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삭감에 치료 거부도"...희귀질환자들 '의료사각지대' 호소

'건강보험 삭감에 치료 거부도"...희귀질환자들 '의료사각지대' 호소

한국환자단체연합 출범 10년...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도 사각지대 여전

기사승인 2020-10-07 04:01:01
▲'환자의날' 행사에서 희귀질환 환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제공. 

[쿠키뉴스] 전미옥 기자 ="환자들이 아파도 걱정없는 나라, 해외로 치료하러 다닐 필요없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출범 10주년을 맞은 한국환자단체연합회 기념식에서 나온 환자들의 말이다. 

6일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출범 10주년 기념 행사에서 신경내분비종양, 중증 건선을 비롯한 희귀질환 환자들은 의료현장의 사각지대를 지적하고 개선을 촉구하고 나섰다. 병원비 부담과 제도적 문제, 그리고 사회적 차별로 인한 고통도 함께 호소했다. 

낮은 수가 등으로 환자들이 병원 치료를 거부당하는가 하면, 치료비 부담으로 해외 환자에 비해 국내 환자들의 생존율이 현저히 떨어지는 등 의료현장에 개선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있다는 것이다.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환자 및 시민사회 참여를 대거 높이자는 주장도 나왔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신경내분비종양 환자 황원재씨는 "환자들이 아파도 걱정없는 나라, 해외로 치료하러 다닐 필요없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며 열악한 치료 현실을 알렸다. 희귀질환인 신경내분비종양은 신경계와 내분비계 조직이 뭉쳐 발병하는 암으로 고가의 방사성의약품인 루타테라가 유일한 치료제로 꼽힌다. 국내에 도입되지 않은 탓에 환자들이 해외 원정 치료를 받아야 하는 등 문제가 제기되다 최근에서야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고 급여적용 절차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황씨는 "긴급도입의약품이라는 제도를 통해 치료제가 건강보험에 적용이 될 예정이지만 급여기준 대상이 되는 환자는 전체 10분의 1뿐이다.고액의 약값 부담 때문에 여전히 해외로 치료를 나가야 하는 상황이 답답하다"며 급여적용 대상 확대를 피력했다. 

또한 병원에 대한 낮은 수가 등으로 환자들이 의료기회를 잃고있다고도 꼬집었다. 그는 "건강보험에서 루타테라 치료병원의 행위료를 패싱하는 사건이 생기면서 최근 그 어떤 병원에서도 루타테라 치료를 선호하지 않게 됐다. 지방에 있는 환자들은 무조건 서울에 와서 치료를 해야 하고, 그나마 서울에 위치한 4개의 병원에서 조차도 투자 대비 손해를 보는 상황이다 보니 싫어하는 추세"라며 "절대적으로 환자에게 불리한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며 개선을 촉구했다. 

치료 약제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현황이 열악한 문제로 국내 환자들이 해외 환자에 비해 생존율이 확연이 떨어지는 현실도 지적됐다. 원발성 폐동맥 고혈압을 앓고 있는 환자 성민수씨는 "생명과 직결된 치료약제의 선택권과 급여 확대가 필요하다"며 국제적 가이드라인에 맞춘 급여 개선을 요구했다. 

희귀질환인 폐동맥고혈압은 발생기전이 3가지로 나뉘는 것으로 알려진다. 각 기전에 작용하는 약제도 모두 개발되어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국내 급여 기준이 까다롭다는 점이다. 

황씨는 "국제적인 가이드라인은 2가지 약제 또는 3가지 약제를 처음부터 동시에 사용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환자의 상태가 악화되어 치료가 늦어진 상황에서만 3가지 약제를 동시에 사용하는 것을 급여로 인정하고 있다"며 "저와 같이 3가지 약제를 써야 하는 중증 환자인 경우에는 2가지 약제만 급여가 되고 나머지 한 가지 약제는 비급여로 환자가 약값 전액을 부담해야 한다"며 치료비 부담을 호소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나라 폐동맥고혈압 환자의 3년 생존율은 55%에 불과하지만, 이웃나라 일본의 폐동맥고혈압 환자의 3년 생존율은 무려 96%에 이른다고 한다.우리나라의 폐동맥고혈압 환자들도 질환이 더 악화되기 전에 2가지 약제 또는 3가지 약제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도록 보험 기준을 확대해달라"고 강조했다. 

질병을 이유로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 고통받는 환자의 목소리도 나왔다. 중증건선 환자인 오명석 씨는 "건선은 눈에 잘 보이는 외모에 변화를 초래해 자아상이나 자존심, 일상생활에 다양한 장애를 일으킨다. 건선환자들은 우울증이나 불안증, 자살충동 등을 겪는 비율이 일반인에 비해 40%이상 높다"며 "질환으로 인한 고통에 치료에 따른 직간접적인 비용 부담은 환자들을 더더욱 힘겹게 하고 있다. 증상을 완화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지원이 필요하다"고 토로했다. 

이같은 환자들의 지적에 의료계 전문가들도 공감의 뜻을 같이했다. 이상일 울산의대 예방의학과 교수 "질병의 치료비용으로 인한 어려움과 질병으로 경제활동을 충분히 하지 못해 발생하는 경제적 어려움 두 가지가 주를 이룬다. 이같은 환자들의 어려움을 완화하기 위한 제도보완이 필요하다"며 "현재 재난적의료비 제도를 지금보다 확대하고, 중증질환 환자에는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을 보전해주는 상병수당을 고려해봐야 한다. 상병수당의 경우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안에 포함된 상태인데 관련 논의가 더욱 활발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 교수는 "중증건선 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단순히 특정 질환 환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사회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문화 전반에 대한 문제다. 연대를 통해 풀어나가야할 과제라고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건강보험 정책의 최고 의결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 환자 및 시민사회의 참여비율을 높이자는 주장도 나왔다. 건정심은 의료공급자 8명, 시민사회 등 가입자대표 8명, 정부와 학계 등에서 나온 공익대표 8명 등 총 24명으로 구성돼 있다.

김윤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최근 의사 파업 때문에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개편해야 한다는 논의를 정부가 검토 중이다.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는 사전에 약제나 수가 결정을 심의하는 개별 위원회가 있는데 여기에 환자와 시민단체가 대거 참여해서 환자의 절박함을 이해한 상태에서 의사결정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며 "단순히 의학적이거나 경제성을 기반한 의사결정이 아니라 환자의 입장을 반영한 의사결정이 되도록 제도개편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romeok@kukinews.com
전미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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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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