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태의 외로운 설계, 새롭게 태어난 한명회 [쿠키인터뷰]

유지태의 외로운 설계, 새롭게 태어난 한명회 [쿠키인터뷰]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주연 배우 유지태 인터뷰

기사승인 2026-02-06 06:00:08 업데이트 2026-02-06 10:36:26
배우 유지태. 쇼박스 제공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배우 유지태(50) 얼굴로 만난 한명회는 철저한 ‘설계’에 따른 것이었다. 최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유지태는 내면부터 외형까지 ‘풍성한 악인’으로 보이기 위해 기울인 노력을 자신했다. 그는 “악역을 제법 많이 맡았었지만 감사하게도 면면이 다 달랐었다. 이번에도 감정의 층위가 잘 느껴질 수 있도록 했다”며 “몇몇 작가나 감독이 악인을 많이 조명한다. 그들이 왜 악인을 매력적으로 봤을지 생각하면서 확장했다”고 밝혔다.

그렇게 유지태는 한명회의 진의를 쫓아갔다. “수양대군이 있지만 자신이 왕이 되고 싶지 않았을까, 그래서 일반 사람들한테는 관대하고 인자하게 접근하지 않았을까, 왕으로서 대접과 인정받고 싶지 않았을까. 그래서 신념이 잘못됐다 해도 자신만의 정의가 살아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매 신 이러한 감정의 층위가 느껴질 수 있도록 설계했어요.”

작품 속 몰라보게 다른 분위기와 외모는 고서에서 힌트를 얻고 AI(인공지능) 챗봇으로 그림을 그리며 완성해갔다. 여기에 거인 같은 느낌을 내고자 5㎏을 찌우고 매서운 눈초리를 위해 테이핑을 했다. 이 과정을 거친 유지태의 새 얼굴이자 한명회의 새 얼굴은 상당히 신선했다. 

“고서에 (한명회의) 기골이 장대하고 (사람들이) 우러러봤다는 얘기가 있었어요. 그때 감독님이 저를 떠올리셨고요. 한명회의 이미지가 궁금해서 AI로 생성해 봤어요. 고적 캡처를 (AI 챗봇에) 다 올려서 번역을 시키고 이런 인물이라고 학습을 시켰어요. 그리고 그림을 그려달라고 했더니 수양대군 뒤에 건장한 남성이 서 있더라고요. 저는 눈이 처져 있고 선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눈가를) 살짝 뒤로 당겼어요. 사이즈는 감독님 요구보다 더 키웠는데 저는 이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했었어요.”

몰입을 위해 일부러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 사람들에게서 떨어져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이런 연기는 어울리면서 만들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고충이 있을 수 있는데 감독님이 금방 캐치를 하셨어요. 감독님이 ‘외롭지?’라고 물었던 적이 있어요. 그때 제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라고 말씀드렸던 기억이 있어요. 제 역할을 유지하는 게 진짜 중요했어요. 다들 정말 행복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제 아들과 행복했습니다(웃음).”

배우 유지태. (주)쇼박스 제공


‘왕과 사는 남자’ 타이틀롤은 단종 이홍위의 곁을 끝까지 지키는 광촌골 촌장 엄흥도다. 유해진이 이 배역을 맡았다. 이로써 유지태와 유해진은 ‘주유소 습격 사건’(1999) 이후 27년 만에 한 작품으로 만나게 됐다.

“유해진 배우의 화양연화 시절을 함께 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영화 작업은 공동 작업이에요. 아직은 감독 예술이라고 해야겠지만요. 그래서 본인이 가진 장점을 100% 영화로 보이기가 굉장히 어려울 수 있는데 장항준 감독님이 유해진 배우의 장점을 공유하고 녹여내고 영화화해서 지금 이런 결과물이 나왔어요.”

동료가 아닌 감독 유지태로서는 유해진은 또 다른 매력이 있는 배우였다. 앞서 제작을 준비했던 멜로 시나리오를 제안하기도 했단다.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은 섹시함이 있어요. 사람들이 알고 있는 코믹한 이미지가 일차원적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끼’에서 보여준 비열함과 그가 갖고 있는 순수함에서 나오는 섹시함이 있어요. 굉장히 매력적인 면모예요.”

이처럼 한명회의 다층적 면모와 유해진의 이면에 집중하는 그답게 스스로 단일한 이미지로 굳어지는 것을 경계했다. 이 가운데 흥행에 대한 기대감도 조심스럽게 내비쳤다. “상업적으로 잘 된 영화에서 맡았던 역할이 악의 중심축이라 어쩔 수 없지만 다행히 제 이미지가 멜로로 떠오르는 영화도 있어요. 연기 인생에서 하나의 인물만 보이는 것을 제일 많이 유의하는데요. 몇몇 장르를 할 기회가 있어서 감사해요. 그런데 사실 제가 천만 배우를 못 해봤어요.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제가 했던 영화 중에서는 가장 높은 스코어였으면 해요.”

심언경 기자
notglasses@kukinews.com
심언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