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달린다. 팔과 다리를 크게 휘두르며. 허공으로 땀이 튀고, 때론 넘어질 것처럼 가슴이 땅으로 숙여진다. 하지만 남자는 개의치 않고 달린다. 가수 장우혁이 2011년 공개한 ‘기억에게 외치다’ 뮤직비디오 속 장면이다. 장우혁은 넌버벌 퍼포먼스(non-verbal performance) ‘푸에르자 부르타’의 런닝맨을 오마주해 이 장면을 넣었다. 그는 달리는 게 좋다고 했다. 그것이 인생과 비슷하다고 느껴서다.
운명이었을까. 그로부터 7년 뒤 장우혁은 ‘푸에르자 부르타’에 런닝맨으로 출연했다. 런닝머신 위를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리는 게 그의 역할이었다. 장우혁은 처음엔 ‘‘출발 드림팀’도 했는데, 이 정도는 껌이지’라며 자신만만했다고 한다. 하지만 웬걸. 달리는 건 쉽지 않았다. 쉽지 않은 수준이 아니라 연습 도중 쓰러지기도 했을 정도란다. 주위를 둘러보니 동료 배우들은 모두 20대, 게다가 기계체조 선수들이었다. 장우혁은 그때 깨달았다. ‘이건 극강의 퍼포펀스야!’
“그래도 훈련이 되니, 하루에 두 번 공연하는 날들도 있었어요.” 최근 서울 강남대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장우혁은 “20대 배우들도 공연을 연속으로는 못 했다”며 뿌듯해 했다. 그는 “런닝머신 위를 달리는 게, 힘들기는 하지만 정말 멋지다”며 “보는 사람마다 (그 인물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팬들은 그에게 ‘꼬레도르 장’이란 애칭을 붙여줬다. ‘꼬레도르’는 스페인어로 ‘잘 달리는 사람’을 뜻한다.
장우혁은 ‘푸에르자 부르타’ 무대에 오르면서 퍼포먼스를 향한 갈증을 다시 느끼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음반을 낸 게 2011년. 음악을 아예 손에서 놓은 것은 아니었지만, “전작을 뛰어넘는 뭔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쉽게 진척을 내진 못했다. 그런 그를 깨운 건 팬들의 함성이었다. 지난해 2월 MBC ‘무한도전 –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3’를 통해 그룹 H.O.T. 동료들과 한 무대에 서고, 같은 해 9월엔 17년 만의 완전체 콘서트를 열었다. 장우혁은 “팬들 덕분에 생각이 심플해졌다”면서 “성공이나 실패에 대한 우려, 더 나은 퍼포먼스를 향한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2011년에 발표했던 ‘시간이 멈춘 날’은 노력이 굉장히 많이 들어갔던 곡이에요. 퍼포먼스만 해도, 1년 반에 걸쳐 만들어낸 작품이었죠. 그 이후로 ‘이걸 뛰어넘는 다른 장르의 뭔가를 하고 싶다’는 강박이 심했던 것 같아요. 마음이 힘들어 요가에 열중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작년 H.O.T. 콘서트 때 팬들에게서 ‘본업(가수)을 이어갔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우리 오빠가 여전히 무대에서 저만큼 할 수 있다’는 걸 보고 싶으셨나 봐요. 저도 그러고 싶었고요. 그 뒤부턴 콘셉트며 의상이며, 여러 가지가 쉽게 해결됐어요.”
팝핀 댄스로 소녀들의 마음에 불을 지르던 ‘원조 아이돌’은 불혹을 넘긴 나이에도 펄펄하다. 매일 운동을 하고, 술과 담배는 일절 입에 대지 않는 등 몸 관리에 철저한 덕분이다. 그는 “살이 잘 찌고 몸도 자주 아파서, 관리를 하는 게 일상이 됐다”며 웃었다. 지난달 있었던 H.O.T. 콘서트에선 복근도 공개했다. 신곡 ‘위캔드’(WEEKAND)를 미리 공개하는 무대에서였다. 장우혁은 이 곡 퍼포먼스를 요즘 유행하는 어반 계열로 꾸몄다. ‘나는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즐기면서 작업했다.
장우혁은 달린다. 신곡 ‘위캔드’와 ‘스테이’(STAY)를 낸 데 그치지 않고, 또 다른 신곡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방송 활동도 겸하고 있는 그는 “방청 오는 팬들이 무척 행복해 보여서, 나도 만족스럽다”고 했다. 오는 11월엔 단독 콘서트도 연다. “강력한 퍼포먼스”가 담긴 콘서트가 될 것이란다. 끊임없이 신곡을 발표하고 콘서트를 여는 게 가수로서 그가 품은 꿈이다. 장우혁은 “장르나 퍼포먼스를 구분 짓지 않고, 계속해서 노래를 발표할 것”이라면서 “다만 ‘정통 댄스가수’라는 범주는 벗어나지 않을 생각”이라고 귀띔했다.
“하고 싶은 걸 하려고 했어요. ‘어차피 난 성공과 실패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니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자’는 마음이었죠. 의상도 제 옷이고요, 뮤직비디오도 미국에서 찍었는데 촬영감독과 단둘이서만 갔어요. 틀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그리고 재밌게. 그게 콘셉트라면 콘셉트겠네요. 앞으로 얼마나 더 활동할 수 있을까요? 지금처럼 관리하면 10년은 너끈할 것 같아요. 더 열심히 관리해서, (10년 뒤엔) 어떻게 되는지 한 번 지켜보자고요. (웃음)”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