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의료 결정이요? 돈 내는 분이 결정해야 합니다.”
연명의료결정에 대한 모 대학병원 A교수의 말이다. 최근 연명의료결정 제도 시행 5개월을 돌아보기 위해 열린 정책토론회에서 그는 “최선을 다해서 환자를 살려냈지만 6~7개월 후에 만난 보호자의 눈빛에는 오히려 원망이 서려있었다”며 “알고 보니 치료비 마련을 위해 가족들은 전셋집을 처분하고 폐지를 줍는다고 했고, 환자는 몇 달 있다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죽음에 대한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기 위한 제도의 취지와 상관없이 현실에서는 경제적인 문제가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어렵게 살려낸 환자가 사망한 후에는 치료비라는 책임이 남는다. 병원은 가족에게 독촉장을 보내고, 경제적 사정이 어려운 가족은 몰락할 위기에 처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환자의 자기 결정이라는 가치가 가장 우위에 있느냐고 그는 되물었다.
연명의료의 지속 또는 중단 여부는 누가 어떻게 결정하는 것이 옳을까. 이날 각계 전문가들이 열띠게 논의했지만,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적나라하게 확인했을 뿐 눈에 띄는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다.
A교수의 말처럼 어떤 의료 현장에서는 환자 스스로 연명의료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과분한 일처럼 여겨진다. 반면, 또 다른 현장에서는 가족의 의사를 중시한 나머지 환자 개인의 존엄성이 침해되기도 한다. 한 예로 연명의료 여부를 정하지 않고, 가족 전원의 동의도 받지 못한 임종기 환자가 있다. 현행법에서는 그에게 갑자기 심정지가 왔을 경우 생존 가능성이 있다면 심폐소생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심폐소생술로 인해 갈비뼈가 망가지기도 하고, 뇌사자가 될 수 있다. 동반되는 고통도 환자의 몫이다. 환자 입장에서 가장 최선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연명의료결정법은 환자 본인이 사전 또는 임종과정에서 스스로 연명의료중단을 결정하도록 선택권을 제시하기 위해 만든 제도다. 다만, 본인 결정이 어려울 경우 연명의료에 관한 환자 가족 2인 이상의 일치된 진술에 따르거나, 환자의 직계 가족 전원이 합의해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할 수 있도록 예외를 뒀다.
그러나 아직까지 현실에서는 ‘자기결정권’이라는 보다는 연명의료여부를 결정하는 타인에 집중되는 모양새다. 지난 5월 28일까지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 연명의료중단 이행서가 통보된 건수는 총 7845건. 이 중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법의 취지에 맞게 환자가 자신의 연명의료 여부를 결정한 사례는 34.6%에 불과했다. 가족 2인 또는 가족 전원의 의견을 물어 연명의료여부를 결정한 사례는 총 5135건으로 전체의 65.5%였다. 국가 전체 사망 중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른 사례는 10~20%에 그쳤다.
사실상 가장 명쾌한 해답은 ‘나’에게 있다. 내가 나의 죽음을 결정해두고, 그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해놓으면 된다. 다만 지금 죽음을 맞는 세대들에게 ‘죽음에 대한 준비’는 생소한 개념이다. 이제 막 죽음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단계이니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결국 지금 논의되는 연명의료결정제도의 주인공은 다음세대인 것.
유엔은 지난 2009년 ‘세계 인구 고령화 보고서’에서 100세 이상 장수하는 ‘호모 헌드레드(homo hundred)’시대가 올 것으로 전망했다. 어쩌면 지금 살아있는 이들 중 일부는 맘만 먹으면 그 이상도 살 수 있게 될지 모른다. 눈이 망가지면 눈을, 관절이 망가지면 관절을, 심장이 망가지면 심장을 교체하는 식으로 계속해서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그 때 사람들은 죽음을 어떻게 다루게 될까. 또 나의 죽음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