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가을, 프랑스에서 온 20대 여성 두 명이 서울 마포구 연남동 골목길로 들어섰다. 이들이 찾은 곳은 유명 성형외과가 아니다. 인스타그램에서 7만 팔로워를 보유한 5평짜리 ‘속눈썹 펌’ 1인샵이다.
샵의 문을 연 손님들이 번역기를 켜 질문을 건네면서 문제는 시작됐다. “애플페이 되나요?” A원장은 당황하며 답한다. “카드 없어요?” 손님은 신용카드가 없고 원화 현금도 부족하다. 원장은 난처한 표정으로 종이에 계좌번호를 적었다. 손님은 환율 계산기를 이용해 유로를 원화로 바꾸고, 송금 수수료를 확인한다. 여성들은 15분 후 기대했던 속눈썹을 얻었지만 결제에만 12분을 허비했다. 이날 해당 샵엔 별점 5개와 함께 ‘결제가 너무 복잡하다’라는 리뷰가 남겨졌다.
최근 의료관광을 위해 한국을 찾는 외국인의 수는 한해 117만 명을 넘어섰다. 그런데 숫자의 이면에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117만 명 중 85%가 서울로 향하며, 대개 강남의 유명 병원으로 쏠린다. 외국인들이 쓰는 돈은 강남의 빌딩에 쌓일 뿐 골목 곳곳으론 흐르지 않는다. 그간 표면적 숫자를 늘리는 데만 급급했던 셈이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117만 명의 지갑은 과연 어디에서 열리고 있는가?”
의료관광은 3.0 시대가 열린 상황이다. 아이돌 메이크업, 퍼스널 컬러 진단이 대세다. 과거 1.0 시대(2000~2015년) 땐 중국인의 쌍꺼풀·코 성형이 몰리면서 강남 성형외과가 전성기를 맞은 바 있다. 2.0 시대(2015~2020년)에는 중동·러시아 부유층의 암 치료, 정밀 건강검진 등이 이어졌다.
과거가 수술(Surgery)과 치료(Cure) 중심 시대였다면, 지금은 케어 & 컬처(Care & Culture)의 시대다. 문제는 시스템이 여전히 1.0 시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현재의 낙수 효과는 강남의 대형 성형외과나 성수동의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멈춘다. 정작 K-뷰티의 저변을 지탱하는 수만 명의 골목 상권 즉 네일, 왁싱, 반영구화장 등에는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 장사를 할 수 있게 ‘판’을 깔아 주는 공공의 역할이 중요한 때다.
연남동 뷰티샵의 A원장은 이미 글로벌 OTA(온라인 여행사)에 입점했다. 높은 수수료를 내고, 상품 사진도 올렸다. 그런데 3개월 동안 예약이 거의 없다. 왜일까. 플랫폼 알고리즘 때문이다. 트립닷컴, 클룩 등은 리뷰 많고 예약 많은 상품 위주로 상위 노출한다. 신규 입점 소상공인은 검색 결과 하단에 묻힌다. 노출은 결제 시스템을 깔아준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공공이 움직여야 한다. 공공이 ‘큐레이션 보증’을 전개하면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 지자체나 유관 기관이 위생·품질 기준을 통과한 1000개 골목 뷰티샵을 선정해 ‘Seoul Curated Beauty’ 공식 리스트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 리스트를 트립닷컴, 클룩, 네이버, 구글맵에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로 자동 연동한다. 플랫폼 검색 시 ‘Seoul Curated’ 배지가 달린 샵은 알고리즘과 무관하게 상단에 노출된다. 이것은 복지가 아니라 투자다. 민간 플랫폼은 대형 병원만 밀어준다. 돈이 되기 때문이다. 공공이 나서 골목을 뒷받침해야 한다.
외국인이 두려워하는 지점도 보완할 필요가 있다. 외국인은 ‘여기 위생은 괜찮을까?’, ‘문제가 생겼는데 문을 닫고 도망간다면?’ 등의 궁금증을 갖고 있다. 구글 리뷰만 믿고 왔다가 비위생적 시술로 피부 트러블을 겪은 사례는 SNS에 즉시 퍼진다. 한 건의 사고가 K-뷰티를 흔들 수 있다.
해법을 기존 인증제에서 찾긴 어렵다. 지난 20년 동안 정부와 지자체가 만든 수많은 인증제는 담당 공무원의 2년 순환보직 후 제구실을 못했다. 민간 위탁은 더 심하다. 위탁업체는 인증 수수료만 챙기고, 관리는 허술하다. 반면 미슐랭 가이드는 어떻게 100년을 이어왔을까. 답은 간단하다. 자기 브랜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미슐랭이 엉터리 식당에 별을 주면 타이어 회사의 이미지가 무너진다. 따라서 사활을 걸어 익명 조사원을 보내고, 매년 재평가한다.
여기에 대안이 있다. 공공은 돈을 대고, 민간이 브랜드를 걸게 하는 방법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Seoul Beauty 인증 운영을 맡아 달라”고 플랫폼에 제안할 필요가 있다. ‘Naver Verified Seoul Beauty’, ‘Kakao Certified Beauty’ 등 플랫폼의 이름을 걸고 마케팅 예산을 지원하는 것이다. 마케팅을 위해 인천공항 광고, 글로벌 박람회 부스, 외국인 관광 데이터 API 등을 제공하는 대신 인증샵에서 위생 사고가 3건 이상 생기면 자격을 박탈하는 식이다. 네이버가 인증한 샵에서 사고가 나면 네이버 검색 신뢰도에 타격이 온다. 카카오가 선정한 샵이 문제를 일으키면 카카오맵 평점 시스템에 균열이 간다. 플랫폼은 엄격한 선정과 지속적 관리를 이어가고자 힘을 실을 것이다. 공무원은 2년마다 바뀌지만, 플랫폼은 영원하다. 이것이 ‘미슐랭 모델’이다.
더불어 외국인이 강남에 집중하는 실타래를 풀어내야 한다. 연 100만 명이 강남 3개 구(강남·서초·송파)에 몰린다. 연남동, 성수동, 이태원의 소상공인 수천 명은 외국인 손님을 구경도 하지 못한다.
이는 ‘강남 입구, 골목 경험’ 구조를 통해 쇄신할 수 있다. 강남 병원에서 시술받은 관광객이 깔아놓은 앱에 ‘내일 성수동 네일샵 어때요? 강남보다 30% 저렴. 인스타 인증샷 핫플 보장!’ 등의 문구가 뜨고 클릭 한 번으로 예약이 완료되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다. 바로 골목으로 흐르는 ‘강남 허브 전략’이다. 강남이 100만 명을 받되, 그 중 30만 명을 서울 각지로 보낼 수 있다.
지자체, 유관 기관이 강남 병원들과 협업해 시술 후 회복 기간에 즐길 수 있는 ‘히든 서울(Hidden Seoul)’ 뷰티 루트를 설계하면 강남은 모객의 입구가 되고, 골목이 경험의 확장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기대할 수 있다.
K-뷰티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기술도, 원장의 손재주도 완벽하다. 문제는 단 하나, 시스템이 골목까지 내려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100만 명이 서울을 찾고 있지만 연남동 원장은 아직도 종이에 계좌번호를 적고 있다. 이는 공공의 책임이다. 화려한 홍보 영상을 찍을 돈으로 소상공인들이 실제로 외국인 손님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기술은 도구일 뿐, 관광의 본질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경험하는 것이다. 서울의 뷰티 골목이 살아날 때 비로소 K-뷰티는 ‘강남의 성형’을 넘어 지속 가능한 ‘여행 상품’이 되고, ‘강남의 빌딩’이 아닌 ‘골목의 여행’이 된다.
[이재환 박사 약력]
현 고양시 문화재단 선임직이사
현 강남구 관광진흥자문위원회 위원
전 한국관광공사 부사장
전 경기도청 도지사 경제특별보좌관
전 서울시립대학교 겸임교수
전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전 KT 경제경영연구소 연구위원
전 사단법인 한국창업진흥협회 초대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