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용 감독의 결핍은 가능성…‘넘버원’으로 시작한 2R [쿠키인터뷰]

김태용 감독의 결핍은 가능성…‘넘버원’으로 시작한 2R [쿠키인터뷰]

영화 ‘넘버원’ 김태용 감독 인터뷰

기사승인 2026-02-15 06:00:10
영화 ‘넘버원’을 연출한 김태용 감독.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11일 개봉한 영화 ‘넘버원’은 어느 날부터 엄마의 음식을 먹을 때마다 하나씩 줄어드는 숫자가 보이기 시작한 하민(최우식)이 그 숫자가 0이 되면 엄마 은실(장혜진)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엄마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다. 로그라인만 보면 흔한 신파 영화일 것이라 짐작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자칭 ‘뉴 제너레이션 가족 영화’다. 오히려 풀어내는 방식이 담담해서 가슴이 먹먹해지는 쪽에 가깝다. 잘 버텨낸 사람이 지난했던 과거를 반추할 때 취하는 태도와 묘하게 닮은 내러티브가 흥미로웠다. 알고 보니 그 ‘잘 버텨낸 사람’이 김태용 감독이었다.

2014년 ‘거인’으로 데뷔한 김 감독은 2017년 ‘여교사’에 이어 9년 만에 ‘넘버원’을 스크린에 걸게 됐다. 특히 ‘거인’은 김 감독에게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가상, 제35회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제36회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을 안겼다. 그로부터 12년 만에 상업영화 ‘넘버원’을 선보이게 된 김 감독은 지난 9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저한테는 첫 상업영화인데 존경하는 류승완 감독님, 장항준 감독님 영화 사이에 있는 게 뿌듯하고 영광”이라고 말했다.

‘거인’은 오랜 친구 최우식을 남긴 작품이기도 하다. 김 감독과 최우식은 아주 오랜만에 친구가 아닌 ‘일로 만난 사이’가 됐다. “‘거인’을 만든 지 11년이에요. 어린 친구들이 ‘우식 오빠 입덕했어’ 하고 다른 드라마를 찾다가 대표작이 ‘거인’이라고 하니까 보고 울었다는 DM(다이렉트 메시지)을 많이 보내왔어요. GV 때도 ‘영재는 잘 지내나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고요. 특히 ‘거인’을 보고 자기 얘기 같다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타이밍이 잘 맞았죠.”

김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최우식의 성장을 확실히 체감했다. 연기에 임하는 자세부터 그를 향한 대중의 시선까지 대견하지 않은 구석이 없었단다. “사투리 연기가 걱정됐는데 잘 해내고 싶다며 정말 치열하게 연습했어요. ‘어른이 됐구나’ 생각했죠. 또 10년 된 친구다 보니까 제 말투를 잘 따라 해요. 제 대사를 가장 잘 소화하는 배우일 거예요. 그리고 ‘거인’으로 무대인사를 돌 때는 사람들이 알아볼까 말까 했었는데 이젠 난리가 나더라고요. 배우도 버티는 직업인데 포기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감개무량했어요.”

영화 ‘넘버원’을 연출한 김태용 감독.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거인’은 김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잘 알려져 있는데 ‘넘버원’ 역시 그의 삶과 맞닿은 구석이 많다. 자신을 보육원에 맡기기 전 어머니가 해줬던 소고기뭇국, 나고 자랐던 부산 아미동 등 로케이션이 그렇다. 미디어에서 다뤄졌던 부산과 다른 ‘진짜 부산’이다. “엄마랑 13살까지 같이 살았는데 엄마가 그동안 해줬던 소고기뭇국이 너무 그리웠어요. 한 달에 한 번씩 그 맛을 따라 하려고 해보는데 그 맛이 도저히 안 나요. 그 맛을 따라가는 여정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또 이번에 느꼈던 게 바다가 거의 안 나와요. 제 무의식 속 부산은 계단, 산복도로였던 거죠. 이런 세밀한 요소들이 관객들에게 위로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넘버원’ 특유의 위트도 김 감독 고유의 것이다. ‘결핍은 결점이 아닌 가능성’이라는 대사도 비슷한 결이다. 그는 이러한 정서를 바탕으로 연출자로서 2라운드를 치르기로 다짐했다. “하민이가 암에 걸리고 부산에 내려왔을 때 엄마가 치매에 걸린 척 장난을 치잖아요. 어쩜 아들이 다 죽어 가는데 그 분위기에 이런 장난을 칠 수 있을까 싶죠. 제 인장 같은 거예요. ‘거인’, ‘여교사’가 저의 1라운드였다면 이제 2라운드에는 이런 아이러니와 유머가 나오는 상업 영화를 만들어 나가고 싶어요. 그리고 영화감독 혹은 배우가 꿈인데 집안 형편 때문에 꿈을 갖는 게 죄책감이 든다는 메시지를 받고 마음이 아팠던 적이 있어요. 나도 이렇게 (감독을) 하는데 희망을 가지길 감히 바라요.”

또한 김 감독은 ‘넘버원’을 통해 대중적인 영화도 충분히 잘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했다. 이를 가시적인 수치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숨기지 않았다. “평단의 많은 지지를 받았었는데 관객들에게 재능을 인정받고 싶었어요. 그런 면에서 긴장이 됩니다. 제가 땅에 붙어 있는 이야기를 좋아해요. VIP 시사회 때 다들 제게 영화가 아닌 엄마에 대해 말씀하시더라고요. 더 슬펐던 건 그간 그 얘기를 할 사람이 없었다는 거예요. 이 영화 만들길 잘했다고 생각했죠. 이번에 ‘여교사’ 때 같이 했던 스태프들이 꽤 많았는데요. 영화 두 편을 찍는 사이에 30대가 지나갔더라고요. 손익분기점을 넘고 다음 영화를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심언경 기자
notglasses@kukinews.com
심언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