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제약바이오 시장에서는 매일같이 대형 M&A, 신약 허가, 임상 데이터가 쏟아진다. 그런데 이 이슈들이 국내 시장 및 관련 업체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짚어주는 보도는 많지 않다. [글로벌 트렌드로 읽는 K-제약바이오]는 글로벌 제약바이오 시장의 주요 흐름을 추적하고, 그 안에서 국내 시장 및 기업의 좌표를 찾아본다. 편집자 주
올해 2월,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는 “대규모 건강 데이터가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개발을 가속하고 있다”는 제목의 논문을 게재했다. 미국과 영국의 3만4000명을 대상으로 장내 미생물을 분석해 질병과의 인과관계를 규명하는 연구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내용이다.
같은 시기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리서치앤마켓(Research and Markets)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를 개발 중인 기업은 전 세계 140곳 이상, 파이프라인은 180개를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장내 미생물을 활용한 치료제가 건강기능식품의 영역을 넘어 정식 의약품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는 셈이다.
FDA 승인 2건, 유럽 3상 돌파… 마이크로바이옴이 ‘약’이 되는 시대
마이크로바이옴이 정식 의약품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2022년 11월 페링 파마슈티컬스의 재발성 장내 감염 치료제가 FDA 승인을 받았고, 이듬해 4월 세레스 테라퓨틱스의 경구 투여형 치료제가 뒤를 이었다.
두 제품 모두 장내 미생물 생태계를 복원해 재발을 막는 원리로, FDA는 이들을 ‘생물치료제’로 분류했다. 건기식이 아닌 의약품으로서 임상시험과 제조 품질관리를 거쳐 승인된 것이다. 시장조사기관 글로벌데이터(GlobalData)에 따르면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시장은 2026년 16억 달러(약 2조 3,800억 원)를 돌파할 것으로 시장은 보고 있다.
더 주목할 만한 성과는 유럽에서 나왔다. 프랑스의 마이크로바이옴 전문기업 MaaT파마가 개발한 장내 미생물 치료제가 3상 임상시험에서 위장관 이식편대숙주질환 환자의 1년 생존율 54%를 달성했다.
기존 치료법의 생존율이 약 18%에 머물러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약 3배에 달하는 개선이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2025년 6월 유럽의약품청에 시판 허가를 신청했으며, 2026년 중 허가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승인될 경우 유럽 최초의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이자, 혈액암 분야에서 세계 최초의 마이크로바이옴 신약이 탄생하게 되는 셈이다.
적응증 확대도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초기에는 장내 감염 치료에 집중됐으나, 현재는 암 면역치료 보조, 염증성 장질환, 과민성대장증후군, 아토피 피부염, 우울증 등 장-뇌 축 관련 질환으로까지 영역이 넓어지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영국의 마이크로바이오티카는 올해 2월 궤양성 대장염 임상에서 긍정적 결과를 발표했고, 프랑스의 앙테롬은 여포성 림프종에서 FDA 패스트트랙 지정을 획득한 바 있다.
국내에서는… HEM파마, 마이크로바이옴 ‘신약’ 임상에 진입
이러한 글로벌 흐름에서 국내 기업 중 주목되는 곳이 HEM파마로 꼽힌다. HEM파마는 10만 건 이상의 인체 마이크로바이옴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는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10년간 수행한 ‘인간 마이크로바이옴 프로젝트(HMP)’의 약 3배에 해당하는 규모로 전해진다. 이를 2028년까지 100만 건으로 확대할 계획인 것으로 파악된다.
데이터만 보유한 것이 아니다. HEM파마는 독자 특허 기술인 PMAS(개인 맞춤형 장내 미생물 분석 기술)와 하버드 의과대학 연구팀과 3년간 공동 개발한 AI 플랫폼 ‘미네르바’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네르바는 미국 국립보건원 논문 13만여 건을 학습해 3429종 미생물과 3만5883개 질병 사이의 약 6만6444개 관계성을 네트워크로 구축한 세계 최초의 마이크로바이옴 지식 그래프 플랫폼으로, 연구 성과가 생물정보학 분야 국제 학술지에 게재된 바 있다.
특히 업계가 주목하는 것은 HEM파마가 마이크로바이옴 분석과 건기식을 넘어 ‘신약’ 개발에 진입했다는 점이다. 우울증 치료제 HEMP-001은 미국 FDA 임상 2a상 승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LARS 증후군 치료제 HEMP-002는 호주에서 임상 2a상이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두 제품 모두 장-뇌 축 기반의 마이크로바이옴 신약으로, 앞서 살펴본 글로벌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의 적응증 확대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본업인 분석 서비스도 견조한 것으로 관측된다. 대표 서비스 ‘마이랩’은 출시 첫해(2022년) 21억원이던 매출이 2024년 64억원으로 3배 성장한 것으로 집계됐다. 올해 4월에는 일본 시장에 ‘마이랩 플러스’를 론칭하며 약 71.8억원 규모의 선주문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140개 기업이 180개 신약을 개발하고, FDA가 문을 열었고, 유럽에서는 3상 임상에서 생존율 3배 개선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건기식으로 출발한 마이크로바이옴이 AI와 빅데이터를 만나 정밀 의약품으로 진화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진단이다. 이 흐름 속에서 10만 건의 데이터와 AI 플랫폼, 그리고 신약 파이프라인을 동시에 갖춘 HEM파마가 어떤 좌표를 찍을 수 있을지 시장은 주목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