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0원’ 환율 습격? 영점 조정?…시험대 오른 K증시 기초체력

‘1530원’ 환율 습격? 영점 조정?…시험대 오른 K증시 기초체력

외국인, 3월 코스피서 35조원 엑소더스…환차손 공포
반도체·차 등 수출주 수혜+리스크 공존…항공·정유는 직격탄
“위기라기보다 뉴노멀”…WGBI·RIA에 거는 기대

기사승인 2026-04-02 06:00:08

1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시민이 환전하고 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일대비 28.8원 내린 1501.3원에 정규장을 마쳤다. 연합뉴스. 

최근 원·달러 환율이 심리적 마지노선인 1500원을 뚫고 장중 1536.9원까지 치솟으며 국내 증시 펀더멘털이 시험대에 올랐다. 환율은 1일 조기 종전 기대에 1500원대 초반으로 소폭 내려왔지만, 고환율이 상수가 된 ‘뉴 노멀’ 환경 속에서 외국인 수급 부담과 기업 이익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중동발 뉴스 한 줄에 환율과 주식시장이 함께 널뛰는 롤러코스터 장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외국인, 3월 코스피서 35조원 엑소더스…환차손 공포

외국인 폭풍 매도의 배경은 단순한 차익 실현이 아니다. 핵심 키워드는 환차손 공포다. 달러로 자금을 운용하는 외국인에게 환율은 수익률을 좌우하는 두 번째 주가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환율이 1000원일 때 100만원(1000달러)어치 한국 주식을 샀다가 주가가 10% 떨어지고, 환율이 2000원으로 두 배 오르면 평가액은 90만원이 된다. 이 돈을 다시 달러로 바꾸면 450달러밖에 남지 않아 처음 넣은 1000달러 대비 손실률은 55%로 불어난다.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는(원화 가치 하락) 구간일수록 외국인이 서둘러 주식을 팔아 치우는 이유다.

중동 전쟁 확전 우려가 커진 지난 3월 한 달 동안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35조8000억원 이상을 순매도하며 월간 기준 역대 최대 ‘투매’를 기록했다. 4월의 첫 거래일인 이날도 외국인은 코스피 시장에서 6100억원 안팎의 매도 우위를 보였다. 지난달 원화가 5~6%가량 절하돼 대만 달러나 엔화 등 경쟁국 통화(2% 안팎)보다 낙폭이 훨씬 컸다는 점은 한국 시장이 글로벌 포트폴리오 조정의 1순위가 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권아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부채(외국인의 국내투자)’가 원화 약세를 끌고 가는 국면”이라며 “지난주 터보퀀트발 반도체 투자심리 급랭으로 외국인 순매도가 급격히 늘면서 환율 상승세에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했다.

반도체·차 등 수출주 수혜·리스크 공존…항공·정유는 직격탄

통상적으로 환율 상승(원화 약세)은 수출기업엔 호재, 내수·수입기업엔 악재로 작용한다고 본다. 하지만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선 공식이 단순하지 않다. 달러 강세와 함께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안팎까지 치솟고 호르무즈 해협 인근 해상 물류 차질 우려가 커지면서 수출 가격 경쟁력 개선 효과보다 원자재·운임 등 원가 부담이 먼저 부각되고 있어서다.

업종별로는 반도체·자동차·기계가 대표적인 ‘고환율 딜레마’ 업종으로 꼽힌다. 반도체 업종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주가 상승으로 외국인 비중과 지수 내 비중이 모두 컸던 만큼 고환율 충격이 가장 먼저 반영된 모습이다. 리스크오프 심리가 빠르게 나타나며 매도 물량이 급격히 쏟아지기도 했다. 다만 이런 현상은 단기적 영향일 뿐, 달러 매출 비중이 높은 만큼 원화 약세가 2분기 이후 이익 개선에는 오히려 우호적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자동차와 기계 등 전통 제조 수출주 역시 환율 10원 상승 시 영업이익이 개선되는 구간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분석이 많다. 다만 중동발 물류비 상승과 부품 조달 차질,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가 겹치면서 ‘고환율=호재’로만 보긴 어렵다는 게 증권가의 중론이다. 같은 환율 레벨에서도 브랜드와 제품 믹스, 판매 지역에 따라 완성차와 부품주 간 성적표가 크게 갈릴 수 있다는 얘기다.

항공·정유 등 유가와 환율에 민감한 업종은 비용 부담이 더 직접적으로 반영된다. 항공사는 항공기 리스료와 유류비를 달러로 지급하는 구조라 환율 상승이 곧바로 비용 증가로 이어지고, 정유사 역시 원유를 달러로 사오는 만큼 유가 급등과 환율 상승이 겹칠 때 이중 부담을 진다. 내수 위주 기업들도 수입 원재료 가격이 올라가면 마진이 줄어들어 고환율·고유가·고금리의 ‘3고’ 환경이 길어질수록 체력 소모가 커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위기라기보다 영점 조정”…WGBI·RIA에 거는 기대

‘1500원대 환율’에도 불구하고 시장 안팎에선 이번 국면을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와 같은 구조적 붕괴 시나리오로 보긴 어렵다는 온도 차도 분명하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CDS 프리미엄과 대외부채 비율, 외환보유액 수준이 여전히 안정적이고 경상수지도 흑자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김유미 키움증권 이코노미스트는 “경상수지는 흑자를 유지하고 있고, CDS 프리미엄 역시 2022년 고점에 비해서는 낮은 수준”이라며 “과거 외환위기 때처럼 외화 유동성 부족 상황과는 차별화 된다”고 진단했다.

전규연 하나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금리 인하 기대에 발맞춰 완만하게 하락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원·달러 환율도 큰 틀에서 달러의 전개 방향에 연동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은 유가 급등으로 인한 물가 상승이 일시적일 가능성이 크다”면서 “연내 금리 인하 경로(9월 한 차례)가 유효하다”고 덧붙였다.

하나증권은 2분기 평균 1490원을 고점으로 보고, 3·4분기에는 1440~1450원대로 일부 되돌림이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키움증권 역시 2분기 중 다시 1400원대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당국의 대응 기조도 당장 ‘실탄’을 쏟아 붓기보다는 구조적인 처방에 무게가 실려 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이날 “원화가 큰 폭의 변동성을 보이고 있으나 펀더멘털과 괴리된 과도한 원화 약세는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부와 당국은 이번 원화 약세의 원인을 지정학적 리스크와 외국인 포지션 조정 등 대외 요인에 더 무게를 두면서 직접적인 외환보유액 소진보다는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과 국내시장복귀계좌(RIA) 활성화 같은 중장기 수급 개선책에 기대를 거는 분위기다.

하인환 KB증권 연구원은 “RIA계좌와 WGBI 편입 등 환율 안정과 관련된 조치가 시작되고 있다”면서 “일부 상당수 투자자들에게 현재의 환율 레벨과 지수 조정은 자금 일정부분을 한국시장으로 가져올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될 것으로 판단되며 WGBI는 10조원 내외로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임성영 기자
rssy0202@kukinews.com
임성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