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지난 2005년 초여름에 처음으로 세상과 마주했다. 네가 부화실의 온기를 마다하고 껍질을 깨고 나왔을 때, 처음으로 본 것이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언젠가 조류에게는 각인 효과라는 게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알을 깨고 나와 처음으로 본 무언가를 영원히 잊을 수 없다고 들었다. 네가 처음으로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다른 형제 병아리들의 얼굴이었을까. 아니면 피곤한 얼굴로 달걀 껍데기를 치우는 노동자의 얼굴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너는 정말로 운 좋은 병아리였다. 병아리 감별사의 실수가 아니었다면, 너는 암컷 닭으로서 알을 낳으며 살게 되었을 것이다. 그는 건조한 표정으로 너를 대충 뒤집어 확인하고 푸른 바구니에 던져 넣었다. 깊은 플라스틱 바구니는 수컷 병아리로 가득 차 있었다. 너는 다른 병아리의 머리를 짚고 일어나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내려 애썼을 것이다. 그 위로 다른 병아리들이 떨어져 너 역시 곧 수많은 삐악거림에 깔리게 되었다. 너는 노란 덩어리들의 틈새를 뚫고 새어 나온, 맨 아래층 병아리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너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그렇게 분류된 병아리들은 분쇄기로 향하는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이동했다. 어째서인지 네가 있던 바구니는 운 좋게 공장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너는 어두운 트럭에 실려 한참을 이동했다. 삐악거림으로 가득 찬 트럭은 몇 시간이 지나서야 멈췄다. 문이 열리고 담배 냄새가 밴 손이 너와 형제들을 한 움큼 집어 들어 신문지가 깔린 종이상자에 던져 넣었다. 그제야 너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기적적으로 세상과 마주할 수 있었다.
너를 만난 그해 여름, 지방의 한 초등학교 앞이었다. 안색이 초췌한 늙은 남자가 병아리 오백원, 하고 유성펜으로 서투르게 쓰인 상자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너는 상자의 구석에서 떨고 있었다. 누군가가 너를 가리키며 “쟤 불쌍해, 불쌍해, 배고픈가 봐”라고 말한 것을 기억한다. 나는 늙은 남자의 손에 500원을 쥐여주고 너를 데리고 왔다. 우리 가족은 너를 누렁이라고 불렀고 네 새로운 집은 베란다에 놓인 종이상자였다. 너는 정말로 왕성히 먹고 쌌다. 우리는 때때로 몰래 밥을 나눠 먹었고 잠자리에 같이 들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 너에게 꼬리 깃털이 생기기 시작할 즈음, 너는 펄쩍 뛰어 상자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되었고 집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점점 닭의 모습을 갖췄다. 그건 우리가 기대했던 게 아니었다. 우리는 아파트라는 공간에서 함께 살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어떤 죄의식도 없이 너를 시골의 친척 집으로 보내기로 했다. 그게 너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너는 사라졌다. 그 이후로 너의 소식을 들은 기억은 없다.
그로부터 16년이 지났다. 고백건대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많은 닭을 먹었다. 닭은 가장 저렴한 단백질이었기에 나는 닭가슴살을 잔뜩 삶아 냉동실에 보관해 놓고 하나씩 꺼내 먹기도 했다. 내가 너를 기억해 낸 것은 정육점에서 토종닭을 샀던 비교적 최근의 일이었다. 나는 무딘 식칼로 닭을 해체했다. 닭은 쉽게 토막이 나지 않아서 관절을 부러트려야만 했다. 차가운 살 너머로 뼈가 부러지는 감각이 생생했다. 뼈가 부러지는 감각과 함께 나는 너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네가 잘 지내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그 순간 내 앞에는 고기가 아닌 닭의 사체가 놓여 있었다.
너는 아마도 알을 낳는 닭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닭 농장으로 다시 돌아갔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너는 잡아먹혔을 수도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나의 상상일 뿐이다. 온전히 너를 책임지지 못한 나는 너를 아주 오래 기억하고 또 생각할 것이다. 너를 탐하는 욕망을 피해 갈 필요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본다. 그곳에서 너는 행복할까. 닭은 최대 30년을 살 수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난 네가 아직도 어딘가에서 살아 있을 거라 믿고 싶다. 푸른 들판을 마음껏 돌아다니며 땅을 파헤치는 너의 모습을 생각한다. 때로는 날개를 펼쳐 짧은 거리를 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퍼덕거리며 뛰어다니다가 내키면 잠자리에 들 것이다. 나는 그런 세상을 바란다. 그런 세상이 언젠가 오게 된다면, 한때 내 친구였던 너의 흔적이 어딘가에 남아 있기를 바란다.
조수근 객원기자 sidekickroo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