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차림이 가벼워지고 스타일링에 시선이 모이는 봄이다. 날이 풀리며 레이어링과 소재 변화가 두드러지는 계절 속에서 자라는 색과 질감을 전면에 내세운 스튜디오 컬렉션을 제안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칼 템플러와 협업한 이번 2026 봄·여름 컬렉션은 여성·남성·아동 라인 전반에 걸쳐 ‘부드러움과 구조의 병치’를 공통 키워드로 삼는다. 자라가 쌓아온 상업적 완성도 위에 보다 실험적인 스타일링을 얹은 것이 이번 시즌의 얼굴이다.
이번 시즌의 핵심은 ‘색’보다 ‘톤’이다. 선명한 컬러 대신 민트, 피치, 아이보리 등 셔벗 계열의 옅은 색감이 중심을 이루고, 이를 레이스·시어·트위드 같은 서로 다른 질감 위에 겹쳐 올리는 방식이 반복된다. 색을 드러내기보다 흐리고, 형태를 강조하기보다 겹침을 통해 완성하는 접근이다.
여성복에서는 ‘가벼운 소재 위에 구조를 얹는’ 실루엣이 두드러진다. 앤티크 레이스를 더한 슬립 드레스 위에 트위드 코트를 걸치거나, 시어 캐미솔과 스트라이프 셋업을 레이어링하는 방식이다. 전형적인 로맨틱 룩이 장식과 디테일에 집중했다면, 이번 컬렉션은 소재 간 대비와 레이어링을 통해 로맨틱을 재해석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아이템 구성 역시 익숙한 워드로브를 비틀어 재배치하는 흐름을 따른다. 립 드레스는 레이스 고데 디테일을 더해 비대칭 실루엣을 만들고, 트위드 코트는 빈티지한 밑단 처리로 플로럴 팬츠와 충돌시키며 긴장감을 만든다.
시스루 니트와 캐미솔, 스트라이프 셋업과 시어 소재의 조합 등은 ‘이질적인 요소를 겹쳐 자연스럽게 만드는’ 스타일링을 반복적으로 제안한다. 액세서리는 리본 뮬, 장미 장식 클러치, 크리스털 이어링 등으로 구성되지만, 전체 톤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제한적으로 활용된다.
남성복은 보다 느슨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여러 겹의 주름이 잡힌 와이드 팬츠, 거즈 셔츠, 크로셰 니트 등은 공통적으로 여유 있는 실루엣을 기반으로 하며, 드로우스트링이나 부드러운 벨트 디테일을 적용한 슈트는 포멀과 캐주얼의 경계를 흐린다.
완성된 룩이라기보다 즉흥적으로 조합한 듯한 스타일링은 최근 남성복에서 확산되는 탈구조적 테일러링 흐름과 맞닿아 있다. 다만 소재와 레이어링에 의존하는 만큼, 실제 착용 환경에서는 스타일링 난이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아동복 라인은 수공예적 감성과 실용성을 결합한 방향이다. 크로셰 니트, 패치워크, 자수 디테일 등 장식 요소를 활용하면서도, 리넨 팬츠와 루즈한 실루엣을 통해 활동성을 확보했다. 민트, 피치, 옅은 블루 등 바랜 듯한 컬러 팔레트를 유지하며 전체 컬렉션과의 연결성도 이어간다.
이번 컬렉션은 상품 구성 측면에서도 분명한 전략을 드러낸다. 슬립 드레스, 시어 탑, 와이드 팬츠, 라이트 아우터 등 각각의 아이템은 독립적으로 완결되기보다 서로를 전제로 설계된 구조를 보인다. 단일 제품의 완성도보다 레이어링과 조합을 중심으로 한 ‘스타일링 단위’의 제안이 핵심이다.
이는 최근 글로벌 SPA 브랜드가 ‘직접 입어보고 조합하는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는 흐름과 맞물린다. 다양한 가격대와 빠른 상품 회전, 폭넓은 스타일 스펙트럼을 기반으로 소비자가 매장에서 여러 룩을 피팅하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현하는 방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라의 이번 컬렉션 역시 완성된 룩을 제시하기보다는 조합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방향으로 설계됐다는 점에서 이러한 ‘스타일링 중심 소비’ 흐름과 맞닿아 있다.
이번 시즌 자라 스튜디오는 장식적 로맨틱에서 한발 물러나, 색을 흐리고 질감을 겹치는 방식으로 스타일을 재구성하는 방향을 제시한다. 다만 소재와 실루엣의 대비에 크게 의존하는 만큼 스타일링에 따라 완성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연출 의존형 컬렉션’이라는 한계도 동시에 드러난다. 이러한 시도가 실제 소비 환경에서 얼마나 다양한 스타일링으로 확장될 수 있을지는 향후 소비자 반응에서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