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JTBC ‘뭉쳐야 찬다’, KBS2 ‘씨름의 희열’, SBS ‘진짜 농구, 핸섬 타이거즈’, 그리고 SBS ‘스토브리그’. 최근 방송가에는 스포츠를 소재로 한 예능과 드라마의 인기가 뜨겁다. 인기의 원인은 진지함이다. 최근 스포츠 소재의 예능·드라마는 달리고 연습하며 흘린 땀, 그리고 거짓 없는 진검승부의 매력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각 프로그램의 제작진은 당장의 실력은 부족하지만 잠재력을 갖고 있는 꼴찌팀을 집중 조명한다. 여러 명으로 구성된 팀을 살리는 건 한명의 지도자다. 안정환 감독과 서장훈 감독, 백승수 단장이 그 주인공. 이들이 각 프로그램에서 어떤 스타일의 리더십을 보여주는지 비교 분석해봤다.
△ ‘뭉쳐야 찬다’ 안정환 감독
출발부터 예고된 가시밭길이다. 프로축구팀의 감독도 가능한 화려한 경력의 전 축구선수 안정환은 제작진이 선발한 멤버들을 보고 고개를 들지 못했다. 각 분야에서 정점을 찍었지만 신체적 전성기가 지난 스포츠 스타들이 총출동했다. 전 씨름선수 이만기부터 전 농구선수 허재, 전 야구선수 양준혁, 전 마라토너 이봉주, 전 체조선수 여홍철 등 시청자들이 누구나 알 법하지만 축구와 전혀 관계없는 멤버들이었다.
2015년 방송된 KBS2 ‘청춘FC 헝그리 일레븐’에서 혹독한 독설을 아끼지 않았던 감독 안정환은 ‘어쩌다 FC’를 맡으며 변했다. 실수와 잘못 하나하나에 반응하고 선수들의 약점과 안이한 태도를 강하게 지적하는 대신, 미약한 성장과 작은 노력을 먼저 칭찬한다. “오늘도 토하기 좋은 날씨”라며 훈련을 독하게 하는 건 여전하지만, 큰 점수 차로 대패한 선수들에게 “수고했다”고 회식을 권하기도 한다.
안정환 감독의 변화는 회차가 정해지지 않은 고정 예능, 선수들이 그보다 선배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더 젊고 절박한 선수들이었다면, 정해진 대회에 도전하는 콘셉트였다면 180도 다른 안 감독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안 감독의 리더십에서 주목할 점은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첫 만남에서 몸을 푸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고 “가망이 1도 없다”고 좌절했던 그는 “7전 7패 58실점의 실력으로 무슨 바캉스냐”, “2020년에 1승을 못하면 해체시킨다고 한다” 등의 직선적인 메시지를 선수들에게 꾸준히 주입한다.
전패를 통해 아무런 희망도 보여주지 못했다. 훈련보다는 새로운 게스트 멤버들을 초청해 이슈몰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스포츠보다는 예능에 가까워지고 있다. 여러 시청자들의 응원과 비판이 교차하면서도 ‘뭉쳐야 찬다’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건 온전히 안 감독의 존재감과 리더십 덕분이다. 그가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진짜 축구로 1승을 이뤄내길 기대한다.
△ ‘진짜 농구, 핸섬 타이거즈’ 서장훈 감독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오랜만에 감독으로 코트에 들어선 전 농구선수 서장훈은 다수의 예능에서 활약하던 방송인 서장훈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지난달 9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그가 “농구로 장난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제목에 굳이 ‘진짜 농구’라는 수식어를 붙여야 했던 이유도 납득이 갔다.
연예계에서 농구를 즐기고 잘하고 싶은 멤버들로 선정된 ‘핸섬 타이거즈’ 팀은 첫 만남부터 서 감독의 모교인 휘문중 선수들을 만나 경기를 치렀다. 그리고 곧바로 훈련이 이어졌다. 그리고 또 아마추어 팀과 경기를 치렀다. 쉬는 기간엔 개인 훈련을 얼마나 참여했는지 체크했고, 훈련 직후엔 공개적으로 개인별 평가를 메겼다. 그 과정에서 서 감독은 “열심히 해줬지만 오늘은 굉장히 실망스럽다”거나 “수준이 너무 떨어져서 오늘 경기는 평가하기 어렵다”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그렇게 할 거면 집에 가”라거나 “이게 뭐가 어렵냐” 등의 발언은 듣는 시청자들까지 불편하기도 했다.
준비가 덜 된 선수들을 단기간에 성장시켜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게 하는 것. ‘진짜 농구, 핸섬 타이거즈’가 준비한 콘셉트다. 서장훈 감독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목표는 분명하다. 수많은 방송을 경험한 그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을 리 없다. 자신의 독설이 어떻게 비칠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도 그는 거칠게 선수들을 몰아세운다.
"친절히 가르쳐줬으면 좋겠다"라는 이상윤의 말에 서장훈 감독은 “선수들이 들으면 부드럽다고 느꼈을 건데 여러분이 느낄 때는 어려웠을 수 있겠다. 나도 다정하게 해보도록 노력을 하는데 장담은 못 하겠다”고 말했다. 서 감독은 농구인들의 세계가 얼마나 거칠고 치열한지, 결과가 얼마나 중요한지 숨기지 않았다. 그것이 그가 방송 활동을 시작하기 전 수십년 동안 시간을 보낸 진짜 코트고 진짜 농구다.
이제 막 4회까지 방송된 분량으로 서장훈 감독의 리더십을 평가하기는 어렵다. 다만 그가 그리는 진짜 농구의 세계, 농구의 매력을 아주 빠른 시간 안에 보여줬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모습이 시청자들이나 선수들에게 어떻게 비춰질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 이면에서 외롭지만 강한 리더십, 가장 필요한 것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지도자의 모습이 보인다.
△ ‘스토브리그’ 백승수 단장
처음부터 완성형이다. ‘스토브리그’에서 배우 남궁민이 연기하는 백승수 단장은 13회 분량이 방송되는 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다. 처음 그가 등장한 순간부터 팀에 어느 정도 적응한 지금도 직원들과 친해지거나 개인적인 유대관계를 맺을 생각이 없다. 매번 똑같은 말투로 똑같은 목표를 말하고 똑같은 방식으로 움직인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독특한 그의 캐릭터가 너무 한결 같아서 이젠 익숙해질 지경이다.
백승수 단장은 스스로를 지도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가르칠 마음도, 아니면 자신을 보고 배우길 바라는 마음도 없다. 그저 자신이 옳은 길을 제시하고 움직이면 함께 따라주길 바랄 뿐이다. 하지만 일을 대하는 그의 신념과 태도는 모든 사람들의 귀감이 된다. 철저히 결과 중심적이지만 과정에서의 윤리성과 꼼꼼함도 잊지 않는다. 퇴근 후에도 홀로 업무에 필요한 공부를 하는 건 그에게 아주 당연한 일이다.
백 단장은 정면 승부를 피하지 않는다. 자신을 미워하는 권경민 상무(오정세)에게 “조금이라도 제대로 된 조직이라면 말을 안 들어도 일을 잘하면 그냥 놔둔다”고 일깨우고, 자신을 의심하는 직원들에게 “믿음으로 일하는 거 아닙니다. 각자 일을 잘하자는 거다”라고 핵심을 찌른다. 또 한국 복귀를 망설이는 길창주(이용우)에게 “아무한테도 미움 받고 싶지 않다면 정말 절실한 건지 모르겠다”고 설득하고, 자신의 뜻과 반대 행동을 하는 이에겐 “세상에서 제일 쓰레기 같다고 생각 하는 인간이 상식적인 말보다 힘에 의한 굴복에 반응하는 인간”이라며 거칠게 말한다.
‘스토브리그’는 백승수 단장이라는 판타지로 시청자들을 끌어들였다. 그가 추진하는 방향대로 하나씩 일을 해결해 나가면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드라마는 판타지보다 현실이 더 단단하다는 걸 보여준다. 백 단장의 맞은편에 서 있는 권 상무 역시 조직의 일부일 뿐이다. 그 과정에서 딱딱하고 멀게만 느껴졌던 백 단장은 조금씩 가까워진다. 물론 일이 조금 풀리려고 하면 “당연한 걸 다행이라고 하는 세상입니까”라고 차갑게 냉소하는 그를 인간적으로 좋아하긴 힘들다. 하지만 조직을 이끌고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지도자를 반드시 좋아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마지막회까지 백 단장이 보여줄 리더십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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