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급 불안정 의약품과 국가필수의약품에 대한 제한적 성분명 처방을 의무화하는 법안에 대한 심사가 시작됐다. 성분명 처방을 두고 의료계와 약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의약품 수급 불안정의 원인을 찾고 의약품 품절 기준을 명확히 하는 일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11일 제1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소관 법안 53개를 심사하기로 했다. 이날 소위에 상정된 법안 중 보건의료계의 관심을 끌었던 법안은 장종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의료법·약사법 개정안이었다.
두 법안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수급 불안정 의약품 공급관리위원회 심의를 거쳐 수급 불안정 의약품을 지정할 수 있도록 하고, 의사는 수급 불안정 의약품을 처방할 때 처방전에 상품명 대신 성분명을 기재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의사가 성분명 처방을 거부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처벌 규정도 포함됐다.
제한적 성분명 처방 도입을 두고 의약계의 반응은 엇갈렸다. 약업계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만성적인 의약품 공급 부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성분명 처방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며 법안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반면 의료계는 성분명 처방이 의사의 면허 범위를 침해하고 환자 특성에 맞춘 처방이 어려워질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의약계의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법안소위에 성분명 처방 법안이 상정돼 심사가 진행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대한의사협회는 국회 앞에서 성분명 처방 저지 궐기대회를 여는 등 반대 움직임에 나섰다.
하지만 복지위 법안소위는 여러 안건 가운데 환자기본법 관련 논의에 집중하면서 의약계의 관심이 집중됐던 성분명 처방 법안 심사를 진행하지 못했다. 법안 심사가 미완으로 끝나면서 보건의료계에서는 성분명 처방 관련 논의가 결론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전망이 나온다.
보건의료계 관계자는 “성분명 처방을 두고 여러 의견이 있었지만 의협이 국회 앞에서 궐기대회를 열 정도로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법안이 법안소위를 쉽게 넘어가기는 어려워 보인다”며 “논의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보건의료계 전문가들은 성분명 처방 의무화 법안 논쟁보다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기 위한 요소들을 먼저 정리하는 작업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성분명 처방이 의무화되더라도 의약품 수급 불균형 기준 등을 정비하지 못하면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특히 지난해 11월 통과된 약사법 개정안을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 개정안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국가필수의약품 안정공급 협의회를 설치해 국가필수의약품과 수급 불안정 의약품의 제조·수입·유통·공급 안정화 정책을 전문가들과 협의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식약처가 올해 11월 법 시행을 앞두고 설치할 국가필수의약품 안정공급 협의회의 운영 방식과 주요 논의 과제를 먼저 정리하지 않으면 의약품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이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는 조언도 나온다.
서울지역 약사 A씨는 “그동안 정부가 필수의약품이나 수급 불안정 의약품의 안정적인 생산을 위해 여러 대책을 내놨지만 현장에서 큰 효과를 내지 못했다”며 “현장의 체감과 전산 데이터 사이의 차이도 있었고 명확한 기준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식약처의 의약품 안정공급 협의회가 현장의 혼선을 해결할 명확한 기준을 세우고 품절 의약품을 사전에 예측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해야 한다”며 “성분명 처방 의무화 법안 논의도 중요하지만 다른 정책도 정비해 제대로 작동하게 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