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이렇게까지 되는 일이 없을 수 있을까. 빚쟁이에게 쫓기고 자신의 불륜으로 가정은 파탄 직전. 정작 팔아야 하는 보석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유일하게 원하는 대로 풀리는 일은 NBA 스포츠 도박 뿐. 이 남자에게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넷플릭스 영화 ‘언컷 젬스’(감독 베니 사프디, 조슈아 사프디)는 첫 장면부터 에티오피아 웰로 광산에서 보석을 캐는 장면으로 시작하지만 보석 영화는 아니다. 뉴욕의 보석상 하워드(아담 샌들러)는 아르노(에릭 보고시안)에게 빌린 10만 달러를 갚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아르노가 동원한 폭력배들의 협박 강도가 높아지던 중, 하워드가 오랜 기간 공들여 준비한 아프리카 원석이 택배로 도착한다. 가공되지 않은 원석의 가치는 빌린 돈을 갚고도 남을 정도. 하지만 가게에 있다가 우연히 원석을 구경하게 된 NBA 농구선수 케빈 가넷이 그것에 홀리며 이야기는 점점 꼬인다.
처음엔 주인공에게 이입하지 못하고 부정적이었던 태도가 영화를 볼수록 점점 바뀌었다고 적고 싶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언컷 젬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워드를 끈질기게 따라다니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구제불능인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매일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는 모습에 잠깐 연민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하워드가 선택하고 추구하는 방향성 자체가 글러먹었다는 것을 극 중 인물들도,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도 안다. 얼마나 더 망해야 정신을 차릴까 싶지만, 이미 어디서부터 망가진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숙한 늪에 빠져 있다. 그를 구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언컷 젬스’는 하워드가 일확천금을 거두고 깨끗이 빚을 갚아 성공하는 이야기를 그리지 않는다. 인물보다는 그가 겪는 희노애락의 순간들이 독특한 장르를 만들어낸다. 언제 낭떠러지로 떨어질지 모르는 인물의 곡예쇼와 비슷하다. 하워드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끊임없이 긴장되고 불안하다. 하워드에게 갖고 있던 미약한 희망도 하나하나 짓밟는다. 엉망진창인 상황에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흘러나오는 1980년대 풍 전자음악의 의미심장한 멜로디는 이 모든 것을 놀리는 것 같다.
빚쟁이에게 쫓기면서도 한탕을 노리는 밑바닥 인간을 2시간10분 동안 지켜보게 만드는 건 ‘언컷 젬스’의 대단한 점이다. 돈과 폭력과 섹스와 스포츠와 도박 등 자극적인 요소들이 다양한 악기가 화음을 쌓는 오페라처럼 기승전결을 이루며 휘몰아친다.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의 침묵도 하나의 음악처럼 느껴진다. ‘언컷 젬스’를 보고 ‘이게 뭐지’ 싶은 혼란스러움을 느꼈다면 감독을 맡은 사프디 형제의 다른 작품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감독의 전작인 영화 ‘굿타임’도 넷플릭스에서 서비스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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