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의 사표 고형산 판서, 횡성의 자랑스러운 유산

공직자의 사표 고형산 판서, 횡성의 자랑스러운 유산

장신상 전 횡성군수

기사승인 2026-03-04 13:31:42
장신상 전 강원 횡성군수. 쿠키뉴스DB

조선 11대 임금 중종이 1516년 1월 25일 신하들과 병조, 호조판서 인사를 하면서 나눈 이야기가 ‘중종실록’에 이렇게 나온다. 

이조에 전교하기를, "병조 판서(兵曹判書) 신용개(申用漑)가 병으로 사직하였으니, 변방의 일을 아는 자로 갈음하여야 할 것인데, 고형산(高荊山)이 북방의 일을 갖추 안다. 호조(戶曹)가 중하기는 하나 그 직임에 이미 오래 있었으니, 형산을 주의(注擬)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매, 이조가 고형산을 병조 판서로 주의하되 아뢰기를, "방금 경비(經費)의 일이 매우 중한데, 변방의 군수(軍需)가 지극히 적습니다. 고형산이 호조를 맡아서 밤낮으로 생각하며 그 직임에 힘을 다하니, 빨리 갈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신의 뜻일 뿐 아니라 조정의 의논입니다. 호조의 일이 병조보다 중하니, 갈지 마소서." 하였으나, 상이 고형산에게 낙점하고 전교하기를, "고형산이 직사(職事)에 부지런함을 내가 모르지는 않으나, 형산이 당하관(堂下官)이던 때부터 여러 번 북방의 일을 맡아서 병사(兵事)에 갖추 익숙하므로 제수하는 것이다." 하였다.

중종이 북방을 두루 잘아야 하니 고형산(高荊山 1453~1528)이 적임이라고 하자, 이조가 ‘형산은 호조에 적임이며 이는 온 조정의 뜻이니 유임하자’며 팽팽히 맞선다. 얼마나 일을 잘하는 관리였으면 임금과 조정이 나서서 이랬을까. 고형산 판서는 병조와 호조판서 인사 때마다 이런 식으로 논쟁이 되었다.  중종 대에 국방과 백성들의 구황, 그리고 조운 정책에 1인 자로 꼽혔던 고형산 판서. '조선왕조실록'에는 그의 이야기가 거의 500여 차례 나온다. 판서라고 해서 이렇게 많이 등장하는 게 아니다. 인물의 역할과 위상 때문이다. 20여 년의 판서를 포함해 우찬성까지 40여 년을 관료로 지냈다.

고형산이 건강을 이유로 20여 차례에 걸쳐 사직을 청하자 중종은 1522년 2월 18일 그에게 궤장(几杖)을 하사하고 이런 교서(敎書)를 내렸다. "...경(卿)은 마음가짐이 근신하고 정성스러우며 일에 임함이 충실하고 근간하여 누대의 조정에 내리 벼슬하며 종시 태만하지 않았고, 과덕(寡德)한 나를 보필하게 되면서는 나가서나 들어와서나 더욱 노력하여, 국가만 생각하고 가사는 잊으므로 이미 당시의 명망을 지니게 되었고 겸손하게 몸을 가져 깊이 옛사람다운 기풍을 체득했었다...."

그가 죽었을 때 중종실록의 졸기에 사관의 평이 이렇게 나온다. 중종 23년 1528년 11월 20일 자 중종의 전교다. "고형산(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이다)이 죽었다 하니 매우 슬프다. 별례(別例)로 치부(致賻)한 전례를 상고하여 아뢰라." 사신은 논한다. 고형산은 본관이 횡성(橫城)이며 대대로 그 고을에 살았는데, 초야에 있던 사람으로서 성종조(成宗朝)에 과거에 급제하였다. ... 또 변방(邊方)의 일에 익숙하여 나라의 중신(重臣)이 되었으며, 성품이 근검(勤儉)하며 질박(質朴)하고 겉치레가 없으며 성심으로 봉공(奉公)하였다.“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 정암3리 속칭 망백 마을 한가운데 야산에 그의 묘소가 있다. 횡성 고 씨가 본관인 횡성사람 고형산은 1480년 문과에 급제한 후 강원도, 함경도 관찰사를 지내고 대사헌, 형조, 호조, 병조 판서 등을 거쳐 우찬성에 올랐다. 무엇보다 토목과 경제에 밝아 이 분야의 행정 능력이 뛰어났다. 특히 북방을 비롯해 국경에 성 쌓기 등으로 국방을 튼튼히 수립하는데 큰 업적을 남긴 이 분야의 전문가로 통한 인재였다. 강원도 관찰사로 재임 때 험하디험한 대관령 길을 사재(私財)까지 들여 넓힌 일화는 유명하다. 북방에서 근무할 때 그에게 감동한 오랑캐들이 다투어 자기 자식 이름을 고형산으로 지었다고 한다.

공직자로서 국가에 충성하고 백성을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과 철학을 실천해 낸 그는 진정 공직자의 사표이다. 전남 강진은 다산 정약용의 유배 생활 이야기를 최고의 관광 콘텐츠로 활용하고 있다. 횡성이 가진 이런 소중한 역사 문화 자산이야말로 새로운 횡성의 미래가 아닌가. 
윤수용 기자
ysy@kukinews.com
윤수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