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통계 없는 ‘법 밖’ B2B 마트 2000개…유통 질서 왜곡 [식자재마트 급성장의 그림자①]

규제·통계 없는 ‘법 밖’ B2B 마트 2000개…유통 질서 왜곡 [식자재마트 급성장의 그림자①]

식자재마트가 법적 업태 규정 없이 전국 2000개 규모로 급팽창하고 있다. 규제와 통계의 사각지대에서 몸집을 키운 이들은 이제 일반 소비자까지 흡수하며 골목상권과 기존 유통 질서를 흔들고 있다. 쿠키뉴스는 기획 시리즈 ‘식자재마트 급성장의 그림자’를 통해 제도 밖에서 커진 시장의 실태와 파장, 유통 생태계의 균열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기사승인 2026-03-20 06:00:09
서울 시내 한 식자재마트에 일반 소비자들이 쇼핑카트에 상품을 담아둔 모습. 이예솔 기자

유통산업발전법상 업태로 규정되지 않은 ‘식자재마트’가 규제와 통계의 틈을 비켜나며 빠르게 몸집을 키우고 있다. 특히 출점과 영업 제한에서 자유로운 구조를 바탕으로 지방 상권을 중심으로 세를 확장하면서, 지역 유통 생태계를 흔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B2B 도매형 점포인 식자재마트가 일반 소비자 시장에서도 빠르게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물가 상승 속 합리적인 가격 대안으로 부상했지만, 유통산업발전법의 규제 사각지대에서 현황 파악 없이 성장하며 유통 생태계를 왜곡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식자재마트는 매장 면적 3000㎡ 미만일 경우 대형마트, 기업형 슈퍼마켓(SSM)과 달리 의무휴업과 영업시간 제한, 출점 규제를 받지 않는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식자재마트가 달걀 등 장바구니 품목을 도매가 수준으로 낮춰 ‘미끼 상품’으로 활용한 뒤 공산품까지 함께 판매하는 구조가 확산되고 있다”며 “오프라인 유통 전반이 약화되는 상황에서 자본력을 앞세운 단가 인하 경쟁과 프로모션 비용 전가 사례도 늘고 있다. 결국 동네 소형 유통업체와 전통시장까지 포함한 지역 유통 생태계 전반이 위축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 한 식자재마트에서 소비자들이 상품을 둘러보고 있다. 이예솔 기자

법에 없는 식자재마트?…“업태 신설 논의 본격화”

식자재마트가 유통산업발전법 규제 적용에서 제외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현행 법 체계에서 별도 업태로 분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통산업발전법에는 대규모점포, 준대규모점포, 일반 소매점 등으로만 업태가 구분돼 있으며, 식자재마트는 이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식자재마트’라는 명칭 자체도 법률상 정의된 개념이 아닌 업계에서 통용되는 용어에 불과하다.

업태로 분류되지 않다 보니 공식 통계에서도 제외됐다. 산업통상자원부 유통물류과는 백화점, 대형마트, 편의점, SSM 등 주요 오프라인 유통업체 15개사의 월별 매출과 점포 수, 객단가 등을 집계한 ‘주요 유통업체 매출 동향’을 발표하고 있지만, 식자재마트는 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다만 산업통상부가 실시한 2020년 실태조사에서는 전국 식자재마트가 1803개 수준으로 파악된 바 있다. 이후 빠르게 증가해 현재는 2000개를 넘어섰을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이는 1월 기준 집계된 전국 SSM 점포 수(1198개)를 웃도는 규모이며 같은 시점 전국 대형마트 점포 수는 416개 수준이다.

정확한 통계가 없는 상황에서 정부도 별도의 연구에 나선 상태다. 산업통상부 유통물류과는 현재 ‘식자재마트 현황 및 영향분석 연구’ 용역을 진행 중으로, 식자재마트의 개·폐점 현황과 입지, 상권 영향 등을 실증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연구 결과는 이달 중 발표될 예정이다.

산업통상부 유통물류과 관계자는 “식자재마트에 대한 법적 정의가 없는 데다 도소매 겸업 여부 등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연구마다 추산 수치가 다르게 나타난다”며 “공신력 있는 통계를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일부 의원실에서 업태 분류에 식자재마트를 포함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며, 법안이 통과될 경우 제도권 내에서 관리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국회에서도 관련 입법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오세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은 식자재마트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업태 분류를 신설하는 방향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준비 중이다. 매장 면적과 매출액을 기준으로 식자재마트를 준대규모점포 등으로 개념화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오 의원실 관계자는 “산업부와 산업연구원이 진행 중인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이해관계자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라며 “관련 내용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업태 분류를 신설하는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대형마트 규제 개정안이 현재 주요 이슈인 만큼 입법 시점을 조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 시내 한 식자재마트에서 과일을 할인가에 판매하고 있다. 이예솔 기자

지방 상권 파고든 식자재마트…“유통법 사각지대, 상생 훼손”

규제 사각지대에서 성장한 식자재마트는 특히 지방 상권을 중심으로 세를 확장하며 유통 생태계 변화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식자재왕’을 운영하는 푸디스트의 지난해 매출은 1조766억원으로 전년 대비 7.1% 증가했다. 장보고식자재마트는 매출이 2014년 1818억원에서 지난해 4503억원으로 약 2.5배 성장했으며, 세계로마트도 같은 기간 743억원에서 1250억원으로 약 1.7배 증가했다.

이들 ‘식자재마트 톱3’ 업체는 주로 지방을 거점으로 확장하고 있다. 장보고식자재마트는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전국 총 20개 점포를 운영 중이며, 대구 13개, 경북(경산·구미) 4개, 부산·울산·포항에 각각 1개씩 매장을 두고 있다. 세계로식자재마트 역시 세계로마트·세계로유통 등 복수 법인 구조로 서울과 더불어 인천, 울산 등을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으며, 정확한 점포 수는 공식적으로 집계되지 않고 있다.

업계에서는 식자재마트가 대형마트나 SSM의 출점경쟁이 덜 치열한 지방을 중심으로 시장을 선점해 왔다고 분석한다. 넓은 매장과 물류 공간이 필요한 특성상 임대료가 저렴하고 대형 부지 확보가 용이한 비수도권이 유리한 입지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식자재마트의 성장이 지역 유통 생태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일부 식자재마트는 지역 상권에서 사실상 ‘지역구 강자’로 자리 잡으며 기존 상권 동네 슈퍼의 입지를 위축시키고 있다”며 “대형마트와 SSM은 규제를 받는 반면 식자재마트는 이를 피해가면서 유통법 규제가 오히려 상생 유통 구조를 훼손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유럽이나 미국 등은 B2B 영업에 대해 판매 방식과 대상에 일정한 제한을 두고 B2C 시장과 구분하고 있다”며 “국내도 판매 방식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다빈 기자
dabin132@kukinews.com
이다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