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상장, 주주 충실의무 관점에서 고민해야 [권태준의 ‘경제법 이야기’]

중복상장, 주주 충실의무 관점에서 고민해야 [권태준의 ‘경제법 이야기’]

기사승인 2026-03-25 08:30:05

중복상장 논란이 한창이다. 중복상장이란, 상장회사의 자회사가 주식시장에 다시 상장하는 경우를 일컫는 말이다. 몇 해 전 유명 상장회사가 유망한 것으로 여겨지던 사업을 물적분할하여 자회사를 설립하고, 그 자회사를 다시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하여 큰 논란이 됐다. 최근 자회사 시총이 모회사 시총의 4배를 넘는 것을 보면 모회사 투자자들의 한숨도 이해할 만하다. 

무엇이 문제일까. 주식회사가 물적분할하는 것을 금지할 수 있는가. 주식회사 제도란 본래 위험의 분산을 목적으로 하는 만큼 물적분할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주식회사가 상장하는 것을 금지할 수 있는가. 주식회사의 대표적인 자본조달 방법이 상장과 이를 통한 유상증자다. 이것 자체도 비난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유망한 사업 분야를 분사하여 주식시장에 재차 상장하는 것은 단순한 분할이나 상장과는 분명 다르다. 모회사 지배주주의 입장에서 중복상장은 유력사업에 대한 자기 지배력을 사실상 그대로 유지하면서 필요한 자본을 적은 비용으로 조달할 수 있다. 반면 모회사 일반주주의 입장에서는 자회사가 외부로부터 더 많은 자본을 조달할수록 그에 비례하여 유력사업에 대한 지배력을 잃게 된다. 이 점에서 중복상장에 관한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의 이해관계가 다르다. 

중복상장은 왜 우리나라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일까. 외국 사례를 보면 그 실마리가 보인다. 외국이라고 해서 중복상장이 없는 것은 아니다. 2021년 독일 자동차회사 다임러는 트럭사업 부문을 분사하여 다임러트럭을 설립하고, 다임러트럭을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에 상장시켰다. 이 때 다임러는 다임러트럭 지분 중 자기 몫 35%를 제외한 나머지 65%를 모회사인 다임러의 주주들에게 제공했다. 그리고 같은 해 미국 제약회사 머크는 여성 헬스케어 부문을 분사하여 오가논을 설립하고, 오가논을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시켰다. 머크의 경우 물적분할이 아닌 인적분할(spin-off) 방식으로 분사하여, 모회사 머크 주주들에게 머크 보통주 1주당 오가논 0.1주를 제공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지금까지 우리나라 중복상장 과정에서 기존 투자자들의 이해관계에 대해 고려가 충분치 못했다는 점과는 대조적이다. 

기존과는 달리, 이제 우리나라에도 변수가 생겼다. 지난 해 7월 1차 상법 개정에 따라 명시된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가 그것이다. 앞으로는 모회사의 이사가 유망 사업 분야의 중복상장을 고려할 때 일반주주에게 발생할 수 있는 피해에 대해 무슨 고려를 했는지가 중요하다. 만약 이 점에 대한 고려가 충분치 않으면 이사가 개별 주주에 대해 자기 재산으로 손해배상을 해 주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중복상장을 둘러싼 갈등은 우리 자본시장이 성숙해지는 과정에서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되어 온 ‘거버넌스의 불투명성’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시장의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는 그 변화의 서막이 될 것이다.

권태준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