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종군’ 계약서에 줄퇴사”…서울청년센터 관리 구멍

“‘백의종군’ 계약서에 줄퇴사”…서울청년센터 관리 구멍

기사승인 2026-03-31 06:00:06
‘서울청년센터 마포’ 모습. 서울시 정보 플랫폼 ‘내 손안에 서울’ 홈페이지 캡처

“최저임근 수준의 처우를 감수하고 ‘백의종군’하라”는 내용의 근로계약서가 서울청년센터에서 작성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이같은 계약은 사전에 걸러지지 않았고, 문제 제기 이후에야 뒤늦게 대응이 이뤄지면서 관리·감독 공백 논란이 커지고 있다. 

지난 26일 청년유니온 등이 연 기자회견에서 서울청년센터 마포에서 4년간 근무한 전 청년 매니저 A씨는 수탁기관 변경 이후 부당한 근로계약 체결을 강요받았다고 밝혔다. A씨는 서명을 거부하자 직무 배제와 괴롭힘을 겪었고, 자치구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퇴사를 결정했다고 주장했다. 고용승계된 청년 매니저 4명은 모두 퇴사했거나 퇴사를 앞둔 상태다.

30일 쿠키뉴스가 확보한 근로계약서에는 “상급자의 업무상 지시에 대해 반대 의견을 제시할 수 있지만 한 번에 그칠 것” 등 사실상 이견 제시를 제한하는 조항과 “성과를 충분히 달성하지 못하거나 대내외적 상황 변화로 직급·직책이 회수될 경우 이를 수용하고, 팀원 수준의 처우(최저임금에 준하는 기본급)를 기준으로 백의종군의 자세로 일할 것” 등 불리한 근로조건을 일방적으로 수용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확인됐다.

이같은 조항은 통상적인 근로계약에서는 보기 어려운 내용이다. 전문가들은 해당 계약서를 이례적인 사례로 보고 있다. 김유경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근로계약서에 복종과 순종을 강요하는 내용이 노골적으로 담겨 있다”며 “근로계약의 취지에 맞지 않는 부당한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누구라도 서명하기 어려운 수준의 계약서”라고 덧붙였다.

서울시와 마포구는 해당 사안을 인지한 이후 관련 조치를 진행해 왔다는 입장이다. 시는 마포구에 근로계약 위법 사항 해소와 재발 방지 대책 마련 등을 요구했고, 마포구는 법률·노무 자문을 거쳐 고용노동부 표준근로계약서를 기준으로 계약을 수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A씨는 이 과정에서 구가 “법인에 문의해 직접 해결하라”는 등 소극적으로 대응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해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진정서를 제출한 상태다.


지난 26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서울청년센터 마포 직장 내 괴롭힘 및 임금체불 규탄 기자회견’ 모습. 서지영 기자

문제는 이같은 사안이 사전에 걸러지지 않는 구조에 있다. 서울시는 표준 근로계약서 사용을 권장하고 샘플 양식을 비치하도록 하고 있지만, 근로자 제보가 있기 전까지는 개별 계약 내용을 사전에 확인하거나 개입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설명이다. 마포구 역시 수탁기관과 위수탁 계약을 맺는 구조상 개별 근로계약 체결 과정에는 직접 관여하기 어렵고, 문제가 불거진 이후에야 인지하고 중재에 나설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점도 인정했다.

김설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청년센터는 국무총리실 산하 정책 체계 아래 중앙청년지원센터를 통해 노동환경과 운영 전반을 관리·감시하게 돼 있지만, 실제로는 이런 계약서조차 사전에 걸러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자체와 수탁기관이 서로 책임을 미루는 구조 속에서 문제를 사전에 통제하기보다 사후 대응에 의존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재 서울청년센터 마포 수탁기관은 여전히 미담장학회인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장학회는 지난달 서울청년센터 중구 수탁기관으로도 선정돼 다음달 개소를 앞두고 있으며, 지난해까지는 서울청년센터 강동을 맡기도 했다.

관련 규정은 존재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시 민간위탁 관리지침은 수탁기관에 근로조건 보호 확약서 제출을 요구하고, 미이행 시 계약 해제·해지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마포구 조례 역시 위법·부당한 위탁사무 처리나 계약 조건 위반 시 시정조치와 위탁 취소를 규정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수탁기관 선정과 운영은 자치구 권한으로, 시는 지방보조금법에 따른 관리 범위 내에서만 역할하고 있다”며 “개별 계약이나 운영에 직접 개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마포구 관계자는 “위탁 해지 등 강한 제재는 고용노동부 등 외부 기관의 위법 판단이 있어야 가능하다”며 “사전에 조치할 경우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어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근무 중인 인력의 근로계약서는 확인한 상태이며, 노무 컨설팅 등을 통해 관리 강화를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부 자치구는 사전 관리 강화에 나선 모습이다. 중구 관계자는 “수탁기관이 근로계약을 체결하기 전 계약 내용을 사전에 공유받아 검토하는 방안을 협약에 반영했다”며 “기존에는 사후 점검 중심이었지만 이번 사례를 계기로 사전 관리 필요성을 인식했다”고 밝혔다.

서지영 기자
surge@kukinews.com
서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