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별세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재계 최고 거물로 촌철살인 같은 발언을 남기며 한국 정치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
이 회장은 1978년부터 후계자 수업을 거쳐 1987년 삼성그룹 회장에 취임해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질 때까지 전두환 전 대통령부터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6명의 대통령을 마주했다.
역대 대통령들은 이 회장을 재계 대표로 각별히 예우했으나 시대에 따라 관계가 틀어지기도 했다.
정치권을 뒤흔든 이 회장의 '정치 4류' 발언은 김영삼(YS) 정부 시절에 나왔다.
1995년 중국 베이징 방문 때 현지 특파원단 간담회에서 삼성자동차 사업과 관련한 기업 규제를 비판하며 "우리나라의 정치력은 4류, 행정력은 3류, 기업능력은 2류"라고 말해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
이 회장의 직설 화법에 청와대는 물론 정치권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고 이듬해 터진 노태우 비자금 사건으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 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YS는 임기 마지막 해인 이듬해(1997년) 이 회장을 사면 복권했다.
DJ정권 당시 재벌 구조조정 과정에서 이 회장의 숙원인 자동차 사업이 좌절되기도 했다.
당시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장성민 전 의원은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이건희 회장은 혁신의 아이콘이자 글로벌스탠더드의 상징이다. 지금 삼성갤럭시와 반도체가 글로벌스탠더드의 상징이자 혁신의 아이콘이지 않는가. 미국 애플에 스티브 잡스가 있었다면 한국 삼성에 이건희회장이 있었다. 그는 97년 IMF 경제위기 시부터 5년간 59개의 계열사를 40개로 스스로 구조조정해낸 대단한 혁신가로 기억된다. 그는 한국경제의 힘이었고, 길이었으며 꿈이자 미래였다.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우리는 그를 더욱 그리워할 것이다"라고 회고했다.
이 회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도 여러 번 만났다. 노무현 정부 초반만 해도 반(反) 기업적 정책이 추진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지만 예상 밖의 우호적 관계를 이어갔다.
2003년 4월 노 전 대통령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던 이 회장을 만나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지원을 약속했고 밀접한 관계가 정권 내내 이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진대제 삼성전자 사장을 정보통신부 장관에 임명했고, 이 회장 처남인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을 주미 대사로 발탁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1년 선배인 이학수 당시 삼성그룹 구조조정 본부장의 역할이 부각된 시절이었다.
이 회장은 2011년 MB정부 경제 성적표에 대해 "흡족하다기보다는 낙제는 아니라고 본다"고 언급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13년 5월 방미 때 이 회장과 동행했다. 그러나 이 회장이 2014년 5월 심근경색으로 쓰러지면서 교류가 이어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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