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까지 치솟자 은행권 달러예금이 이달 들어 20억달러 넘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과 투자자들이 달러를 매도해 환차익을 실현하고 환리스크를 관리하려는 움직임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 9일 기준 달러예금 잔액은 637억8004만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달 말(658억4336만달러)과 비교해 20억6332만달러 감소한 수준이다. 달러예금은 원화가 아닌 달러로 통장에 돈을 넣는 상품이다. 수시입출식 상품과 정기 예·적금처럼 일정 기간을 정해놓고 투자하는 상품 등도 있다.
달러예금 잔액이 줄어든 배경에는 최근 널뛰는 환율이 있다. 지난 9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9.1원 오른 1495.5원으로 주간 거래를 마쳤다. 이는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에 주간 종가 최고치다. 고유가로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가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서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는 1500원 선에 근접한 것이다.
이에 고환율을 틈탄 환차익 실현 수요가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일 5대 은행의 달러예금 잔액은 661억2493만달러로 급격히 불었다. 이는 환율 급등 영향으로 빠르게 증가했던 지난해 12월 말(656억8157만달러)보다 많은 수준이다. 그러나 환율이 최고 수준까지 치솟자 달러를 매도해 차익을 실현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예금 잔액은 빠르게 줄었다. 9일 기준 달러예금 잔액은 6일과 비교했을 때 1영업일 만에 약 24억달러 감소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전쟁 영향으로 환율 변동성이 확대된 가운데 고환율 시기에 차익을 실현하려는 수요와 환리스크를 헤지(위험 회피)하려는 기업들의 요인이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환율일 때 달러를 팔아 환차익을 실현하거나, 환위험을 관리하려는 기업이 예금을 이동시킨 것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이날 환율이 급락하면서 전날 환차익을 실현한 차주들은 상대적으로 이득을 본 것으로 분석된다.
기업들이 외화 포지션을 조정하려는 움직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은 회계상 원화 기준으로 확정하다 보니 외화를 보유하고 있으면 환차손익을 인식해야 한다. 이에 환율이 높을 때 원화로 환전해 외화 자산과 외화 부채를 맞추는 ‘스퀘어 포지션’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스퀘어 포지션은 외환의 매입액과 매도액이 균형을 이뤄 외화 자산과 외화 부채가 일치하는 상태를 말한다.
다만 전쟁 리스크가 여전한 만큼 환율 불확실성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민경원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유가 급등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가 다소 완화된 모습이나 전쟁 불확실성은 여전히 잔존한다”며 “헤드라인(전쟁 관련 소식 한 줄)에 따라 시장 분위기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