 문제도 있지만, 농인들이 통역사의 수어를 알아보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적지 않다”며 “수어가 언어로 인정된 지 오래되지 않아 체계적인 교육과 연구가 충분히 이뤄지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또 “농인은 단순히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언어적 소수자”라며 “비장애인 사회가 청각 재활 중심으로 접근하다 보니 농인 당사자와 정책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농인 당사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잘 듣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언어로 살아갈 권리”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