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Z Style] 패션업계 만연한 ‘카피’…사과만 하면 끝?

[Ki-Z Style] 패션업계 만연한 ‘카피’…사과만 하면 끝?

기사승인 2012-03-03 12:59:01

(사진출처=코벨 공식 블로그)

[쿠키 문화] 난리가 났다. 한 소규모 브랜드의 디자인 양말을 모 대기업의 편집 숍에서 그대로 카피해 판매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패션 피플’이 해당 브랜드와 편집 숍을 주목했다. 줄줄이 해당 의혹에 대한 기사가 뜨고, 마이크로 블로그가 편집 숍에 대한 비난으로 떠들썩했다. 결국 편집 숍 론칭과 기획을 담당한 대기업 측은 바로 디자인 표절을 인정한다는 사과문을 발표하고 해당 제품을 전량 소각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일까.

디자이너 레이블 ‘스티브 J & 요니 P’의 디자이너 요니 P는 지난 달 28일 ‘할 말이 없다’라는 멘트와 함께 자신의 마이크로 블로그에 한 장의 사진을 올렸다. 지난 시즌 신상품으로 나왔던 ‘마스크 프린트’ 가디건이 동대문도 아닌 내셔널 브랜드에서 그대로 카피되어 판매되고 있는 것.

비단 해당 브랜드 한 곳만의 문제가 아니다. 당장 집 앞 백화점 매대에서는 분명 지난 시즌 이태리, 파리, 뉴욕 등지의 패션쇼에서 봤던 제품들이 작은 디테일만 바꾼 채 그대로 판매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하이 패션 브랜드들의 새 컬렉션을 출장 관람한 후, 컬렉션 전시장을 찾아가 사진으로 남겨 한국으로 돌아온다. 그 사진을 바탕으로 다음 시즌 신상품을 출시하는 것이 다수의 국내 패션 브랜드 디자인 팀이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한 관계자는 “매 시즌 그런 일을 반복하다 보니, 소수의 명품 브랜드에서는 국내 디자인팀 관계자의 얼굴을 외워 뒀다가 새 시즌 컬렉션 전시장의 입장을 금지하는 경우도 봐 왔다. 망신스럽고 창피한 일이지만, 국내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다”고 주장했다.

상대적으로 소비자층이 젊고 판매폭이 자유로운 인터넷 쇼핑몰들은 더하다. 노골적으로 명품 패션 하우스들의 이름을 건 ‘짝퉁’들이 ‘OEM’ 혹은 ‘로스’라는 이름을 달고 터무니없이 저렴한 가격에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간다. 이른바 ‘카피캣’들이 날뛰고 있는 것이다.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디자이너의 창의력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많은 수고와 노력이 따른다. 옷을 디자인하고, 소재를 선택하고, 매입하고, 샘플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그 모든 것을 바탕으로 옷 한 벌이 나오면 그동안의 생산 단가를 통합한 가격이 매겨진다. 그러나 ‘카피’에는 개발비용이 들어가지 않는다. 시장에 나온 옷을 그대로 베껴 불법적으로 생산하여 염가로 판매하게 되면, 환호하는 것은 소비자다. 비싼 가격의 오리지널은 외면 받고 저렴한 ‘카피’만이 시장에서 살아남는 것.

더욱이 유행이 빠른 패션 시장에서는 이러한 오리지널들은 법적인 보호를 받기도 힘들다. 지적재산권에 속하는 디자인권을 존중받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에 걸친 사실증명과 소송의 장기화를 감내해야 한다. 더욱이 승소 가능성은 불투명하기 짝이 없다. 당장 매대에 걸린 카피 상품에게 승소하여 3년 후에 판매금지 처분을 내려 봤자 소용이 없는 것이다.

패션계는 오늘과 내일이 다르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는 상품들 속에서 오늘 살아남기만 급급해 내일을 보지 않는 것은 지양해야 할 일이다. 대한민국 패션계가 편협하고 일차적인 패션에서 벗어나 세계적인 ‘하이 패션’(High Fashion) 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서로의 고유한 디자인을 존중하고 보호해주는 윤리관이 필요한 때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은지 기자 rickonbge@kukimedia.co.kr

Ki-Z는 쿠키뉴스에서 한 주간 연예/문화 이슈를 정리하는 주말 웹진으로 Kuki-Zoom의 약자입니다.
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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