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만에 풀린 구글 고정밀 지도…미래산업 기회인가, 안보 리스크인가

18년 만에 풀린 구글 고정밀 지도…미래산업 기회인가, 안보 리스크인가

정부, 1대 5000 고정밀 지도 국외 반출 ‘조건부 허용’
2007년 이후 세 번째 도전 끝 결실…韓, 안보 안전장치로 타협
관광·스타트업 “글로벌 고속도로 기대” vs 토종 업계 “시장 잠식 우려”

기사승인 2026-03-04 06:00:17 업데이트 2026-03-04 11:21:02
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이혜민 기자

정부가 구글의 1대 5000 축척 고정밀 지도 데이터 국외 반출을 조건부로 허용했다. 2007년 첫 요청 이후 세 번 도전 끝에 내려진 결정이다. 단순히 ‘길 찾기’ 편의성과 안보 논란을 넘어 자율주행·로봇·AI 등 미래 산업 주도권과 맞물린 사안으로 확대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3일 정부와 정보기술(IT) 업계 등에 따르면 국토교통부와 국토지리정보원은 지난달 27일 ‘측량성과 국외반출 협의체’ 회의를 열고, 구글이 신청한 1대 5000 수치지도 국외 반출을 영상 보안처리, 좌표 표시 제한, 국내 서버 활용 및 사후관리 등 조건 이행을 전제로 허가하기로 했다.
 
구글이 반출을 요청한 1대 5000 지도는 실제 거리 50m를 지도상 1cm로 표현하는 고정밀 데이터 자료다. 현행 공간정보관리 체계에서 1대 2만5000보다 세밀한 지도를 국외로 반출하려면 국토부 장관 승인이 필요하다. 법적 허가가 필요한 고정밀 지도가 해외 기업에 제공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는 “지도 분야 비관세 장벽 논란을 완화하면서도 안보 취약성을 줄이는 절충안”이라고 설명했다.

달라진 세 번째 신청…핵심은 “국내에서 걸러 반출”
 
구글은 2007년 국내 1대 5000 수치지도를 해외 서버로 이전해 활용할 수 있도록 처음 요청했으나, 정부는 군사·보안시설 노출 가능성을 이유로 불허했다. 2016년 재도전 때도 정부는 국내 서버 설치, 군사시설 모자이크 처리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지만, 구글이 “글로벌 통합 인프라 운영 원칙상 특정 국가에만 별도 서버를 둘 수 없다”며 수용하지 않아 불허 결정이 유지됐다.

이후 구글은 지난해 2월 반출을 재신청했고, 협의체는 같은 해 11월 심의 과정에서 기존 쟁점이던 군사·보안시설 노출, 좌표 정보 표시, 서버 및 사후관리 방안을 구체화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구글이 올해 2월5일 보완신청서를 제출했고, 협의체는 기술적 요건 충족 여부를 검토해 조건부 허용으로 결론을 냈다.

이번 결정 조건의 핵심은 ‘허용’ 자체보다 반출 구조에 있다. 정부는 원본 데이터를 구글이 곧바로 해외 서버로 가져가는 방식이 아니라, 국내 제휴사가 국내 서버에서 먼저 가공한 뒤 정부의 검토·확인을 거친 데이터만 국외로 나가도록 했다. 구글이 한국에 자체 데이터센터를 짓는 대신 국내 제휴사 서버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타협점을 찾은 셈이다.

조건은 촘촘…3D 지형정보는 제외, 좌표·영상은 제한

정부는 안전장치를 다층으로 걸었다. 구글이 구글맵·구글어스 등 글로벌 서비스에서 한국 영토의 항공·위성사진을 제공할 때 군사·보안시설이 보이지 않도록 모자이크 등 영상 보안처리를 해야 하고, 좌표 정보는 가리거나 노출을 제한해야 한다.

반출 범위에도 선을 그었다. 등고선 등 3차원(3D) 지형 정보, 군사·국가중요시설, 지하시설물 등 안보적으로 민감한 정보는 반출 대상에서 제외된다. 정부는 등고선 정보 등이 침투 경로 분석이나 미사일 타격 좌표 설정 등에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제한했다고 설명했다.
 
사후관리 조건도 추가됐다. 군사시설이 새로 생기거나 변경될 경우 이를 즉시 반영하고, 안보 위협 시 서비스를 즉각 제한하는 이른바  ‘레드버튼’ 형태의 긴급 중단 체계가 포함됐다. 구글이 국내에 ‘한국 지도 전담관’을 상주시켜 정부와 상시 소통하며 보안사고에 신속히 대응하는 구조도 마련된다.

정부는 조건 이행 여부를 직접 확인한 뒤에야 실제 데이터 반출을 허용한다는 방침이다. 업계에서는 구글의 시스템 적용에만 약 6개월이 소요될 수 있고, 정부의 이행 검토까지 포함하면 실제 서비스 개시까지는 수개월 이상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반쪽 구글맵’ 벗어나나…관광·스타트업 “글로벌 나아갈 고속도로”

이번 결정으로 가장 먼저 체감될 변화는 한국에서 ‘구글 지도 서비스의 기능 고도화’ 다. 그동안 구글맵은 한국에서 길찾기·내비게이션 기능이 제한돼 ‘반쪽 서비스’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고정밀 지도가 반출되면 구글은 글로벌 서비스와 유사한 수준의 길찾기·내비게이션을 한국에서도 구현할 수 있다.
 
지도 기반 스타트업 데이트립의 윤석호 대표는 “정부의 이번 결정은 한국 스타트업이 글로벌 시장으로 나가는 고속도로가 뚫린 것과 같다”며 “관광객들이 익숙한 지도 사용이 가능해지면 ‘낯섦에 대한 두려움’이 ‘설렘’으로 바뀌고, 골목 상권까지 외국인의 발길이 닿는 낙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산업계의 시선은 더 멀리 향한다. 자율주행차, 배달·경비 로봇, 드론 배송, 디지털 트윈 도시 등은 모두 정밀한 3D 공간정보를 바탕으로 움직인다. 고정밀 지도 반출이 허용되면 구글은 이를 자율주행·스마트시티 플랫폼에 활용해 글로벌 서비스를 국내에 그대로 들여올 수 있다.

국내 기업도 수년간 자체 데이터를 쌓는 대신 이미 구축된 글로벌 인프라 위에서 서비스 경쟁에 집중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또 한국 시장이 글로벌 자율주행·로봇 서비스의 테스트베드로 부상하면서 관련 투자와 일자리가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박승규 창원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도 데이터 개방은 국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고 디지털 경제에서 국가 위상을 강화하는 계기”라며 “위치 기반 혁신 서비스 확산을 통해 관광산업 부가가치 창출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토종 지도·공간정보 업계 ‘시장 잠식’ 우려…안보 리스크도 잔존

반면 국내 지도·공간정보 업계 반응은 냉랭하다. 한국공간정보산업협회가 239개 회원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 기업의 90%가 구글 고정밀 지도 반출에 반대했다. ‘매우 반대’ 67%, ‘반대’ 23%였고 찬성은 3%였다. 반출이 이뤄질 경우 장기 매출에 부정적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응답도 88%였다. 부정 요인으로는 ‘구글의 독점 형성 및 국내 시장 잠식(30%)’, ‘무상 유출로 인한 경쟁력 저하(27%)’, ‘국내 사업자와 역차별 심화(21%)’ 순이었다.
 
국내 한 플랫폼 관계자는 “규제·과세 부담이 상대적으로 다른 글로벌 빅테크에 고정밀 지도를 허용하면 형평성 논란이 불가피하다”며 “자율주행·스마트시티 핵심 자산까지 빼앗길 수 있다”고 말했다.

안보 논란도 남는다. 등고선·군사시설 데이터 등을 반출 대상에서 제외했더라도, 데이터가 해외로 나간 뒤 재가공·결합 과정을 100% 통제하기는 어렵다는 현실적 한계가 있다. AI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가림 처리된 시설도 주변 위성영상·다른 데이터와 결합해 추정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장훈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이번 결정은 안보 우려와 통상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한 결과로, 평가는 시간이 지나야 가능하다”며 “중요한 것은 허용 여부가 아니라 데이터 접근 및 국내 산업과의 형평성 문제를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하느냐”라고 말했다. 이어 정 교수는 “제도적 보완이 병행된다면 긍정적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혜민 기자
hyem@kukinews.com
이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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