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농지 전수조사를 앞두고 일부 지역에서 인지장애를 가진 고령 농업인의 경작 가능 여부를 의료기관에 확인하도록 요구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정부 가이드라인이 없는 상황에서 일부 지자체가 고령 농업인의 활동 능력 판단을 신경과 전문의에게 요구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농지투기 근절을 위해 농지 조사에 착수할 계획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 등을 통해 헌법에 명시된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을 토대로 투기성 농지 보유 단속 의지를 밝혔다. 이를 위해 농림축산식품부는 조사원 채용 등을 통해 전수조사를 준비하고 있다.
농지법에 따르면 영농계획서를 거짓으로 제출하거나 정당한 사유 없이 농사를 짓지 않는 경우 시장·군수·구청장은 6개월 이내 농지 처분을 명령할 수 있다. 즉 이번 전수조사 과정에서 실제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이 농지를 보유한 경우 농지 처분으로 이어질 수 있다.
농지 조사의 주무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는 조만간 조사 방법 등을 공개하고 이달 중 전수조사를 시작할 예정이다. 다만 조사 기준이 구체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현장에서는 혼선이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경기도와 경상북도 지역 신경과 병원에 농지 조사 관련 지자체 안내문이 전달됐다. 노인장기요양등급을 받은 고령 환자의 경우 경작사실확인서와 함께 전문의의 활동 가능 여부를 확인하는 진단서를 제출하도록 한 내용이다.
공문에 따르면 전문의는 인지 장애, 치매 등을 앓고 있는 환자의 상태를 확인한 뒤 ‘파종·제초 등 일반 농작업이나 농기계 조작이 가능한 상태’라는 취지의 소견서를 작성해야 한다.
전문의 소견서를 제출하지 못할 경우 직불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 조사 과정에서 추가 불이익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를 두고 신경과 전문의들은 정부가 농업 활동 가능 여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은 상황에서 판단 부담이 의료 현장으로 넘어오고 있다고 비판했다. 농업 활동 가능 여부는 의학적 판단만으로 단정하기 어려운 영역인 데다,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해당 판단이 농업인에게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신경과 전문의는 “애매한 업무를 의사가 맡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며 “지자체가 직접 현장을 확인해 판단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이어 “농사는 타인의 안전과 직접 연결되는 행위가 아닌 만큼 나이와 질환을 이유로 경작을 제한하는 접근은 적절하지 않다”며 “고령화된 농촌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규제는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고령 농업인의 경작 가능 여부를 의료기관에 확인하는 절차는 공식 조사 방식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농지 조사 과정에서 경작 여부는 지자체와 현장 조사 인력이 판단하는 사안이며, 의료적 판단을 병원에 의뢰하는 체계는 없다고 설명했다.
농림부 관계자는 “농지 조사 방법과 시기 등은 현재 정리 중이며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라며 “의료인의 소견서를 토대로 경작 가능 여부를 판단하는 부분은 부서 차원에서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또 “경작 여부는 지자체를 통해 실제 작물 재배 여부 등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조사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