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5000선을 넘어선 이후 급격한 변동성 장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지금 장은 유동성 버블이라기보단 실적과 구조 변화가 만들어낸 장세”라고 진단했다. 인공지능(AI)·반도체 호황과 자본시장 개혁의 지속 여부가 향후 방향성을 가를 주요 변수가 될 것이라는 의견이다. 지금이라도 조금씩 주식 투자에 나서되 개별 종목보다 대표지수나 반도체 상장지수펀드(ETF)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다.
한국거래소(KRX)는 3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홍보관에서 ‘KOSPI 5000 and Beyond’ 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세미나에는 정은보 거래소 이사장과 이억원 금융위원장, 이찬진 금감원장, 오기형 코리아프리미엄·K-자본시장 특별위원회 위원장, 김학균 신영증권 센터장, 조수홍 NH투자증권 센터장, 임태혁 삼성자산운용 ETF운용본부장 등이 참석했다.
김학균 센터장은 “현재 국내 주식시장을 보면서 현실과 동떨어진 것처럼 느끼는 분들이 많이 있을 것”이라면서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금 장은 현실을 꽤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지난 1년만 놓고 보면 코스피가 굉장히 많이 오른 것처럼 보이지만, 기간을 넓혀보면 2023년과 2024년 2년간 오르지 못했던 부분을 만회하는 과정”이라며 “여전히 한국 시장은 싸고, 디스카운트된 시장”이라고 강조했다.
김 센터장은 체감경기와 주가의 괴리에 대해서도 시장의 ‘가격 기능’을 강조했다. 그는 “민간소비와 건설투자가 부진하고 대기업은 해외투자를 늘리고 있어서 국내 체감경기는 굉장히 안 좋은데 주식시장은 고공행진을 이어가다 보니 괴리가 커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수·건설·유통업종 등은 과거 고점 대비 여전히 부진한 반면, 반도체·수출 대형주는 사상 최대 실적을 바탕으로 지수를 끌어올리고 있다”며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도체·AI 장세, 버블보다 ‘이익의 반영’”
김학균 센터장은 특히 “반도체 중심 주가 상승을 버블이라고 말하긴 어렵다”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올해 합산 영업이익은 애널리스트 추정치 기준으로 150조~158조원까지 거론되는데 실제로는 이를 넘어설 가능성도 있다”고 짚었다. 이는 지난 2018년 슈퍼사이클 당시(59조원)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라는 설명이다.
이어 그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등 세계 메모리 3강이 과점 체제를 구축했고, HBM 등은 장기공급 계약이 일반화되면서 예전처럼 ‘찍어내기’식 과잉투자로 사이클이 깨지는 구조도 아니다”라며 “실적과 산업 구조 변화를 감안하면 지금 반도체 주가를 버블로 부르긴 힘들다”고 진단했다.
오히려 한국 시장은 여전히 디스카운트 돼 있다는 판단이다. 그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이 두 종목의 주가수익비율(PER)은 코스피 평균보다 낮고, 역사적으로도 시장 PER을 웃돈 적이 거의 없다”면서 “AI 시대 핵심인 메모리 업체들이 미국 빅테크나 마이크론 대비 상시적으로 디스카운트 받고 있다는 점이야말로 한국 자본시장의 구조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조수홍 NH투자증권 센터장도 AI 버블론에 대해 “결론적으로는 시기상조”라고 선을 그으며 김 센터장의 의견에 힘을 실었다. 그는 “AI 관련 민간 투자 비중은 GDP 대비 1%대 중반으로, 과거 인터넷 버블 당시(2%대 초반)보다 낮다”며 “빅테크의 Capex 확대 계획을 모두 반영해도 2028년쯤 인터넷 사이클 수준에 도달하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이어 “AI 사용이 텍스트에서 이미지·비디오·추론 영역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고, 정상적인 가정 아래에서는 2028년까지 공급 부족이 이어질 것”이라며 “현재 AI 투자 붐을 버블로 규정하는 건 시기상조”라고 강조했다.
주주환원 등 코리아디스카운트 요인 해소 필요
김학균 센터장은 삼성전자를 예로 들어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배당 및 자사주 정책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그는 “삼성전자는 순이익의 30% 정도만 배당으로 돌려주고, 나머지 대부분(당기순이익의 118%)을 설비투자에 쓴다”며 “투자 자체는 필요하지만 주주 입장에서는 자본 비용을 감안한 합리적인 배당·자사주 정책이 부족해 글로벌 동종 대비 할인 요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즉, 미국 애플이 PER 30배까지 받는 것과 달리 메모리 과점 업체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의 밸류에이션이 여전히 한 자리수 후반 수준에 머무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분석이다. 신영증권 분석에 따르면 올해 예상 실적 기준 애플은 순이익의 16%를 설비투자에 쓰는 반면, 배당·자사주 매입 등 주주환원은 당기순이익의 102%에 달한다.
그는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 상당 부분이 설비투자로 다시 들어가는 구조 자체는 성장 측면에서 필요하지만, 주주환원 정책이 명확하지 않으면 시장에서는 항상 ‘디스카운트 요인’으로 평가한다”며 “반도체 실적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아져도 배당·자사주 정책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못 미치면 코리아디스카운트는 쉽게 해소되기 어렵다”고 했다.
5000 안착 위해 “이익 성장·거버넌스 개선” 필요
조 센터장은 코스피 5000을 정점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코스피 5000 안착 조건으로 △기업이익의 지속적 성장 △한국 자본시장의 체질 변화 △미국 자산시장에 대한 신뢰 등 3가지를 꼽으며, 이 중 “체질 변화”를 가장 중요한 변수로 지목했다.
조 센터장은 “지난해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충실의무 범위가 ‘회사’에서 ‘주주 전반’으로 확대된 것은 매우 큰 상징적인 변화”라며 “연말 배당소득 분리과세에 이어, 올해 자사주 소각 제도화, 상속·증여세법 개정, 공개매수 제도 개선 등이 연속성 있게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당국의 목표는 생산적 금융 전환을 위해 자본시장을 정상화하는 것”이라며 “구조적으로 비합리적인 규제·관행을 고쳐야 금융산업이 신경제 산업의 성장과 가계·금융자산의 질 제고를 동시에 촉진하는 선순환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김학균 센터장은 “언제든 조정은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코스피 2000에서 4000 가는 데 18년이 걸렸다. 4000에서 8000 가는 데는 더 짧은 시간이 걸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올해와 내년 반도체 사이클 자체는 괜찮아 보이지만, 한국 시장의 장기적인 성장 경로와 디스카운트 해소는 별도의 고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개인투자자, 대표지수 ETF 또는 반도체 ETF 적절”
임태혁 삼성자산운용 ETF운용본부장은 아직 투자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조금씩 시장에 진입해볼 것을 권했다. 코스피의 상승 추세가 아직 꺾이지 않았다는 판단에서다.
임 본부장은 “코스피 5000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며 “개별 테마를 쫓기보다 대표지수 ETF나 반도체 ETF에 시간을 두고 올라타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작년 한 해를 놓고 보면 특정 섹터·테마를 맞히는 것보다 코덱스 등 대표지수 ETF 수익률이 가장 좋았다”며 “시간적 여유가 부족한 직장인·개인은 반도체 올랐다고 샀다가 또 다른 테마로 갈아타는 식으로 시장을 이기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임 본부장은 “투자는 개인적으로 재미있을 필요도, 짜릿할 필요도 없다”며 “우리 같은 직장인·개미에게 중요한 건 종목 선정이 아니라 시간과 꾸준함”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기술 혁신과 실적에 따라 산업별·종목별 차별화가 강해질수록 개별 종목 투자는 더 어려워진다”며 “대표지수와 AI·반도체·전력 인프라 ETF를 축으로 장기 분산 투자하는 전략이 코스피 6000 시대의 기본 해법”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