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싱어 서전트(John Singer Sargent, 1856~1925)가 1877년 10주간 머물렀던 캉칼(Cancale)은 정말 흥미로운 장소이다.
당시 브르타뉴 해안은 빛과 풍경이 독특해서 많은 화가들이 몰려들었고, 특히 캉칼은 굴 양식과 채취로 유명했다. 서전트는 바닷가 주민들의 일상을 세밀하게 관찰하며 스케치를 남겼는데, 그가 관심을 가졌던 건 노동과 삶의 생생한 모습이었다.
당시 서전트가 본 바닷가에서 굴을 채취하는 사람들, 바구니를 들고 돌아오는 여인들, 그리고 만의 장엄한 풍경까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캉칼은 ‘굴의 수도’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고, 몽생-미셸 만을 바라보며 신선한 굴을 맛볼 수 있는 항구 도시다.
캉칼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한 <굴을 따러(채취를 위한 출발)>는 서전트의 첫 풍경화이자 파리 살롱에 제출한 두 번째 작품으로, 당시 인물화 중심이었던 그에겐 새로운 시도였다. 그러나 살롱이 폐막하기도 전에 이 그림은 팔렸고, 이는 서전트의 두 번째 판매였다.
흥미로운 점은 서전트가 같은 주제를 변주하여 뉴욕 전시를 위해 더 작은 크기의 작품을 다시 제작했다는 사실이다. 보스턴 미술관에 소장된 작품은 빛의 반짝임과 해안가의 생생한 공기를 포착한 것으로 평가받았고, 대서양 양쪽의 평론가들 모두 그의 빛과 색채를 통한 순간적인 표현 능력에 감탄했다.
특히 뉴욕에서 한 평론가는 “미국 화가가 그린 햇빛 표현 중 가장 뛰어난 연구 중 하나”라 극찬했다.
물웅덩이에 비친 반짝이는 하늘 덕분에 서전트의 작품은 살롱에서 외광(外光) 회화를 선보인 다른 화가들과 경쟁하게 되었고, 그는 비평가들로부터 처음 호평을 받았다.
굴을 채취하는 인물들은 밀레와 쥘 브레통이 보여준 농민의 삶을 재현하는 전통을 따르고 있었다. 또한 1874년 살롱에서 정부가 뤽상부르 미술관을 위해 구입한 오귀스트 폐엔-페랭(Auguste Feyen-Perrin, 1826~1888)의 <캉칼에서 굴 따는 사람들의 귀환>에서 직접적인 영감을 얻었다.
그의 외광 회화에 대한 관심은 동시대 예술가들, 특히 인상파 화가들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1876년 파리에서 열린 독립미술가전시회에 참석한 그는 창립 멤버였던 클로드 모네와 교류하며 평생의 친구가 되었다.
서전트는 인상주의의 빛 탐구와 자유로운 필치를 받아들이면서도 인물과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능력을 잃지 않았고, 독창적인 “사실적 인상주의”라는 영역을 개척했다.
캉칼에서 서전트는 굴캐기를 주제로 삼아 현지 주민들을 모델로 고용하고, 수많은 드로잉과 유화 습작을 준비했다. 그의 작업 방식은 대체로 데생으로 시작해 점차 유화 스케치로 발전했다.
최종 작품은 파리에 있는 서전트의 아틀리에에서 완성되었다. 그는 아이의 자세를 약간 수정하며 손의 위치를 바꾸고, 새 옷을 입히는 동시에 해변 풍경을 더해 빛과 그림자의 효과를 강조했다.
서전트의 여동생 에밀리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캉칼에서의 작업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오빠는 모델을 구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고, 간신히 사람을 찾으면 곧바로 구경꾼들이 몰려들어 그림을 제대로 그릴 수 없었다. 결국 한 할머니와 친해진 뒤 그 집 마당에서 작업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서전트는 노동보다는 습한 공기와 바람에 흩날리는 기운, 젖은 모래가 반짝이는 분위기를 포착하는 데 집중했다. 그의 해변 스케치는 거의 동일한 두 점의 작품으로 절정을 이루었으며, 동시에 두 전시에서 작품을 선보일 수 있었다.
1878년 뉴욕의 미국 예술가 협회에 한 점을, 같은 해 파리 살롱에는 더 큰 규모의 <굴을 따러(채취를 위한 출발)> (워싱턴 D.C. 국립미술관)를 내놓았다.
남부 이탈리아의 해변, 눈부신 햇살 아래 네 아이가 노니는 장면은 서전트가 1879년 여행에서 길어 올린 결실이었다. 그는 찬란한 지중해의 빛을 화폭에 담아내는 섬세한 기법과 치밀한 준비를 결합하여, 시대의 감각을 품은 작품을 완성했다.
이 작품은 같은 해 뉴욕 국립 디자인 아카데미에 전시되어 큰 호평을 받았고,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명성을 쌓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가운데 빛나는 금발로 서 있는 아이는 공기로 채운 동물의 방광으로 만든 부력 도구를 착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한 뉴욕의 평론가는 그를 “어리석은 어린 큐피트”라 비유했다. 19세기 중반 아연 튜브가 발명되기 전 물감을 방광에 넣거나 축구공으로 사용했는데, 부력을 위한 도구로 사용된 건 이 그림을 보며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림은 이전의 풍습이나 생활상을 찾아볼 수 있는 민속학의 보고서이다.
마을의 아이들은 여름날의 따스한 한가로움을 즐기고 있다. 투명한 구명 풍선을 매단 천진난만한 아이는 바다를 응시하고, 수영하는 인물의 머리카락은 수면 위로 살짝 드러난다. 얇게 칠해진 푸른빛과 초록빛은 잔잔한 물결을 그려내고, 굵고 힘 있는 붓질은 파도의 질감과 모래의 입자를 생생히 드러낸다.
스승 카를로스 뒤랑(Carolus Duran)은 1870년대 파리에서 가장 명성이 높았던 초상화가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멋쟁이 화가로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고, 옷깃에는 예술적 공헌을 인정받은 레지옹 도뇌르 훈장의 붉은 휘장이 달려 있다. 서전트는 뒤랑에게 직접 지도를 받았고, 그의 초상화로 큰 호평을 얻으며 화가로서의 경력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작품의 상단에는 스승에게 바치는 존경의 글을 남기며 자신을 “애정 어린 제자”라 표현했다.
피렌체의 햇살 아래 태어난 소년은, 저렴한 숙소와 온화한 기후를 찾아 계절 따라 이주하는 가족과 18세까지 이탈리아와 프랑스에 살았다. 대륙 곳곳을 여행하며 여러 언어와 풍경을 배우며 자랐다. 스무 살이 되던 해에는 처음으로 대서양을 건너 모국인 미국을 방문하였다.
한달 살기를 소박하게 꿈꾸는 우리가 보기에 서전트는 20살까지 유럽에서 그랜드 투어를 한 셈이었다. 아마추어 수채화가인 어머니가 이끄는 매일매일의 스케치는 그의 캔버스에 빛을 심었고, 결국 파리의 살롱에서 스승을 넘어서게 되었다.
최금희 작가는 미술에 대한 열정으로 전 세계 미술관과 박물관을 답사하며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직접 촬영한 사진을 가지고 미술 사조, 동료 화가, 사랑 등 숨겨진 이야기를 문학, 영화, 역사, 음악을 바탕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현재 서울시50플러스센터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