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 도이세슈티 소형모듈원전(SMR) 프로젝트가 최종 투자 결정(FID) 단계로 진입하면서 한미 원전 협력 성과가 실전 모델로 구체화되고 있다. 주기기 제작을 맡은 두산에너빌리티는 뉴스케일파워의 핵심 파트너로서 주기기 공급망에 깊숙이 들어가게 되면서, ‘제조 하청’에 머물지 않고 고부가가치 플랫폼으로 도약할 수 있을지 시험대에 올랐다.
13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루마니아 국영 원자력공사(Nuclearelectrica)는 12일(현지시간) 주주총회를 열고 도이세슈티 SMR 사업 안건을 승인, 실행 단계 진입을 확정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미국 설계-한국 제조’라는 양국 협력의 실전 모델로 평가받는다. 이번 결정으로 두산에너빌리티의 수주 행보도 본격 궤도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업계에서는 “수주 성과가 곧바로 실익으로 연결되느냐”는 점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원전 생태계에서 고부가가치로 꼽히는 핵연료 공급과 운영·유지보수(O&M) 시장은 뉴스케일파워가 주도권을 쥐고 있어, 한국 기업들이 장기 서비스 수익에서 소외될 경우 전체 수익성이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가 공존한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이런 구조적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대체 불가능한 제작 역량’을 협상 레버리지로 내세우고 있다. SMR 주기기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초대형 단조 설비와 제작 경험은 글로벌 설계사들이 두산을 필요로 하는 공급망 구조를 만들었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두산의 제작 지배력이 단순 단가 협상을 넘어 계약 조건 전반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분석한다. 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학과 교수는 “주기기 제작에서 두산은 전 세계적으로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에 뉴스케일로서도 단가를 무리하게 깎기 어려우며, 제작 단계에 우리만의 설계가 상당 부분 포함돼 있어 단순 하청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업계가 특히 주목하는 쟁점은 제조 지식재산권(IP)과 비용 구조다. 과거 한국전력이 UAE 바라카 원전을 수주하고도 웨스팅하우스와의 IP 소송으로 인해 체코 등 제3국 수출에 차질을 겪었던 전례가 있는 만큼, 제조 단계에서 축적되는 기술과 권리를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향후 경쟁력의 핵심으로 꼽힌다.
뉴스케일이 기본 방향을 제시하더라도 실제 완성품으로 구현하는 제조 IP는 두산의 영역이다. 단순히 설계도대로 제작하는 수준을 넘어, 설계 최적화와 공정 효율화를 직접 수행하는 ‘제조 설계자’로서의 지위는 하청 우려를 상쇄하는 핵심 근거가 된다. 기본 설계의 틀 안에서 제작 가공성을 극대화하는 상세 설계 능력을 통해 독자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전략이다.
또 다른 과제는 ‘초도 비용(FOAK) 리스크’를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배분하느냐다. SMR은 동일 노형을 반복 제작할수록 단가가 낮아지는 배치(Batch) 생산 구조가 핵심이지만, 초도 호기 단계에서는 개발·제작 비용이 높을 수밖에 없다.
한 원전 전문가는 “초도 호기에서 발생하는 불확실한 비용을 제작사가 모두 떠안는 구조를 피해야 한다”며 “양산 효과가 발생하는 후속 물량에 대한 수주를 계약 단계에서 명문화해 손실은 최소화하고 이익은 이연시키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향후 원자재 가격, 인건비, 환율 변동을 판가에 반영하는 ‘자동 조정 조항(Escalation Clause)’ 마련 필요성도 함께 제기된다. 이러한 안전장치 없이는 거시경제 변동에 따른 리스크가 오롯이 제조사에 집중될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대형 플랜트 사업의 발목을 잡았던 고정가(Fixed Price) 계약 방식을 지양하고, 최소한 핵심 기자재에 대해서는 가격 연동 메커니즘을 확보해야 진정한 의미의 '리스크 분담형 파트너십'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궁극적으로 독자적인 원천 기술력을 바탕으로 구조적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미국 설계 모델인 뉴스케일파워 생산에 주력할 경우, 정부가 국책 과제로 추진 중인 한국형 독자 모델 ‘i-SMR’의 생산 기반과 글로벌 시장 진입 기회가 상대적으로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원자력 전문가는 “독자 노형에 대한 확고한 주권이나 공동 설계 지분 확보 없이는 미국 주도의 공급망 구조를 완전히 벗어나기 어렵다”며 “한국 원전 산업이 단순 제작처를 넘어 글로벌 원전 생태계의 플랫폼 주체로 이동하기 위한 전략적 전환과 기술적 자립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