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국민들이 납부해야 할 건강보험료가 급증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지원 근거를 담은 법안이 지난해 종료됐으나, 정부와 국회가 손을 놓고 있는 탓이다. 3월 국회 내 법안이 처리되지 않으면 내년도 건강보험료가 폭등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14일 국회 등에 따르면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정부 지원을 연장하거나 항구화하는 내용의 건강보험법, 건강증진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 하고 소관 상임위에 계류돼 있다.
건강보험법과 건강증진법은 정부가 해마다 전체 건강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20%를 건강보험에 지원하는 내용을 담았다. 지난 2007년부터 도입돼 3차례 일몰 규정을 연장해 운영됐으나, 지난해를 끝으로 법적 시한이 종료됐다. 일몰제란 법률의 효력이 일정 기간 지나면 자동으로 없어지는 제도다.
국회에서는 지난해 건강보험법, 건강증진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는데, 정부·여당과 야당이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정부·여당은 5년 연장안을 주장했고, 야당은 일몰제를 폐지하고 항구적 법제화를 요구하며 합의안 도출에 실패했다.
건강보험 국고 지원의 법적 근거가 사라졌기 때문에 건강보험은 오로지 국민이 낸 보험료 수입으로 운영돼야 한다. 당장 올해는 정부 예산안상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국고지원금 10조9702억4700만 원이 확보되면서 보험료 인상은 막았지만, 법안이 처리되지 않으면 내년도 보험료 인상은 불가피하다.
특히 내년도 정부 예산 편성을 앞둔 4월 전에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오는 4월 건보공단과 의료공급자단체 간 논의를 시작하고, 5월에는 내년도 건강보험 의료수가 협상을 진행한다.
건보공단 재정관리실 관계자는 “4월 논의를 시작할 때 내년도 수입에 대한 전망치가 나와야 한다. 이때 국고지원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으면 논의를 시작하기 어렵다”며 “적어도 3월 안에는 결정돼야 보험료율을 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와 국회가 이대로 뒷짐만 지고 있다면 내년부터 보험료를 더 내야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에 따르면 정부 지원이 끊기면 가입자 보험료는 매년 17.6%씩 인상될 것으로 전망된다. 월 평균 보험료로 환산하면 2만 원 이상 오를 것으로 추정된다.
건보노조 관계자는 “3월 임시국회 안에 처리돼야 안정적으로 수가협상을 할 수 있다. 늦어도 4월 국회 안에 처리하지 않으면 17.8%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경고했다.
강도태 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갑작스럽게 사표를 내면서 수장 공백 상태에 놓인 점도 걸림돌이다. 강 전 이사장은 건강보험 국고지원의 필요성을 강하게 피력한 인물이다. 그는 지난달 15일 기자 간담회에서 “건강보험의 주 수입재원이 건강보험료와 정부지원이기 때문에 정부지원의 책임성과 안전성을 강화해야 국민 부담이 줄어든다”며 “재원이 안 되면 보험료를 맞추기 위해 그것(건강보험료)을 대폭 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수장이 바뀐다고 해도 건강보험 국고지원 관련한 공단 입장이 바뀌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이사장이 바뀐다고 해서 공단 기조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며 “국고지원은 개인에 따라 달라질 수 없는 사안이다. 건강보험 운영하는 데 국고지원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