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파예트에 건설하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어드밴스드 패키징 공장이 다음 달 첫 삽을 뜬다. 인공지능(AI) 반도체 핵심 부품인 HBM을 미국 현지에서 최종 조립해 엔비디아 등 빅테크에 공급하는 ‘전진 기지’ 구축이 본격화되는 것이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23일(현지시간) 공장 부지에 울타리를 설치하고, 3월2일부터 지반 평탄화와 토공 작업 등 기초공사에 본격 돌입한다. 2024년 4월 38억7000만달러(한화 약 5조2000억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한 지 약 2년 만이다. 양산 목표 시점은 2028년 하반기다.
HBM은 인공지능(AI) 반도체에 탑재되는 초고속 메모리로, 대규모 데이터를 동시에 처리해야 하는 생성형 AI 시대의 핵심 부품이다. SK하이닉스는 현재 엔비디아 HBM 공급 점유율 1위 업체로, 차세대 HBM4·HBM4E까지 공급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천-청주-인디애나’ 삼각 편대…엔비디아로 직배송
SK하이닉스는 이번 착공으로 3개 거점을 잇는 글로벌 분업 체계를 완성하게 된다. 경기도 이천에서 연구개발(R&D)와 기초 소재를 개발하고, 충청북도 청주 M15X 공장에서 HBM 웨이퍼를 생산한 뒤 미국으로 보내 최종 조립 후 엔비디아 등 현지 고객에게 곧바로 납품하는 구조다.
SK하이닉스는 최근 청주 테크노폴리스에 19조원을 투입해 '패키징&테스트 전용 팹(P&T7)'을 신설하기로 했다.
HBM4부터는 고객사 맞춤형 설계 비중이 높아지면서 엔지니어 간 실시간 협업이 중요해졌다. 미국 현지 생산 거점은 엔비디아 등 주요 고객과의 물리적 거리를 단축해 대응 속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차세대 HBM4부터는 고객사 요구에 맞춰 설계를 수시로 조율해야 한다"며 "엔비디아 본사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미국 현지 거점은 마이크론, 삼성전자와의 경쟁에서 결정적 이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장이 들어서는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파예트는 미국 명문 공대 퍼듀대학교 바로 옆이다. SK하이닉스는 퍼듀대와 연구 협력 및 인재 양성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할 예정이다.
칩스법 불확실성에도 ‘GO’…세액공제·관세 회피 효과
정치적 변수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칩스법(CHIPS Act) 재검토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으며, 일부 보조금 조건이 조정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물론 장밋빛 전망만 있는 건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칩스법(CHIPS Act) 재검토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으며, 일부 보조금 조건이 조정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하워드 루트닉 상무장관도 바이든 정부가 약속한 보조금 일부가 "지나치게 관대했다"며 재협상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SK하이닉스는 미 상무부로부터 최대 4억5800만달러(약 6300억원)의 직접 보조금과 최대 5억달러 규모 저리 대출 지원을 약속받은 상태다.
설령 보조금이 일부 조정되더라도, 미 재무부가 확정한 ‘투자액의 최대 25% 세액공제’ 혜택이 적용되면 경제성은 유지된다는 계산이다. 여기에 현지 생산 제품은 향후 통상 마찰이나 관세 부과 리스크를 회피할 수 있다는 점도 결정적 요인으로 꼽힌다.
업계 관계자는 “현지에서 만들어 현지에서 파는 구조가 가장 확실한 안전망”이라며 “AI 반도체 공급망이 지정학 변수에 흔들리는 상황에서 미국 생산 거점은 보험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패키징 전쟁’ 선점…HBM4E-루빈과 시기 맞물려
SK하이닉스의 인디애나 공장은 업계 최초의 미국 내 AI용 어드밴스드 패키징 생산시설이다.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은 “AI용 어드밴스드 패키징 시설을 미국에 구축함으로써 고객 맞춤형 대응 역량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곳에서 생산될 HBM4·HBM4E는 엔비디아 차세대 AI 플랫폼 ‘루빈’에 탑재될 것으로 예상된다. 2028년 양산 개시 시점과 차세대 GPU 로드맵이 맞물리면서, SK하이닉스의 공급망 전략은 한층 공고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재성 중앙대학교 AI학과 교수는 “AI 반도체 성능 경쟁의 축이 칩 설계에서 ‘얼마나 정밀하게 조립하느냐’로 이동하는 흐름 속에서 선점 효과를 노린 포석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