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환자 치료비, 병원이 내줄거면 다 내라?...재난의료비 왜 이러나

어려운 환자 치료비, 병원이 내줄거면 다 내라?...재난의료비 왜 이러나

민간단체가 지원하면 재난적의료비 깎이는 구조...민간지원 위축도

기사승인 2021-03-24 04:56:01
한 대학병원 의료진과 환자들이 이동하고 있다. 박효상 기자


[쿠키뉴스] 전미옥 기자 =#심장판막질환으로 쓰러져 서울 소재 A대학병원에서 응급 시술을 받은 83세 의료급여 환자 ㄱ씨와 이곳 의료 관계자들은 최근 치료비 문제로 속을 끓였다. 기초수급자로 치매 가족까지 돌보는 ㄱ씨에게 약 3000만원의 본인부담진료비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재난적의료비 제도로 치료비 절반을 지원받더라도 부담이 여전히 높아 민간단체 후원금을 알아봤지만 착잡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23일 의료현장에서는 메디컬푸어를 막기 위한 재난적의료비 지원제도가 반쪽짜리에 그친다는 지적이 나왔다. 어려운 환자의 진료비 일부를 병원 등 민간 사회복지단체가 대신 지불하겠다고 나설 경우 재난적의료비 지원액이 대폭 깎여 치료부담 완화가 아닌 치료 포기 사례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재난적의료비는 지불능력을 벗어나는 의료비 지출이 발생한 경우 정부가 연간 3000만원 한도로 본인 부담 진료비의 50%를 지원하는 제도다. 과도한 병원비로 인한 가계파탄, 일명 메디컬 푸어를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문제는 환자가 치료비 지불을 위해 민간의 기부금을 받을 경우 재난적의료비 지원금액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다른 기부금을 제외한 본인부담 진료비의 절반까지만 지원한다는 재난적의료비 지원 원칙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재난적의료비 혜택 금액 만큼의 현금을 마련하기 어려운 환자는 민간단체가 돕겠다고 나서도 치료 자체를 망설일 수밖에 없게 된다. 특히 갑작스럽게 고액 진료비가 발생한 저소득층 응급환자들이 비용 부담 문제로 발을 동동 구르는 사례가 적지 않다. 

만약 앞선 사례에서 ㄱ씨가 본인부담진료비 약 3000만원 가운데 민간단체 등에서 1500만원을 후원받을 경우 재난적의료비 지급액이 최대 1500만원에서 750만원으로 줄어들게 된다. 적어도 환자가 재난적의료비 지원금액만큼인 750만원은 지불할 수 있어야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A대학병원 사회사업팀 관계자는 “재난의료비는 본인부담진료비의 50%까지 지원되지만, 민간의 기부를 받는 경우 기부 금액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에서 50%로 산정된다. 환자가 어느 정도는 치료비를 감당할 수 있어야만 지원이 가능한 구조”라며 “하지만 기초생활수급자 등 진료비를 마련하거나 당장 대출을 받기도 어려운 환자들은 사실상 재난의료비 신청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ㄱ씨의 경우 결국 재난적의료비 신청을 포기하고, 원내 기부금에 다른 민간 기부 프로그램 등을 끌어와 치료비 대부분을 충당한 것으로 알려진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병원 등 민간사회복지단체의 입장에서는 환자를 돕고 싶어도 돕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대개 환자당 지원할 수 있는 금액이 한정돼 있는데, ㄱ씨와 같은 어려운 환자는 치료비 일부 지원만으로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아서다. 

또 다른 서울 B대학병원의 사회복지사는 “재난적의료비 제도가 기본적으로 좋은 제도이지만, 일부 민간사회복지단체의 지원을 위축시키는 큰 부작용이 있다. 민간단체가 지원하면 재난적의료비 수급액이 줄어든다. 민간이 100을 지원해도 환자에게는 50의 혜택만 가게 되니 이를 연계하는 것이 사실상 큰 의미가 없어진다"고 꼬집었다. 

그는 “타비 시술, 간이식 등 고액의 치료비가 발생하는 환자에서 이런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기부 예산을 활용하고 책임지는 입장에서 어려운 환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없어 안타까운 경우가 많다”며 “재난적의료비 절반, 민간단체 지원금 절반으로 치료비 충당할 수 있도록 개선한다면 적어도 치료혜택을 받는 환자가 지금의 2배 이상 늘어날 것”이라고 피력했다. 

서울 C대학병원 관계자도 "후원단체 입장에서는 환자당 지원가능한 금액이 한정돼있어 한 환자에게 큰 금액을 한번에 지원하는 것이 쉽지 않다. 재난적의료비를 받고 나머지 금액을 후원금으로 지원할 수 있다면 환자 부담도 줄고, 후원금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이와 관련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재난적의료비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른 사안이라는 입장이다. 해당 법안에 다른 지원 또는 지급된 의료비를 제외하고 남은 의료비에 대해 지원하도록 하는 내용이 재난적의료비 지원원칙으로 명시돼 있어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재난적의료비는 어디에서도 지원을 못 받는 사람을 돕는 마지노선이라는 개념에서 나온 제도다. 어디선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어느 정도 여력이 있다고 보고, 그보다 못한 사람을 돕는다는 취지로 설계했기 때문에 민간 지원 등에 제한을 뒀을 것”이라며 "공단 입장에서는 현행 법 테두리 안에서 운영할 수밖에 없다. 법이 바뀌지 않는 한 변동이 불가하다”고 말했다. 

romeok@kukinews.com
전미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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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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