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에 빠질 수 없는 풍경이 있다. 오랜만에 모인 친척들 앞에서 절을 올리고, 두툼한 세뱃돈 봉투를 받는 아이들이다. 예전엔 아이들이 받은 세뱃돈이 “엄마가 맡아줄게”라는 말과 함께 그대로 부모 지갑 속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엔 분위기가 달라졌다. 자녀 명의 통장을 만들어 세뱃돈을 ‘첫 종잣돈’으로 키워주려는 부모들이 늘면서 청소년 전용 금융상품에 대한 관심도 함께 커지고 있다.
이 틈을 타 금융권도 미래 고객인 알파세대(2010년 이후 출생)를 잡기 위한 경쟁에 불을 지피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최고 연 4%대 금리를 내건 청소년 전용 적금을 앞다퉈 내놓고, 인터넷은행과 카드사들은 10대 소비 패턴을 반영한 체크·선불카드로 ‘첫 금융 경험’ 선점에 나서는 모습이다.
“세뱃돈, 통장에 잠가둘까” 고금리 청소년 적금 셋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시중은행은 설 연휴를 앞두고 청소년 전용 적금 포트폴리오를 잇따라 손질했다. 세뱃돈 액수가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수백만원까지 늘어나면서 “어디에 넣어두면 가장 잘 불어날까”를 둘러싼 부모들의 상품 비교도 치열해졌다.
KB국민은행 ‘KB 영유스 적금’은 넉넉한 납입 한도를 앞세워 세뱃돈 통장으로 주목받는다. 대부분 청소년 적금이 월 30만~50만원 수준으로 납입 한도를 제한한 것과 달리 이 상품은 월 최대 300만원까지 넣을 수 있다. 자유적립식 상품으로 매월 원하는 금액을 넣을 수 있고 가입 기간은 1년이지만, 자동 재예치를 신청하면 매년 원리금이 자동으로 굴러간다. 기본금리는 연 2%대, 우대 요건을 채우면 최고 연 3%대 중반까지 금리가 올라간다.
우리은행 ‘우리 아이행복적금2’는 ‘안전’ 콘셉트를 전면에 내세운 상품이다. 경찰서나 ‘안전드림’ 앱을 통해 아동 지문을 사전 등록하고 관련 서류를 제출하면 1.0%포인트(p), 본인 명의 계좌에서 자동이체를 걸면 0.2%p를 얹어 최고 연 3.65% 금리를 준다. 아동 실종·유괴 예방 시스템과 적금을 연계한 구조라 안전 이슈에 민감한 부모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하나은행 미성년자 전용 적금 ‘꿈꾸는 저금통’은 고금리 대표다. 증권연계 계좌 등록, 주택청약종합저축 가입 등 우대 조건을 채우면 최고 연 4.0% 금리를 받는다. 1년 만기 후 원리금을 자동 재예치해 세뱃돈을 수년간 굴릴수록 복리 효과를 키울 수 있다. 이밖에 신한·농협 등도 분기 납입 한도, 가족 우대 조건 등을 내세운 청소년 전용 적금을 운영하며 세뱃돈 수요를 잡기 위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설 연휴 뒤 2~3주가 아이 이름으로 통장·적금을 여는 ‘피크 시즌’”이라며 “금리만 볼 게 아니라 우리 집 아이가 실제로 얼마를 넣고 얼마나 쓸지, 부모가 우대 조건을 꾸준히 챙길 수 있을지까지 감안해 상품을 골라야 한다”고 말했다.
“세뱃돈, 써보며 배우자” 인터넷은행·카드사, 10대 ‘첫 카드’ 공략
세뱃돈을 모으는 통장만큼이나 ‘써보면서 돈을 배우게 하자’는 흐름도 거세다. 인터넷은행과 카드사들은 청소년 전용 선불·체크카드를 앞세워 알파세대의 첫 결제 경험을 자사 플랫폼 안으로 끌어들이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 가운데선 카카오뱅크 ‘미니(mini)’가 대표적이다. 휴대전화 인증만으로 간편하게 발급할 수 있고, 별도 계좌 없이도 최대 50만원까지 충전해 사용할 수 있다. 앱에서 실시간으로 사용 내역과 잔액을 확인할 수 있어 아이가 스스로 “이번 달엔 어디에 얼마나 썼는지”를 체감하며 예산을 조절해 볼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케이뱅크 ‘알파카드’는 게임 요소를 접목해 눈길을 끈다. 미션을 수행하면 캐시백을 제공하고, 교통카드 기능과 편의점·패스트푸드 등 10대 선호 업종 중심의 혜택을 담았다. 결제 금액에 따라 포인트를 쌓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퀘스트를 깨면 보상이 주어지는’ 구조를 도입해 카드 사용 자체를 놀이처럼 느끼게 하려는 의도다.
전통 카드사들도 10대 전용 체크카드로 경쟁에 뛰어들었다. 신한카드 ‘처음 체크’는 청소년들의 주요 활동 시간대인 오후 4~8시 ‘방과 후’ 결제에 포인트 추가 적립을 붙인다. 전월 실적 기준을 10만원으로 낮춰 용돈 수준의 소비에도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했다. NH농협카드 ‘폼 체크카드’는 편의점, 카페, 패스트푸드점은 물론 올리브영, 서점 등 10대가 자주 찾는 가맹점에서 건당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KB국민카드는 캐릭터 마케팅으로 차별화를 시도한다. 인기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 10대 전용 체크카드는 만 12세 안팎 고객도 쉽게 발급받을 수 있게 설계했고, 전월 실적이 없더라도 기본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이후 이용 실적이 쌓이면 할인 폭을 키우는 구조로, 자녀가 ‘계획적으로 카드 한도를 관리해보는 경험’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목표다.
금융권에서는 알파세대를 둘러싼 이번 경쟁을 단기 이벤트가 아닌 장기전으로 본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현재 초등·중학생이 쓰는 앱과 카드가 20대 이후 주거래 은행·카드 선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눈앞의 수익보다 ‘어릴 때부터 익숙하게 만들어 두는 것’이 앞으로 10년 뒤 판도를 가를 핵심”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