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 사외이사 추천인, ‘외부기관’이라 쓰고 ‘깜깜이’로 읽는다

금융지주 사외이사 추천인, ‘외부기관’이라 쓰고 ‘깜깜이’로 읽는다

사외이사 추천 경로 ‘외부 전문기관’ 뭉뚱그려 공시
영국 등 해외선 서치펌 명칭 공개
전문가 “참호 구축 방지 위해 실효성 있는 가이드라인 필요”

기사승인 2026-03-26 06:00:11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금융지주사들이 이사회 독립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사외이사 후보 추천 경로 공시가 실상은 ‘깜깜이’ 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시상 추천 주체를 ‘외부 전문기관’ 등으로 뭉뚱그려 표기한 데 따른 결과다.

25일 5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사외이사 후보 추천 현황을 분석한 결과, 신규 및 재선임 후보 상당수가 공시상 ‘외부 전문기관(서치펌)’ 추천으로만 표기된 것으로 확인됐다. 어느 기관이 어떤 방식으로 후보를 발굴했는지에 대한 구체적 정보는 대부분 누락됐다.

KB금융은 사외이사 후보 5명 전원을 외부 전문기관 발굴 인사로 공시했다. 서정호 신임 사외이사 후보를 포함해 조화준·최재홍·이명활·김성용 등 기존 이사진도 모두 ‘외부 전문기관’ 추천으로 편입됐으나, 관여한 서치펌 명칭은 확인할 수 없었다.

신한금융 역시 후보 7명 중 5명이 외부 전문기관 추천이다. 박종복 전 SC제일은행장과 임승연 국민대 경영대학장 등 신임 후보 2명도 ‘외부 전문기관’이 발굴한 인사로만 적시돼 있다. 나머지 2명은 각각 주주추천공모제(배훈 후보)와 경영참여형 사모펀드(곽수근 후보)를 통해 추천된 사례지만, 이들 역시 어떤 주주·어떤 PEF가 어떤 경로로 제안했는지에 대한 구체 설명은 빠져 있다.

하나금융지주는 올해 주총에 올린 사외이사 후보 8명 중 4명을 외부 기관 추천인 것으로 공시했다. 신임 최현자 이화여대 교수와 재선임 대상인 박동문·원숙연·윤심 이사가 공시상 ‘외부 자문기관‘ 추천을 받았다. 이준서·주영섭·이재민·이재술 이사 등 나머지 4명은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사추위)나 지원부서 제안으로 후보군에 올랐다. 이 경우에도 외부 자문기관의 구체적인 이름이나 이해관계는 확인이 불가능하다.

우리금융은 신임 2명과 재선임 1명 등 후보 전원을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 추천으로만 일괄 공시했다. 공시 본문에서 “외부자문기관, 사외이사(임추위)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상시 후보군을 관리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생략했다. 이에 대해 우리금융 관계자는 “임추위는 외부 자문기관이나 과점 주주의 추천 건을 모두 포함하는 포괄적 개념”이라며 “결국 임추위에 보고되는 구조여서 폭넓게 표기된 것이며, 공시 방법에 대한 법적 강제성이 없어 각 사별로 차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농협금융의 경우, 외부 기관 추천 사례 없이 주로 내부 추천을 통해 후보군을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금융권은 구체적인 추천 경로 공개가 실무적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A금융지주 관계자는 “추천인이나 추천기관이 노출되면 후보자의 이직 의사나 활동이 외부에 알려져 유능한 후보들이 지원을 꺼릴 수 있다”며 “결국 사외이사 인원의 질적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B지주 관계자 역시 “특정 추천 기관이 알려짐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영향력 논란이나 외부 압력을 차단하는 것 역시 공정한 인사를 위해 필요한 부분”이라고 했다.

하지만 내부 견제 기능이 약한 상황에서 추천 주체와 외부기관의 정체가 모두 가려지면 현재 경영진과 장기 재임 사외이사의 ‘이너서클’이 더 공고해질 수 있다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특히 특정 서치펌이 인선에 반복적으로 관여하고 있는지, 경영진과 연결 고리는 없는지 현재 공시만으로는 충분히 검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이사가 사외이사 선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그 이사회가 다시 대표이사의 연임을 결정하는 ‘순환 구조’ 속에서 외부기관은 겉으로만 독립성을 포장하는 장치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다.

국내 금융지주들이 실무적 부작용과 법적 강제성 부재를 이유로 정보 공개에 소극적인 것과 달리, 해외 주요국은 대조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영국 바클레이스 등 금융사는 사외이사 선임 과정에서 지명위원회가 외부 서치펌의 자문을 받았을 경우, 연차보고서에 해당 서치펌의 이름과 회사와의 이해관계 존재 여부를 함께 밝히는 관행이 자리 잡아 있다. ‘UK 기업지배구조 코드’ 역시 외부 전문기관 활용 시 해당 업체를 밝히고, 회사와의 다른 연결고리가 있는지까지 상세히 설명하도록 권고한다.

전문가도 형식적인 경로 표기를 넘어 단계적 실명 공개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최소한 신임 사외이사의 경우에는 어느 서치펌·어느 주주·어느 기관이 어떤 후보를 언제 어떤 채널(공개모집·개별 제안 등)을 통해 제안했는지까지 명시하는 실효성 있는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서지용 상명대 교수는 “지금의 공시는 ‘외부기관 추천’이라는 말 뒤에 CEO나 기존 이사의 개입 여부, 구체적 후보 발굴 경로가 모두 숨겨져 있다는 게 문제”라며 “선진국처럼 추천 주체를 구체화해야 투자자가 사외이사 선임의 적절성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고 짚었다. 이어 “정보를 숨겨서 얻는 실익보다 공개함으로써 생기는 책임성과 긴장감의 효과가 훨씬 크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은 다음달 발표될 ‘지배구조 개선 방안’에서 이 같은 투명성 확보 요구와 실무적 보호 사이의 접점을 찾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사외이사 추천 경로 공시 때 구체적인 서치펌 명칭까지 적시하도록 한 규정은 현재로선 없다”며 “실명을 구체화할 경우 장점도 있지만 추천 문화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어, 어디까지 구체화할지는 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
최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