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표준치료로 떠오른 ‘신약 병용요법’…건보 급여 체계는 ‘제자리’

암 표준치료로 떠오른 ‘신약 병용요법’…건보 급여 체계는 ‘제자리’

파드셉+키트루다 병용요법 급여 논의 지연
‘공정거래법’ 걸림돌…정부 가이드라인도 ‘부재’
“혁신 신약 병용요법 가치 평가 체계 구축 필요”

기사승인 2026-03-13 11:00:10
쿠키뉴스 자료사진

최근 항암 치료는 단일 약제를 사용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서로 다른 기전을 가진 혁신 신약을 병용하는 치료 전략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그러나 관련 제도와 급여체계가 이를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해 환자들의 치료 접근성이 제한되고 있다. 혁신 신약의 환자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주도적으로 새로운 가치 평가 체계와 약가 협의 구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한길 이화여대 약학대학 교수는 지난 12일 한국아스텔라스가 서울 강남구 오크우드 프리미어 코엑스 센터에서 개최한 ‘혁신 신약 병용요법 시대, 환자 접근성 개선을 위한 과제’ 주제의 미디어 세션에서 “항암 신약 간 병용요법 중에서 다른 회사가 각각의 신약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 급여가 등재된 사례는 현재 전무한 상황”이라며 신약 간 병용요법이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제도적인 공백이나 제한점이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가 지목한 신약 병용요법 사례는 요로상피세포암 분야에서 표준옵션으로 부상한 글로벌 제약사 아스텔라스의 ADC(항체약물접합체) ‘파드셉’(성분명 엔포투맙 베도틴)과 MSD의 블록버스터 면역항암제 ‘키트루다’(펨브롤리주맙) 병용요법이다. 작년 10월 파드셉+펨브롤리주맙 병용요법은 암질환심의위원회(암질심)에서 급여 기준이 설정됐으나, 이후 급여 논의는 진척이 없는 상태다. 타사 간 신약 병용요법이라는 특성상 관련 급여 평가에 대한 세부 기준의 부재로 정부도 제약사도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항암제 병용요법 확대 흐름에 따라 작년 6월부터 54개 항암제 병용요법 중 35개 요법에 대해 부분급여를 적용했지만, 관련 고시에 ‘기존 항암제+신약’ 병용요법만 포함돼 있을 뿐 ‘신약+신약’ 병용요법에 대해선 공백 상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국내 도입된 항암제 병용요법은 총 71건으로 이 중 ‘신약 간 병용요법’은 21건(30%)이었다. 특히 파드셉+키트루다 병용요법처럼 제약사가 다른 신약 간 병용요법 중 건강보험 급여가 등재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이 교수는 “현행 약가 제도는 비용효과성을 기반으로 약제의 가치를 평가하고 가치 기반 약가를 산정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이를 다중 적응증 약제나 병용요법에 적용하기엔 구조적으로 불합리한 측면이 있다”며 “또 신약 간 병용요법이 만들어내는 시너지 효과를 평가하거나, 그 효과에 대해 각각의 약제가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를 평가할 수 있는 도구 역시 현 제도에선 부족한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가장 큰 걸림돌은 ‘공정거래법’에 따른 기업 간 협의 제한과 기존 비용효과성 평가 체계의 한계다. 타사 간 신약 병용요법의 경우 약가 조정과 가치 배분을 위해 기업 간 협의가 필요하지만, 현행 공정거래법상 타 제약사와의 논의 자체가 ‘담합’으로 판단될 소지가 있어 협의가 어려운 상황이다. 키트루다처럼 다중 적응증 약제에 대해 적응증 수와 무관하게 단일 상한금액이 적용된다는 점도 논점이다.

타사 간 병용요법 약가 협의를 조율할 정부 차원의 중재 기구도 마련돼 있지 않다. 반면 영국의 경우 지난 2024년 10월 파드셉 병용요법 허가 이후 10개월 만에 급여가 이뤄졌는데, 공정거래규약 당국(CMA)과 급여 당국(NHS)의 제도 개선이 주요했다. 영국은 ‘세이프 하버(Safe Harbor)’라는 제도적 보호 장치를 마련해 서로 다른 제약사들이 병용요법 관련 가격과 상업적 합의를 논의할 수 있도록 했다. 기업들이 이 안전지대 안에서 협상을 진행하고, 그 결과를 NHS에 제출하는 방식이다. 벨기에의 경우엔 오는 2027년부터 ‘미러 프로시저(Mirror Procedure)’를 도입해 병용요법을 구성하는 모든 약제가 동시에 병렬적으로 평가받는 구조를 시행할 예정이다. 

이한길 이화여대 약학대학 교수가 12일 한국아스텔라스가 서울 강남구 오크우드 프리미어 코엑스 센터에서 개최한 ‘혁신 신약 병용요법 시대, 환자 접근성 개선을 위한 과제’ 주제의 미디어 세션에서 발표하고 있다. 신대현 기자

공정거래법에 막혀 급여 논의의 진전을 이루지 못하는 제약사들은 전전긍긍하고 있다. 한국아스텔라스 관계자는 “다른 제약사와 별도의 협약이나 관계가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가격이나 재정과 관련된 논의를 진행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정부 기관과 논의하는 과정에서도 타사와 어떤 방식으로 논의해야 한다거나 하는 별도의 가이드를 받은 적은 없다”고 토로했다.

이 교수는 “병용요법 급여 신청이 진행된 상황에서 타사 간 협의가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법적으로 문제가 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함일 것”이라며 정부의 역할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정부는 적극적 중재자로서 혁신 신약 중심의 병용요법 가치를 올바르게 평가하는 검토 체계를 구축하고, 환자 접근성을 향상시킬 실질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며 “약제급여평가위원회(약평위) 산하에 가칭 ‘병용요법 소위원회’를 설치해 타사 간 신약 병용요법의 가치 평가와 협상 구조를 논의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어 “영국이나 벨기에처럼 제도적으로 ‘이 안에서는 협의가 가능하다’는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지 않는 한 기업들이 먼저 움직이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그렇다고 공정거래법 개정을 기다리기엔 환자 치료 접근성 문제를 해결하는 시점이 너무 늦어질 수 있어 정부가 적절히 개입해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부분을 푸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