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생명 존중’ 인식 확산에 따라 제약사들도 동물시험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을 찾고 있다. 다양한 기술들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아 실제 적용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농림축산검역본부 동물실험윤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021년 국내에서 실험에 쓰인 동물의 수는 488만252마리다. 하루 약 1만3500마리가 실험에 사용되고 있는 셈이다. 사람에게 안전한 화장품, 의약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최근 동물의 생명이 존중돼야 한다는 의식이 강해지면서 이러한 비임상실험(동물실험)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임상시험에서 포유류 활용을 줄이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미국 경우 올해 초 의약품 허가 시 의무적이었던 ‘동물실험’ 요건을 폐지하고, ‘동물대체시험’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지난 80년 간 이어왔던 식품의약품화장품법·공중보건법을 단숨에 바꾼 사례다.
동물대체시험법은 쥐, 원숭이, 개 등을 이용한 실험을 유전자 조합이나 생체 데이터를 활용해 만든 오가노이드(인공장기), 조직 칩, 바이오프린팅 기술로 대체하더라도 효과나 안전성을 인정하도록 한다. 해당 기술들은 사람의 신체와 유사한 환경으로 만든 물질로 개인의 유전자를 분석해 더 정밀한 임상이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도 동물대체시험법은 뜨거운 감자다. 정부는 의약품 개발 과정에서 미국, 유럽 등 글로벌 규격에 맞는 임상시험을 실행하기 위해 동물대체시험센터를 구축하고, 민·관 공동 연구개발에 나서기도 했다. 이에 따라 제약업계도 틀에 박혀 있던 임상 기준을 벗어나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JW중외제약의 경우 전문 바이오기업들과 협력해 대체임상 기술을 쌓고 있다. JW중외제약은 11일 열대어 ‘제브라피쉬’를 연구하는 전문 비임상기업 제핏과 협약을 맺었다. 제브라피쉬는 인간과 유전적 구조가 80% 이상 유사해 포유류 실험을 대체할 수 있는 비임상 중개 연구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또 지난해에는 오가노이드 전문기업인 오가노이드사이언스와 공동 연구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오가노이드는 인체 내 장기를 뜻하는 ‘organ’에 유사하다는 뜻의 ’oid‘를 더한 합성어로 장기유사체를 말한다.
줄기세포를 장기와 유사한 구조로 배양하거나 재조합해 만든다. 환자들의 장기 조직뿐만 아니라 구조·기능적 특이성도 재현한다. 동물실험 대체가 가능한 것은 물론 임상시험을 직접 하지 않고도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고 전해진다.
JW중외제약 관계자는 “동물대체시험법은 수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관심가지고 있는 전략이다. 자체 신약 파이프라인 확장에 따른 연구개발 비용은 증가하고 동물실험 윤리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상황인 것을 감안했다. 임상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연구법과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적은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해 왔다”며 “동물대체시험법을 가진 전문 기업과의 협력은 앞선 문제를 해결할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제약바이오업계 관계자도 “동물대체시험은 윤리 문제 해결에 가장 큰 목적을 두고 있다. 더불어 동물실험 대비 비용·시간적으로 효율적인 임상방법으로서 평가받고 있다. 현재 많은 국내외 기업들이 동물대체시험법을 질환별, 장기별 특징에 맞게 개발하고자 한다. 국내에서도 곧 다양한 연구가 진행돼 결과를 얻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물론 당장 동물실험을 대체하기는 어렵겠지만 이번 미국 법 개정으로 연구개발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제약사들이 대체기술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오가노이드 기반 생명공학기업 넥스트앤바이오 관계자는 “국내 신약 개발 임상시험계획(IND) 승인의 경우 동물실험 결과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따라서 오가노이드 기술이 아무리 정확하다고 하더라도 개발사 입장에서는 동물실험을 통한 약물 개발을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가노이드를 포함한 동물대체시험 모델은 현재 IND 승인에 있어 필수가 아닌 보충데이터로만 활용 가능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제약사 입장에서는 추가로 거액의 비용을 들여 대체실험법으로 임상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
넥스트앤바이오 관계자는 “제도를 보완해 오가노이드 등의 기술이 전 임상 약물 개발 과정의 필요 기술 중 하나로 인정받아 활용될 수 있도록 길이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라며 “미국처럼 동물대체시험법을 통한 데이터가 IND 승인에서 인정되도록 정비가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언급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