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한 번 들을까 말까 한 ‘전쟁 추경’이라는 말이 현실화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25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추진 중이다. 중동 전쟁 여파로 유가가 급등하면서 흔들리는 한국 경제를 재정으로 떠받치겠다는 취지다. 이제 막 살아나기 시작한 경제 회복의 불씨를 살리려는 시도다. 다만 고환율 상황에서 추경은 ‘양날의 검’으로 작용할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최근 환율은 널뛰기 장세를 보이고 있다. 23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장중 1510.3원을 기록하며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올해 들어 평균 환율 역시 1461원으로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환율 상승은 수입 물가를 끌어올린다. 원자재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수입 물가 상승은 전반적인 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는 개인의 소비 여력을 줄이고 기업 수익성을 훼손하는 부담 요인이다.
추경은 이러한 상황에서 환율 안정과 상승 양측으로 동시에 영향을 미친다. 먼저 돈이 시장에 풀리면 경기 급락을 막고 회복 흐름을 이어가는 데 도움이 된다. 시장 불안을 완화해 위험 프리미엄을 낮추고 자본 유출 압력을 줄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수출기업 지원과 물류·에너지 비용 완화는 외화 유입 기반을 유지하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취약계층 지원을 통한 사회 안전망 강화 역시 경제 전반의 불확실성을 낮추는 기능을 한다.
반면 확장 재정이라는 신호는 환율 상승 압력으로도 작용한다. 정부는 국채 발행 없이 초과세수를 활용하겠다고 설명하지만, 시장은 재정 조달 방식이 아닌 정책 설정으로 해석한다. 초과세수는 본래 부채를 줄이는 데 쓰일 수 있는 재원이다. 이를 지출로 전환하는 순간 형식은 달라도 실질은 확장 재정이다. 이러한 신호는 금리 경로에 대한 불확실성을 키우고, 외국인 자금 흐름을 변화시켜 원화 약세 압력을 자극할 수 있다.
수요 측면에서도 영향은 적지 않다. 추경을 통한 지원은 소비를 끌어올리지만 동시에 수입을 확대하는 요인이 된다. 수입 증가로 경상수지 부담이 커지면 외환 수급 구조가 악화되면서 원화에 하방 압력이 가해진다. 특히 에너지와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구조에서는 그 영향이 더욱 크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경기를 살리기 위해 푼돈이 환율을 자극하는 역설이 생기는 셈이다.
결국 이번 추경의 효과는 ‘얼마를 쓰느냐’보다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다. 공급망 안정, 에너지 비용 완화, 수출 경쟁력 유지 등은 환율 상승 압력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현금성 지원 중심의 단기 처방은 수입 확대와 재정 확장 신호를 통해 환율을 자극할 가능성이 크다. 같은 25조원이라도 결과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다행히 정부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23일 “전시 추경은 속도도 중요하지만 내용이 더 중요하다”며 고유가 부담 완화와 공급망 안정, 민생 안정을 중심으로 한 정교한 설계를 주문했다.
추경을 통한 지원이 불가피하다면 세밀한 설계가 필요하다. 수요를 자극하는 단기 처방에 머무르기보다 공급망 안정과 비용 완화, 수출 경쟁력 유지 등 환율 상승 압력을 흡수할 수 있는 구조로 설계해야 한다. 재정의 속도가 아니라 세심한 설계를 통해 환율 상승이라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 그것이 이번 전쟁 추경이 넘어야 할 과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