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사에 KBS2 '달이 뜨는 강', tvN '빈센조', tvN '마우스'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 ‘달이 뜨는 강’ 고원표
말을 타고 활을 쏘며 전투를 벌이던 삼국시대에도 왕실에선 온갖 암투가 벌어졌다. 현실에선 학폭 논란으로 주연 배우가 교체되는 사건이 있었지만, 10회까지 방송된 KBS2 ‘달이 뜨는 강’ 주인공들에겐 매회가 논란이고 전쟁이다.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달이 뜨는 강’을 흥미롭게 만드는 건 온달과 평강이 아니다. 드라마는 고원표(이해영)의 술수와 전략으로 핵심 사건이 만들어지고 앞으로 나아간다.
평강의 어머니인 연왕후를 없애려고 평원왕(김법래)을 속이고, 평강이 활약하는 걸 막기 위해 결혼을 부추기는 등 고원표는 인간의 심리를 조종하는 책사형 악인이다. 자신의 가문에서 태왕을 배출하려는 욕망이 뚜렷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내는 노력은 인정하지만, 개인의 욕심을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너무 많이 죽이고 괴롭힌다. 시종일관 냉혹하고 무자비하게 왕실을 쥐고 흔드는 그의 선택에 휘둘리는 주인공들의 고생담을 보고 있으면 분노가 절로 치민다. 한국의 현실 정치에도 고원표 같은 인물이 숨어있지 않길 바랄 뿐이다.
△ ‘마우스’ 한서준
휴대전화도 없어 공중전화를 쓰던 시대, 머리가 없는 시체가 연이어 발견된다. 마치 사냥하듯 인간을 무작위로 살해해 머리를 잘라내는 충격적인 사건의 이름은 ‘헤드헌터 연쇄살인사건’. 상대에 공감하거나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싸이코패스 유전자를 타고났다는 설정을 보여주기 위해 tvN ‘마우스’는 1~2회를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으로 방송했다. 그 중심에 뇌신경외과 천재 의사이자 싸이코패스인 한서준(안재욱)이 있다.
사랑하던 연인을 죽이고 몇 년 동안 슬픔에 빠진 연기를 하고, 곧 태어날 자신의 아이를 끔찍이 아끼면서도 밥 먹듯이 살인을 저지르는 등 한서준은 한국 드라마에서 보기 힘든 역대급 싸이코패스 살인마로 그려진다. 살인을 이어가는 특별한 이유나 죄책감은 다뤄지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를 신성한 존재로 여기고 자신의 유전자를 잇는 것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인간 같아서 더 화가 난다. 여기에 그의 아들도 신개념 싸이코패스로 활약하고 있어 시청자들의 분노는 두 배가 된다. 드라마가 현실이 아니라 다행이지만, 현실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섬뜩하다.
△ ‘빈센조’ 장준우
누군가를 총으로 암살하는 수준이 아니다. 상대가 아끼던 건물과 농작물을 모조리 불태우는 정돈 돼야 빈센조 까사노(송중기)는 만족한다. 복수와 협박에 익숙하고 한국에 숨겨둔 금괴를 노리는 이탈리아 마피아 변호사 출신 빈센조는 다른 드라마였으면 충분히 악인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도 남을 인물이다. 안타깝게도 tvN ‘빈센조’에선, 한국에 돌아와선 사정이 달라진다. 빈센조도 치를 떠는 바벨그룹 회장 장준우(옥택연)의 존재 때문이다.
이탈리아에서 악명을 떨친 빈센조도 한국에서 겪은 바벨그룹의 악행 앞에선 착한 시민으로 돌변한다.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 멀쩡한 사람을 죽이고 유서를 위조하는 건 심각하게 다뤄지지도 않는다. 회사의 이익을 위해 독성물질로 여러 연구원을 죽이고 은폐해 제품 출시까지 노린다. 그들이 정치권과 검찰, 언론까지 통제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부터 단순히 드라마 속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는다. 시청자들이 현실에서 느끼던 분노는 드라마로 쉽게 전이돼 불타오른다. 장준우는 그 모든 걸 뒤에서 조종하며 정작 자신은 ‘훈남’ 인턴 변호사 연기를 하며 법을 악용하기 위해 공부를 한다. 악은 잔혹함을 드러내기 위해 점점 치밀하게, 그리고 열심히 준비한다. 악인을 악인으로 때려잡는 건 드라마라 가능한 허구지만, 현실보다 낫다는 점에서 현실을 잊고 싶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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