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3조 美투자 카드 꺼낸 한국…K-반도체 투자지도 바뀌나

523조 美투자 카드 꺼낸 한국…K-반도체 투자지도 바뀌나

관세 압박 속 3500억 규모 대미투자특별법 국회 통과
단순 방어 넘어 AI·전력망 선점 기회라는 의견도
통상 전문가 "국내 산업 공동화는 경계해야"

기사승인 2026-03-18 06:00:11
3월12일 국회에서 열린 3월 임시국회 1차 본회의에서 대미투자특별법이 여야 합의로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이 미국에 3500억달러(한화 약 523조원)를 쏟아붓는 ‘초대형 투자 카드’로 미국발 관세 불확실성에 정면 대응한다. 미국이 자국 산업 보호 명분으로 ‘무역법 301조’ 조사를 개시하며 추가 관세 가능성을 예고한 가운데, 정부의 대미투자특별법 통과로 국내 반도체·전자 등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 투자 전략 지형이 크게 바뀔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17일 산업통상부와 정치권에 따르면 한국과 미국의 무역 대표단은 이번 주 워싱턴DC에서 만나 3500억달러 규모 대미 투자 이행 방안을 논의한다. 

앞서 지난 12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를 뒷받침할 ‘대미투자특별법’이 찬성 226표, 반대 8표로 통과됐다. 

대미투자특별법은 정부가 2조원을 출자해 ‘한미전략투자공사’를 설립하고, 반도체·인공지능(AI)·에너지 인프라·조선 등 전략 산업에 대해 대한 양국 공동 투자 사업을 한미전략투자공사가 전담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전체 투자액 가운데 약 1500억달러는 조선 분야에 투입되고, 나머지 2000억달러는 경제·안보 협력 산업에 활용될 예정이다. 사장은 금융·투자·전략산업 분야 10년 이상 경력자만 자격이 주어지며, 특별법은 공포 후 3개월 뒤 시행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구 트위터)에 “국가적 과제 앞에 여야가 따로 없다는 것을 보여준 뜻깊은 사례”라며 “(한미) 양국은 조선, 에너지를 비롯한 전략적 산업 분야에서 더욱 긴밀하고 강력한 협력 체계를 구축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관세 리스크에 맞서는 ‘투자 레버리지’

이번 투자 논의가 급물살을 탄 배경에는 미국의 통상 압박이 자리한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11일 주요 교역 상대국의 ‘과잉생산’을 이유로 무역법 301조 조사를 공식 개시했다. USTR은 한국이 전자기기·기계·철강·선박 등에서 꾸준히 대미 흑자를 내고 있다고 명시했다.

실제 지난해 한국의 품목별 대미 흑자 규모는 자동차 277억달러, 반도체 111억2000만달러, 일반 기계 91억1000만달러 등으로 집계됐다.

정부 역시 대규모 투자를 협상의 핵심 레버리지로 활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여한구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최근 브리핑에서 “현재 미국이 무역법 122조에 따라 모든 국가에 10% 관세를 부과하고 있지만 이는 150일간의 한시 조치”라며 “7월 중순 이후에는 301조를 통해 위헌 판결 이전에 적용됐던 15% 수준의 관세를 되살리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설명했다.

단순 방어 넘어선 미국 시장 굳히기…‘생태계 확장’ 기대

일각에서는 대미 투자가 단순한 관세 대응을 넘어 인공지능(AI) 시대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전략적 포석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미 투자 1호 사업 후보로는 원자력발전소, 액화천연가스(LNG) 수출 터미널, 셰일가스 생산 시설, 전력망 확충 등 에너지 인프라 사업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전력 인프라는 전력 소비가 큰 AI 데이터센터와 첨단 반도체 생산 시설 운영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만약 미국 현지에 이러한 인프라가 든든하게 구축되면, 국내 반도체와 가전 기업들의 미국 내 생산 거점 확대와 운영 비용 절감으로 직결될 수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대미 투자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미국에서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차세대 메모리 생산 확대를 시사했으며, 주요 빅테크와의 AI 인프라 협력도 활발히 논의 중이다. 

밸류체인 종속 우려도…“정교한 협상 절실”

다만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500조원이 넘는 뭉칫돈이 미국으로 향하면서, 자칫 국내 산업 기반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미국 중심의 산업 구조를 더 굳히는 기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통상 전문가들은 정교한 협상력을 주문했다. 허정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301조 보복관세는 특정 품목뿐 아니라 다른 품목까지 엮어 관세를 매길 수 있어 매우 위험한 카드”라며 “지금 같은 상황에선 단순히 투자를 내어주는 것을 넘어, 투자와 관세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우리 산업의 이익을 지키는 종합적인 협상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혜민 기자
hyem@kukinews.com
이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