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제약바이오 시장에서는 매일같이 대형 M&A, 신약 허가, 임상 데이터가 쏟아진다. 그런데 이 이슈들이 국내 시장 및 관련 업체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짚어주는 보도는 많지 않다. [글로벌 트렌드로 읽는 K-제약바이오]는 글로벌 제약바이오 시장의 주요 흐름을 추적하고, 그 안에서 국내 시장 및 기업의 좌표를 찾아본다. 편집자 주
글로벌 제약사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이 아직 임상시험도 시작하지 않은 신약 후보물질에 1조원이 넘는 가치를 매겼다. 올해 1월 미국 바이오텍 재넉스 테라퓨틱스(Janux Therapeutics)와 최대 8억5000만 달러(약 1조1400억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BMS가 이처럼 과감한 베팅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핵심은 ‘다중항체(multispecific antibody)’다. 기존 항암제가 암세포의 한 가지 약점만 공격했다면, 다중항체는 두 가지 이상의 약점을 동시에 겨냥한다. 쉽게 말해 문 하나만 두드리던 것에서, 여러 문을 한꺼번에 열어 암세포를 공격하는 방식이다. 재넉스의 기술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정상 세포 앞에서는 ‘잠금 상태’를 유지하다가 암세포 근처에서만 자동으로 작동하도록 설계됐다. 부작용은 줄이고 효과는 높이는 전략이다.
다중항체가 이렇게 주목받는 건 기존 면역항암제의 한계 때문이다. 연간 매출 40조원이 넘는 ‘키트루다’(MSD)나 ‘옵디보’(BMS)는 면역항암제 시장을 지배해 왔지만, 실제로 약이 듣는 환자는 10명 중 2~3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7~8명은 반응하지 않거나 내성이 생긴다. 다중항체는 이 ‘약이 듣지 않는 환자’를 공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넥스트 키트루다’의 유력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시장도 폭발적으로 커지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투워즈 헬스케어(Towards Healthcare)에 따르면 글로벌 이중항체 시장은 2025년 약 120억 달러(약 17조원)에서 연평균 44%씩 성장해 2035년에는 4600억 달러(약 650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국제학술지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Nature Biotechnology)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글로벌 바이오 대형 계약 상위 20건 중 4분의 1이 다중항체 관련이었다.
2028년, 옵디보 특허가 만료된다… BMS가 다급해진 이유
BMS가 특히 다급한 데는 이유가 있다. 매출 1위 옵디보(연매출 약 14조원)와 2위 엘리퀴스(약 17조원)의 특허가 2028년 동시에 만료된다.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이 한꺼번에 위협받는 셈이다. BMS는 이를 대비해 지난 2년간 다중항체를 중심으로 300억 달러(약 42조원) 이상을 쏟아부은 것으로 파악된다.
BMS가 체결한 딜 중 계약 총액 기준 최대 규모는 2025년 6월 독일 바이오엔텍(BioNTech)과 맺은 이중항체 ‘BNT327’ 공동개발 계약으로, 최대 111억 달러(약 15조7000억원)에 달한다. 현재 1000명 이상의 환자가 참여하는 글로벌 3상 임상이 진행 중이다. 여기에 재넉스(8.5억 달러), 하버 바이오메드(10억 달러 이상), 오비탈 테라퓨틱스 인수(15억 달러), 자체 개발 이중항체 ‘옵두알라그’ FDA 승인까지. BMS는 ‘포스트 옵디보’ 시대를 다중항체로 돌파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그렇다면 국내는… ‘와이바이오로직스’, 빅파마보다 한 발 더 나간 ‘삼중항체’
글로벌 빅파마들이 다중항체에 수십조 원을 베팅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 이 분야를 선도하고 있는 기업이 와이바이오로직스다. 글로벌 빅파마들이 두 개의 표적을 겨냥하는 이중항체(2개 표적) 확보에 수조 원을 쓰고 있을 때, 와이바이오로직스는 한 단계 더 나아간 삼중 기전(3개 표적)의 다중항체-사이토카인 융합체 플랫폼 ‘멀티앱카인(Multi-AbKine)’을 개발하고 있다. 면역 브레이크를 풀고(PD-1), 암의 혈관 공급을 차단하며(VEGF), 면역세포의 공격력을 높이는(IL-2) 세 가지를 하나의 약으로 해결하겠다는 전략이다.
삼중항체의 차별점은 이중항체가 갖지 못한 ‘면역세포 직접 활성화’ 기능에 있다. 이중항체는 면역 브레이크를 풀거나 혈관을 차단하는 데 그치지만, 여기에 IL-2(면역세포 활성화 사이토카인)를 결합하면 면역세포 자체의 증식과 공격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 빅파마들이 이중항체로 열어놓은 문을 통해, 더 강한 면역 공격을 실행하는 구조인 셈이다. 실제로 와이바이오로직스의 전임상에서 삼중항체는 이중항체 단독 대비 더 강력한 항종양 효과를 보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PD-1 억제제에 내성을 보이는 동물모델에서도 종양 억제 효과가 확인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두 개의 선두 파이프라인이 동시에 개발 중이다. ‘AR-170’은 키트루다 같은 기존 면역항암제에 반응하지 않는 고형암 환자를, ‘AR-166’은 면역항암제가 거의 듣지 않는 대장암 등 난치암을 각각 타겟한다. 두 파이프라인 모두 2027년 미국 임상시험 신청(IND)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글로벌 CDMO 2위권 우시바이오로직스와 임상 준비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확인된다. 4월 미국암연구학회(AACR 2026)에서 전임상 데이터 3건이 공개될 예정이다.
회사 관계자는 “AR-170과 AR-166은 각각 경쟁 약물 대비 우수한 효능과 안전성을 입증했고, PD-1 억제제에 대해 약물저항성을 보이는 동물모델 환경에서 탁월한 항종양 효과를 확인했으며, 이를 오는 4월 AACR 2026에서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기술이전 전략도 윤곽이 잡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임상 승인이 빠른 중국에서 먼저 임상 데이터를 확보한 뒤, 이를 글로벌 빅파마 대상 기술이전 협상에 활용하는 투트랙 구조로 알려져 있다. 미국 현지에 글로벌 제약사 출신 사업개발(BD) 임원을 배치해 빅파마 네트워크에 직접 접근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진다. R&D 자금도 약 500억원(CB 350억원 + 정부 과제 약 150억원)을 확보한 상태다.
글로벌 빅파마들이 다중항체에 수십조 원을 베팅하고 있는 지금, 와이바이오로직스의 멀티앱카인이 K-바이오의 경쟁력을 입증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