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학로 예술가의 집은 3년 전 환골탈태했다. 마로니에 공원을 가로질러 소극장으로 향하는 길목 정도로 인식됐던 이 공간은 정병국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아르코) 위원장 취임 이후 창작 활동이 가능한 라운지이자 공연이 가능한 장소로 탈바꿈했다. 라운지에 시선을 뺏긴 사이 정병국 위원장이 커피 한 잔을 직접 내리며 기자를 맞았다. ‘아르코 익스프레소’. 정 위원장이 취임 직후 만든 소통 창구를 직접 체험해본 셈이다.
아르코 익스프레소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이 예술인을 만나 커피(Espresso) 한 잔을 함께 나누고 예술 현장의 어려움을 직접 청취하며, 이를 신속하게(Express) 해결하고자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예술인들의 큰 호응을 받았고, 정 위원장의 진정성과 행정 능력을 입증한 장이기도 했다.
매주 월요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누구든 위원장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한 이 자리는 지난 3년 동안 정 위원장이 아르코를 어떻게 바꿔왔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이다. 초기에는 신청자가 밀리면서 예약이 폭주했지만 지금은 여유가 생겼다. 위원장과 독대를 하고 직접 현장의 어려움을 전달할 수 있는 창구가 언제나 열려 있음에도 이 공간이 한산해진 점은 시사 하는 바가 크다. 지난 3년 동안 정 위원장이 밤낮 없이 업무에 매진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5선 국회의원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까지 지낸 그가 ‘장관 산하 기관장’ 자리를 수락하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여러 차례 고사했지만 현장 예술인들까지 직접 찾아와 삼고초려했고, 두 달 동안의 망설임 끝에 직을 맡았다. 정 위원장은 20일 쿠키뉴스와 만나 “정치 20년, 장관 1년보다 더 많이 배우고 느꼈다”고 지난 3년을 복기했다.
정 위원장 취임 당시 아르코가 운영하는 지원 사업은 30개에 육박하는 수준이었고, 전국에 180개가 넘는 지역 문화재단이 생겨나면서 각종 사업들이 중복된 상태였다. 이로 인해 오히려 현장 예술인들의 혼란만 가중되고 있었다. 정 위원장은 “어느 사업에 신청해야 할지 몰라 여기저기 중복 신청하는 일이 종종 발생하면서 행정력의 낭비가 심했고, 현장 불만이 쌓일 대로 쌓여 있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그는 취임 첫 해부터 사업 전체를 뜯어고쳤다. 전국을 돌며 무려 14차례 현장 업무보고를 진행한 일은 지금도 회자된다. 분야별 전문가 토론은 물론 4차례 공청회를 거쳐 현장 목소리를 취합했다. 반영하지 못한 의견에는 이유를 꼭 설명했다. 이와 같은 과정이 반복되자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사람도 불만을 갖지 않았다.
“처음부터 하나씩 단계적으로 바꾸려고 했다면 아마도 중간에 하다 말았겠죠(웃음). 직원들도 처음엔 ‘잘못 건드리면 긁어 부스럼’이라며 말렸습니다. 하지만 치열한 숙의 과정을 거쳐서 1년 안에 다 바꿔버렸어요. 그럼에도 이의 제기가 거의 없었던 건, 저의 뜻대로 한 게 아니라 현장이 원하는 걸 담았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입니다.”
2004년 아르코 출범 당시 개혁 모델로 삼은 곳은 바로 영국 문화원 ‘브리티시 카운슬’이었다. 정 위원장이 임기를 마치는 지금, 아르코의 위상은 정반대가 됐다. 지난해 개관한 ‘아르코 예술창작실’ 또한 세계무대에서 K-아트 영향력을 확장하고 국내와 해외 예술가들이 창조적으로 교류하는 플랫폼으로 거듭났다. 이제 아르코는 유럽의 문화 강국에서 벤치마킹을 하러 오는 곳이 됐다. 스웨덴에서는 문화부 차관이 20명 규모의 팀을 이끌고 아르코의 혁신을 배우러 왔고, 핀란드·오스트리아 등 예술 강국들의 방문도 줄을 이었다.
여전히 남은 과제들도 있다. 정 위원장은 “문예진흥기금 재원의 안정적 확충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대통령 업무보고에서도 직접 말씀드렸는데, 중요한 문제인 만큼 신경을 써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민간·기업 후원 활성화도 중요하다”고 역설한 정 위원장은 “지금은 정부 예산 의존도가 높은데, 약 20%만 기업 후원으로 구조를 바꿔도 생태계가 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끝으로 정 위원장은 “글로벌 문화 리더 국가로서 위상을 공고히 해야 한다”면서 “K-컬처가 세계를 누비는 지금, 아르코가 국제기구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할지 청사진을 그려야 한다”며 인터뷰를 갈무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