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전미옥 기자 ="한번 의사 면허를 따면, 그 면허는 평생 간다. 이제 조민이 환자를 보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
서민 단국대 교수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이다. 가짜 스펙으로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한 의혹을 받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조민씨의 의사 국가시험 합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의료계에서 나온다. 의사들조차 '막을 방법 없는' 의사면허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 가운데 최근 의료계가 의사면허관리를 총괄하는 '의사면허관리원' 설립을 추진하고 나섰다. 자격미달, 비윤리 의료행위에도 불가침 영역이었던 의사면허의 공고함에 제동을 걸 수 있을지 주목된다.
◇환자 추행, 살인에도 의사는 평생 면허?
그동안 '평생가는 의사면허'는 의사와 관련한 비위 논란이 터질 때마다 도마 위에 올랐다. 과거 주사기를 재사용해 C형 간염 사태를 야기한 다나의원 사건, 환자 성추행 사건, 그리고 대리수술 논란 등 의사면허에 대한 지적도 꾸준히 이어졌다.
현행 의료법상 ▲진료 중 성범죄 ▲ 처방전을 따르지 않은 마약 등의 투약 ▲무허가 및 사용기한이 지난 의약품 사용▲그 밖의 비도덕적 진료 행위 등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대해 최대 1년까지 자격정지가 가능하다. 또 정신질환자, 면허대여 금지 의무 위반, 자격정지 3회 이상 처분 등에는 면허 취소를 할 수 있도록 명시돼 있다.
그러나 면허 정지 처분까지 과정이 쉽지 않고, 면허 취소 사례는 극히 드물다. 경찰청의 특정강력범죄 검거현황(2010~2018년) 자료에 따르면, 9년간 총 901명의 의사가 강간 및 강제추행, 살인 등 강력범죄로 검거된 것으로 나타났지만, 최근 5년(2014~2019년) 동안 보건복지부가 살인과 성범죄 의료인에 면허를 취소한 사례는 0건 이었다. 특정 강력범죄 의료인에 대한 면허취소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이 기간 의사 4명이 비도덕적 진료(성범죄 명시)로 자격정지 1개월 수준의 행정처분을 받는데 그쳤다.
뿐만 아니라 의사 면허가 취소되더라도 1~3년 안에 재교부 신청을 하면 대부분 면허를 회복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9년까지 10년간 면허 재교부 신청한 의사 109명 중 약 97%인 106명이 면허를 회복했다. 이같은 솜방망이 처벌 및 부실한 관리체계에 의사들조차 '의사 권위가 떨어진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는 실정이다.
◇ '자격미달 의사, 의사가 평가'...다른 나라는?
미국, 영국, 캐나다 등의 경우 의사면허를 총괄하는 기구를 운영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전문가를 자율규제하는 기구에서 면허교부 뿐만 아니라 면허 등록 취소, 정지, 만료 등의 징계권과 문제 사안에 대한 조사 권한도 갖는 식이다.
의료정책연구소의 '해외 주요국 의사면허 취득 및 유지 조건에 대한 동향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주별 면허관리위원회SMP, State of Medical Board)에서 정부관계자, 의료전문가, 법률전문가, 위기관리전문가들이 위원으로 참여해 보건의료인의 면허를 관리한다. 상시적으로 의료인의 근무지와 전공, 징계내역, 면허 유효성 등을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고 있고, SMP면허 없이는 의사로서 진료할 수 없어 등 권한과 영향력이 크다.
영국은 의사들에 의한 면허관리기구인 GMC(The Genaral Council)가 면허 발급, 관리 권한을 가지고 있다. 5년 단위의 리밸리데이션제도(license revqildation)를 통해 의사 직무수행 적합성을 평가하고, 평가기준에 못 미칠 경우 면허가 철회된다.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는 1년 단위로 라이센스 리뉴얼 과정을 거치고, 70세 이상인 의사, 병원과 협력활동이 없는 의사, 의사사회에서 격리된 의사, 5년간 3회 이상의 문제제기가 접수된 의사 등을 대상으로 의사면허 지속 여부 등을 결정하는 '동료평가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같은 전문가 단체의 자율규제의 장점은 전문성을 기반으로 한 평가와 견제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정부의 감독 및 집행 비용을 줄일 수 있고, 규제 대상의 순응도가 비교적 높은 점도 장점이다. 다만,전문가들로 구성된 자율규제단체가 중립성을 상실할 수 있다는 점이 한계로 꼽힌다.
◇'가짜스펙' 조민,'성폭력'의대생에 제동걸 수 있나
만약 국내에서 의사자율평가를 기반으로 한 면허관리기구가 설립될 경우 어느 정도의 권한을 가져야 할지도 주목된다. 대한의사협회는 최근 (가칭)대한의사면허관리원 설립 추진을 공식화했다. 의료인력 수급 방향성을 제시하고, 일부 의사의 비윤리적 행위를 규제하는 역할을 하는 독립적인 관리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이같은 면허관리기구가 설립되면, 가짜 스펙으로 의대에 입학하거나 의대생 신분으로 성폭행 등 범죄행위를 한 자의 의사면허 취득에 제동을 걸 수 있을까.
실제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지원 시 허위 자료 제출 등 부정입학 의혹을 받는 조민씨가 최근 의사 국가시험에 합격한 것이 알려지면서, 충분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의사가 환자 진료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 지난 2011년에 발생한 '고려대 의대생 집단 성추행 사건' 가해자가 다시 수능을 치러 2014년 성균관의대에 입학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안덕선 대한의료정책연구소 소장은 "선진국 경우 의사 면허 취득과정의 문제가 있는 사례에도 면허관리기구가 개입할 권한을 갖고있다. 이는 면허관리기구의 역할이기도 하다"며 "예컨대 의과대 학생 때 저지른 사건 때문에 의사 면허를 받지 못하기도 한다. 의대생도 면허관리 기구에 등록돼 예비의사에 대한 규칙을 적용받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궁극적으로 우리도 그러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국내에서 의사면허관리원이 권한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법개정과 논의가 필요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며 "설립부터 완전한 형태를 갖는 것은 어렵다. 기구가 출범한 이후에 하나씩 개선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하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조씨의 경우) 국가시험에 합격했지만 아직 의사면허를 취득한 것은 아니다. 면허관리원이 비도덕적 의료위 외에 의사 자격 취득 과정의 문제까지 접근할 수 있을지는 고민해봐야 하는 문제"라며 "현재 추진하고 있는 면허관리원이 의사집단의 자율규제 근거를 확보하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실질 권한을 갖게되기까지는 앞으로 갈 길이 멀다"고 했다.
유태욱 대한가정의학과의사회 회장은 "재판 중에 있는 특정인의 진료행위로 국민 건강의 위해가 예상된다면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해당 의사의 진료 등 직무 행위를 보류하도록 면허관리국이 권한을 행사 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의대생 신분일지라도 중범죄 등 의사를 해서는 안 되는 성향인 것으로 판단된다면 의대 재입학 등을 막는 조치를 행할 권한도 확보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다만 그는 독립적인 면허관리원이 아닌 의사협회 내 면허관리국 형태로 운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 회장은 "의사협회가 아닌 별도의 기구가 면허관리 역할을 담당하게 되면 의사뿐만 아니라 다른 직역의 인사들이 참여하면서 '의사에 의한 자율규제'라는 취지가 퇴색될 수 있다"며 "복지부 또한 전향적으로 면허관리 권한을 의사단체에 이양해 면허가 제대로 관리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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