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의 개인정보는 철저히 보호해야 하지만, 공공데이터는 최대한 활용해야 합니다.”
보건의료 데이터는 신약과 의료기술 연구를 위한 필수 자원이다. 하지만 각종 공공·민간 기관에 산재한 데이터가 공유되지 않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이 크다.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된 ‘임상데이터 활용을 위한 공공데이터 결합 활성화’ 포럼에서 전문가들은 “안정적인 정보보안과 통합성을 겸비한 정보 획득·결합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우리나라는 이미 양질의 보건의료 임상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다.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대표적인 보건의료 빅데이터 보유 기관은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한국사회보장정보원 등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전 국민의 데이터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국민의 의료기관 이용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한국사회보장정보원은 특정 복지사업 대상인 국민의 자격·수급 관련 정보를 가졌다.
정부기관의 경우 질병관리청, 국립암센터,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빅데이터를 가졌다. 질병관리청은 국민영양조사 결과 자료와 감염병 및 만성질환 등의 질병 정보를 확보하고 있다. 국립암센터는 국내 등록 암 환자의 데이터를 총망라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국내 각종 식의약 안전성 평가 자료와 의약품 부작용 보고자료를 축적하고 있다.
민간 의료기관은 전자의무기록(EMR)을 통해 진료 및 보험료 청구 자료를 축적했다. 다만 종합병원과 비교해 중소병원과 의원급 기관의 정보화 수준이 떨어지고, 의료기관 사이의 EMR이 호환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다. 소규모 기관이 사용하는 EMR 프로그램은 일부 민간 업체가 독점하고 있다는 문제점도 있다.
임상 데이터 활용을 위한 정책 개선도 이뤄졌다. 앞서 2015년도부터 보건의료 빅데이터 연구를 활성화하기 시작했다. 이후 2020년 데이터 3법(개인정보 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 개정으로 환자들의 임상 정보를 익명으로 처리해 연구에 활용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이 마련됐다. 가령 데이터베이스에서 특정 질환을 가진 환자들의 데이터를 추출해 유의미한 특성과 예후 등을 파악하고, 이를 신약이나 치료 기술을 개발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연구자들이 체감하는 변화는 크지 않았다. 각종 공공기관과 정부기관에 흩어져 있는 임상 데이터들을 통합적으로 끌어모으기는 여전히 어려운 실정이다. 공공부문과 민간 의료기관 사이의 데이터 연계를 위한 체계도 미비하다. 양질의 임상 데이터가 연구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인 셈이다.
연구자들은 각종 기관에 산재한 데이터를 모으려면 지난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정보 보유 기관은 당사에서만 정부를 결합할 수 있도록 운영하는 경향이 강하다. 환자 개인정보 유출 시 법적·윤리적 책임이 무겁기 때문에 연구자에게 많은 양의 자료를 반출시키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크다. 그 때문에 정보를 필요로 하는 연구자들은 정보 보유 기관에 개별적으로 접촉해 설득해야 한다. 수집 이후에도 복잡한 절차를 밟으며 시간을 소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부가 나서서 데이터 결합을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 제언이다. 현재는 한국보건산업진흥원, 한국보건의료연구원, 한국보건의료정보원 등의 결합 전문 기관이 정보 보유 기관에 데이터 제공을 ‘요청’하는 방식이다. 즉 정보 보유 기관이 자체적인 판단하에 제공하는 한정적인 범위의 데이터만 받을 수 있다. 정보 보유 기관이 데이터 일부를 누락하고 제공해도 손을 쓸 방법이 없다. 정부가 법적 권한을 가지고 주기적으로 데이터를 결합한다면, 연구자들이 데이터에 접근하지 못하고 허비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김동욱 경상국립대학교 정보통계학과 교수는 “데이터는 없지만, 법적 권한은 가진 정부 기관을 도입할 필요성이 있다”며 “데이터 관리의 안전성을 담보하는 것은 물론, 연구자들이 일일히이 데이터 보유 기관을 돌아다니며 데이터를 요청해야 하는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다만, 대규모 데이터가 이동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시스템 장애나 유출 위험성을 해소할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며 남은 과제를 제시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조명희 국민의힘 의원은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정보를 공유 및 결합 활용하는 체계가 미비하다”며 “가령 현재 마약통합정보시스템의 경우도 식약처, 복지부, 심평원 등이 모두 관여하는 시스템이지만, 서로 업무 연계와 공유 원활하지 않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이어 “연구자들이 공공기관과 민간기관에 산재한 의료 데이터를 통합적으로 활용할 수 없다면 우리나라에서는 노벨 의학상이 절대로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