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의대생의 불법촬영 사실이 알려지며 의료법을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행 의료법에는 성범죄를 저질러도 의사 면허 취득이 가능한 탓이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서부지법 형사6단독 공성봉 부장판사는 지난 12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촬영·반포)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연세대 의대생 A씨(21)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 6월17일, 20일, 21일과 7월4일 등 4차례에 걸쳐 연세대 의대 여자 화장실에 숨어서 자신의 휴대전화로 옆 칸 여성을 총 32회 불법촬영한 혐의를 받는다.
아주대 의대에도 비슷한 사건이 벌어졌다. KBS 보도에 따르면 아주대 의대생 B씨는 탈의실 안에 있는 개방형 수납장에 스마트폰 모양의 카메라를 세워두는 방법으로 다른 학생들을 불법 촬영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이 카메라 촬영 내용을 분석한 결과 여학생을 포함해 재학생 여럿이 상의를 갈아입는 모습 등 의대생 6명의 모습이 찍혀있었다.
게다가 B씨는 이달 초까지 2달 넘게 피해 학생들과 같은 공간에서 수업을 들었다. 3주간 ‘산부인과’ 실습에도 참여해 수술 참관까지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일 10여명의 여성 환자들과 근거리에서 접촉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러나 해당 의대생들은 학교에서 퇴학 처분을 받더라도 의사 면허 취득이 가능하다. 현행법에선 성범죄 전과자여도 의대 졸업자라면 의사고시를 치를 수 있다. 다른 의대에 입학해 졸업하면 응시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11년 동급생을 집단 성추행하고 불법촬영해 징역형을 선고받은 고려대 의대생이 복역 이후 성균관대 의대를 재입학해 의사면허를 취득했다.
성범죄를 저지른 의사에 대한 제재도 느슨하다. 현행 의료법에선 성범죄를 의사면허 결격사유에 포함하지 않는다. 의료법 제8조는 △정신질환자 △마약·대마·향정신성의약품 중독자 △피성년후견인·피한정후견인 △의료 관련 법령을 위반해 금고 이상 형을 처벌을 받은 자만 의료인이 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의료법상 성범죄 혐의를 받은 의료인의 면허는 취소할 수 없고 자격정지는 가능하다. 복지부는 2018년부터 처벌을 강화하기도 했다. 당초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자격정지 1개월이었던 것을 유형을 세분화해 12개월로 확대했다.
다만 진료 중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조 제1항 제3호를 위반한 경우에만 12개월 자격정지에 해당한다. 이는 강간, 강제추행, 준강간, 업무상 위력 간음, 미성년자 간음 추행 등으로 제한돼 있어 불법촬영 등 다른 유형의 성범죄는 적용하지 못한다.
이러한 탓에 성범죄를 저지르고도 버젓이 진료행위를 이어나가는 의사들이 대부분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총 717명의 의사가 성범죄 혐의로 검거됐다. 이 중 면허 자격이 정지된 의사는 64명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성범죄가 명시된 처분 사유는 5건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자격정지 1개월 수준이었다.
의료법을 개정해 의료인의 면허 결격 사유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 의료인 면허 결격 사유 확대 내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2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하고 1년8개월이 넘도록 계류 중이다.
남인순 의원은 “의료인에 대해서도 변호사·공인회계사·법무사 등 다른 전문 직종과 같이 범죄에 구분 없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 받은 경우 면허를 취소하도록 자격요건을 강화해, 안전한 의료환경을 조성하고 의료인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난해 2월 보건복지위를 통과했으나, 법사위에서 계류 중인 의료법 개정안을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보건복지부도 의료법 개정안 통과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고영인 민주당 의원의 서면 질의에 “여야 합의를 존중해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심의를 기대하고 있다”면서 “보건복지부도 개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답변했다.
의료계도 성범죄나 강력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 필요성은 절감하고 있다. 다만 현재 법사위에 계류 중인 의료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했다. 박수현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20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성범죄나 강력범죄 부분은 강력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현재 법사위 심의 중인 의료법 개정안은 교통사고 등 업무 이외의 범죄도 면허정지를 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의사들은 새벽에 갑자기 응급수술 전화를 받고 나가는 경우가 있어 교통사고도 포함하면 의사들이 면허정지를 당하는 일이 생길 수 있어 우려된다”고 밝혔다.
법사위 심의 과정에서 반려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정혜승 의료법 전문 변호사는 “직업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점에서 위헌 결정이 날 가능성이 높다”면서 “무조건 자격을 취소하기 보단 영상의학과 등 환자를 만나지 않는 의사도 있기 때문에 세분화해서 대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마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