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태환 리포트] 의사의 신념      

[안태환 리포트] 의사의 신념      

글·안태환 프레쉬이비인후과의원 대표원장    

기사승인 2021-05-26 10:18:01
몹쓸 감염병으로 먹고살기 힘든 시대를 건너가고 있다. 의사도 그 대열에서 예외는 아니다. ‘그래도 너희들은 형편이 낫지 않느냐’며 욕먹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현실은 엄혹하다. 지근거리에는 휴업하는 개인병원이 늘고 있으며 지방의 명망 있는 중소병원들은 법정관리에 돌입했다는 암울한 소식이 들려온다. 지방의사회의 설문 조사 결과는 팬데믹 이후 매출이 절반 정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어느 병원이든 확진자가 다녀간 날은 방역을 위해 진료를 보긴 힘들다. 함께 동행하는 직원들의 고용유지를 위해 불면의 밤을 보내는 의사 지인들도 부지기수이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지만 초유의 재난적 질병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우리 사회는 태도는 의료시스템의 붕괴를 막고 현재와 같은 의료 인프라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위한 최소한의 정부 지원과 대책은 요원하다. 이럴 땐 의사도 한없이 힘들다.

우리 사회 의료보장은 세계적이다.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저렴한 의료 수가로 그 어느 나라보다 월등한 의료서비스를 제공받는다. 의료 수가는 의료 인프라 유지의 생명 줄이다. 의료 서비스 재생산의 동력이다. 자유시장경제에 있어 수요는 가격에 의하여 결정된다. 그러나 의료 수가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환자의 수요는 의료 남용을 필연적으로 불러온다. 고백하건대 현행과 같은 저수가 토대 하에 의료소비자의 모럴 해저드 편승 유혹을 이겨낼 의사는 많지 않을 것이다. 국민건강보험 재정 고갈의 민낯이다. 제아무리 힘겨워도 인술을 펼치는 의사들의 신념은 너덜너덜해진다. 모진 욕은 다 먹는다.

근대화 과정, 건강보험제도 도입 초기에 국민 부담을 고려한 임금의 3% 수준으로 책정된 보험료는 저수가로 귀결되었다. 조금씩 인상됐지만 여전히 건보 수가가 의료 원가를 위로하지 못한다는 것은 정부도 익히 인정하는 사실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비도적적 과잉진료에 의료계가 노출된다. 공공의료에 헌신하라는 맹목적 요구는 단아했던 신념을 와해시킨다.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의 진정성이 배제된 채 일상에 곰팡이처럼 침습한 이윤만을 좇는다면 어찌 인술이라 할 수 있겠는가. 저마다의 사정이야 있겠지만 이럴 땐 의사도 통렬한 성찰이 필요하다. 의사는 나쁜 밥을 먹어서는 안 된다. 

누구나가 신념의 토대 위에 품격 있는 생존을 꿈꾸지만 그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작금의 사회 양극화 구도 속에서 의사와 환자 간의 정서적 교환은 시장 교환이라는 공허한 관계로 대체되어 가고 있다. 의사로서 살아가며 진심으로 읽힐 수 있는 순간들이 환자들에게 포착되지 않는다면 그건 의사들도 생존에 지쳐간다고 생각해 주었으면 참 좋겠다. 기득권을 가진 이들의 생떼라고 비판받을지라도 한국 사회 의료 공동체에 대한 호흡은 길어야 하고 환자와의 공감을 위해 현재의 보험 수가는 달라져야 한다. 그러나 온전히 그 부담을 국민들에게 지울 순 없는 노릇이다. 정부의 역할이다. 증세 없는 복지는 없다지만 보험료 인상으로 해결될 성질이 아닌 것은 정부나 의료계 모두 알고 있다. 

고된 세상살이에서 반듯한 신념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가기란 여간해서 쉽지 않다. 우리 대부분은 신념과 타협 사이에서 매 순간 갈등하며, 현실과 이상의 중간지대에서 존재를 찾아 헤맨다. 일부 의사들의 신념을 버린 변절은 비정의가 자신에게 더 많은 이익과 혜택을 가져다준다는 경험적 체득 때문이다. 이럴 땐 의사가 욕을 먹는다. 응당 그런 욕은 먹어도 싸다.

소외되고 아픈 이들을 배려하는 사회는 감성적 구호가 아닌 정책과 입법의 틀 속에서 생산된다. 그런 사회가 제도로서 포용하는 사회이다. 그래야 지속가능하다. 우리의 오늘을 보라. 이익의 혈투는 다반사이며 시시비비를 채 가리기도 전에 집단이기주의라는 획일적 구분으로 생존은 서늘하다. 어쩌면 시기가 적절치 못한 의사들의 단체행동이 의료 서비스 행위자들에 대한 온당한 처우개선과 객관적 현실 판단을 가로막고 서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책임은 의정 모두에게 있다. 아, 양비론은 아니다. 당사자로서 피해 갈 생각은 없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소중한 직업이 삶의 전부라고 믿고 있는 의사들이 속절없는 경영난에 무너진다면 이제는 정부도 그 속사정을 들여다봐야 되지 않겠는가. 신념을 지키면 손해 보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생존할 수 있다는 상식적 사회가 건강사회 아니겠는가. 인간은 신념이 무너지면 존재는 유실된다. 우리 사회 공동체에 좋은 의사가 되겠다던 푸른 결기를 놓지 않게 해야 한다. 

인술의 신념을 가진 의사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목전에 다다른 의정간의 요양급여 수가 협상을 다시금 기대해본다. 이번만큼은 부디 의사들의 신념과 생존을 분리하지 마시라. 환자도 의사도 모두가 고단하다.    
이영수 기자
juny@kukinews.com
이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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