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라면 1990년생부터 국민연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어두운 전망이 나온다. 저출산·고령화가 심화하면서 국민연금 기금 고갈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윤석열 정부가 팔을 걷었다. 기획재정부는 연금개혁을 전담하는 부서를 이달 중 신설하고 개혁에 본격 시동을 건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구성돼 정치권도 논의에 나섰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실은 9일 국회에서 민·당·정 토론회를 열고 청년세대를 위한 연금개혁 방안을 논의했다.
학계 “1명이 5명 부양해야 할 수도… 강력한 연금개혁 필요”
전문가들은 연금개혁이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았다. 현행 연금제도로는 미래세대 부담이 과중하다는 분석이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현행 연금제도인 ‘보험료율 9%, 소득대체율 40%’ 체제가 유지되면 청년 1명이 5명을 부양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2021년 출생률이 0.81에 이른다. 이는 26만명의 미래세대가 70~100만명을 부양해야 한다는 의미다. 강력한 연금제도 개혁이 필요한 이유”라며 “연금개혁을 계속 미루면 공멸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연금개혁이 ‘개악’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글로벌 연금개혁 추세에 부합 여부 △세대 간 형평성 확보 △획기적인 제도 지속가능성 확보 등과 같은 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연구위원은 무엇보다 객관적 사실에 입각한 논의를 통해 연금개혁 방향을 정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휘둘려선 안 된다는 조언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기초연금 재정추계를 실시하고 국민연금 미적립 부채, 누적적자를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재정추계기간을 100년까지 연장하고, 재정추계 주기를 현행 5년에서 3년 이내로 단축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의무 납입기간을 현행 만 59세에서 64세로 연장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보험료율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우리나라의 국민연금 가입자가 낸 것과 받는 것의 격차는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그 차이가 미래세대의 부담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라며 “국민연금 재정안정화 조치는 지금 꼭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현재 보험료율 9%는 무척 낮다. 보험료율을 인상해야 하는데, 소득대체율도 함께 올려버리면 현행 연금제도의 수지 불균형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것”이라며 “이해관계의 조정이 어렵겠지만 보험료율 인상이 정공법이라 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역시 “연금개혁이 불가피하다. 그리고 개혁의 방향은 재정안정화 쪽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베이비부머들이 은퇴할 때 되면 미래세대가 부양하기 굉장히 힘든 상황이다. 보험료를 더 내거나 받을 연금을 줄여가는 방법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기초연금을 강화해 국민연금의 소득재분배 기능을 없애자는 의견도 냈다. 양 교수는 “기초연금이 없을 때 가난한 분들에게 국민연금액을 높여주기 위해 소득재분배 기능이 있었던 것”이라며 “지금은 기초연금이 저소득층을 타겟팅하기 때문에 소득재분배 기능이 있을 필요가 없다. 국민연금 내에 소득 재분배 기능이 있는 나라가 사실상 한국 밖에 없다”고 밝혔다.
국회 “폭탄 돌리기 반성… 국민적 합의 도출 위해 노력”
여당은 우선 연금개혁을 치일피일 미룬 것에 대해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그러면서 연금개혁이 조속히 단행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안 의원은 “우리 연금제도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국민연금의 경우 1990년생이 평생 납입해도 65세가 되는 2055년에는 국가에서 전혀 지급할 돈이 없는 상황”이라며 “연금개혁은 필수다. 대한민국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는 반드시 개혁해야 한다는 것에 모든 사람들이 뜻을 같이 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연금개혁을 어떤 방법으로 할 건지에 대해선 국민적인 합의 기구를 만드는 일을 정부 여당이 주도적으로 해야 한다. 또 백지에서 논의하기 보다는 정부에서 만든 초안을 가지고 논의장을 만드는 것이 정부여당 역할”이라고 말했다.
국회 연금개혁특위 위원인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정부나 지금 정치인들은 폭탄 돌리기를 하며 마음속으로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기대하는 비겁한 입장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저출산·고령화 현상은 곧 국민연금 보험료를 납부할 사람은 줄고, 보험료를 수령할 사람은 많아짐을 의미한다. 우리 사회는 전 세계 유래 없는 이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김 의원은 연금개혁 방향에 대해 미래 세대의 과중한 부담을 낮추고 세대 간 공정한 부담을 추구하기 위해선 ‘보험료 추가 부담’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국가지급보장 의무 법제화도 필요하다고 했다. 또 김 의원은 연금개혁이 윤 정부 국정과제인 만큼 대국민 토론회, 국민투표 실시 등을 활용해 국민 합의를 이끌어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정부 “연금개혁 적기… 근거에 기반한 방안 마련할 것”
정부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는 개혁안을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제1차관은 “연금개혁 필요성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면서 “정부는 1988년 국민연금제도가 도입된 이후 지속적으로 국민연금 제도 개선을 추진해 왔고 2014년부터는 기초연금도 도입한 바 있다. 그러나 여전히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정부는 연금제도에 대한 신뢰성을 제고할 수 있도록 개혁 방안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조 차관은 “정부의 연금 개혁 방향은 우선 연금 제도의 신뢰성을 높이는 것”이라며 “내용적으로는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 공정성을 제고하며 노후소득 보장을 강화하는 것이 목표다. 절차적으로는 국회 등을 통해서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는 우선 재정계산을 통해 국민연금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조정 등 모수 개혁을 추진하고 국회 연금개혁특위를 통해 지역 연금 퇴직연금 등을 포함한 연금의 다층체계 내실화 방안을 논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조 차관은 “연금 개혁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크고 국회 연금개혁특위가 설치된 만큼 지금이 연금개혁의 적기”라며 “정부도 우선 연금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객관적 근거에 기반한 개혁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