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간 멈춰 섰던 군산조선소가 다시 엔진을 가동할 채비를 마쳤다. 최근 HJ중공업의 최대주주인 사모펀드(PEF) 에코프라임마린퍼시픽이 HD현대중공업과 군산조선소 인수를 위한 합의각서(MOA)를 체결하면서, 군산 야드가 조선업 재편의 핵심 거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이번 거래는 야드 확장을 넘어, 에코프라임마린퍼시픽이 ‘조선 전문 그룹’으로 도약하기 위한 행보라는 평가가 나온다. 회사는 다음 달부터 실사에 본격 착수할 예정이며, 인수 후 HJ중공업의 부산 영도조선소와는 별개의 독립 법인을 세워 군산조선소를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중소형선·특수선 중심에서 대형선 시장까지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군산 야드의 비전은 ‘신조선 건조’에 방점이 찍혀 있다. 과거 현대중공업 시절 탱크선과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건조로 명성을 쌓았던 인프라를 활용해, 대형선 생산 기지로서의 위상 회복을 노리는 것이다.
매도 주체인 HD현대중공업과의 ‘상생형 연착륙 모델’도 주목된다. HD현대는 향후 3년간 자사 블록 제작 물량을 군산조선소에 발주하고, 설계 용역 및 스마트 조선소 기술 지원을 병행하기로 했다. 이는 운영 주체 변경에 따른 리스크를 낮추고, 국내 조선업 전반의 공급망 안정성을 높이려는 조치이다.
이번 인수로 기존 HJ중공업 사업장과의 시너지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HJ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는 친환경 컨테이너선·특수선·미 해군 MRO(유지·보수·정비) 사업에 집중하고, 군산조선소는 대형 도크와 골리앗 크레인을 활용해 대형선 신조 및 에너지 사업을 담당하는 ‘투트랙 전략’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범현대가의 일원이던 군산 야드가 이제는 ‘에코프라임’이라는 새 돛을 달고 독자 생존에 나선 셈이다.
HD현대 관계자는 “자산 양수도를 통해 군산시 및 에코프라임마린퍼시픽과 상호 윈윈이 될 수 있도록 협력관계를 이어나갈 계획”이라며 “그 일환으로 군산조선소에서 현재와 동일한 물량의 블록을 지속 공급받기로 한 것이며, 향후 다양한 협력을 이어가 K-조선의 발전에 기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업계는 나아가 군산 야드가 향후 서해안 일대 해상풍력 단지 조성을 위한 거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대형 구조물 생산에 필수적인 넓은 부지와 1650톤급 골리앗 크레인을 갖추고 있는 점이 유리하다는 평가다. HJ중공업은 조선과 건설 부문의 기술력을 결합해 해상풍력 하부구조물 제작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차세대 먹거리로 육성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해상풍력 하부구조물 제작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 또한 군산 조선소에서 유력한 활용 방안으로 검토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조선소의 장기간 공백에 대한 업계의 우려도 상존한다. 발주 측인 해운업계에서는 국내 건조 슬롯(slot)이 늘어나는 점을 긍정적으로 보면서도, 군산조선소의 생산성과 기술력이 현재의 까다로운 기준을 충족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신중한 분위기가 읽힌다.
주요 과제 중 하나는 친환경 선박 대응력이다. 군산조선소가 문을 닫은 사이 글로벌 조선 시장은 탈탄소 규제 강화로 판도가 바뀌었다. 따라서 메탄올·암모니아 추진선 등 고도의 친환경 설비 적용 경험이 전무한 군산조선소가 기존 업체들과의 기술 격차를 얼마나 빨리 좁히느냐가 관건이다.
오랜 기간 가동이 중단된 도크와 크레인이 최신 선박 스펙을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도 남는다. 업계에서는 과거의 영광에 기대기보다, 강화된 친환경 규제에 맞춘 설비 보강과 공정 혁신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조선소가 다시 문을 열어 슬롯이 확보되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지난 5~6년간 급변한 친환경 규제와 설비 스펙을 제대로 대응해 본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은 선주 입장에서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라며 “최신 스펙을 구현해낼 수 있는 실질적인 건조 능력을 입증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